"'사우디 머니' 택한 골퍼 욕하더니…" 美서 PGA에 쏟아진 쓴소리

LIV골프 대회 모습//AFPBBNews=뉴스1

1년 반가량 소송전까지 펼치며 서로를 물어뜯던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와 DP 월드투어(구 유러피언투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후원한 LIV 골프가 전격 합병 소식을 발표하자 골프업계는 물론이고 미국 워싱턴 정가와 법조계가 술렁였다.

LIV골프를 반대하던 주요 논리 중 하나였던 '인권'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우디의 '돈'이 모든 것을 덮었다는 비판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1억달러(1600억원) 이상의 계약금을 받고 PGA에서 LIV로 옮겨간 선수들을 비방하며 자체 대회 출전 금지령까지 내리던 PGA가 스스로도 LIV의 '돈'을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중동의 엄혹한 인권 탄압을 LIV골프를 통해 '스포츠 워시(스포츠 세척)' 한다고 비판하던 PGA가 똑같이 '스포츠 워시'에 합류했다고도 지적했다.

미 워싱턴 정가서는 이번 '빅딜'의 정확한 주체와 거래 내용을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우디의 승리 주요 외신들은 PGA와 LIV의 합병은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엄청난 승리'이자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를 전세계 주요 스포츠의 핵심 '플레이어'의 반열에 올려놨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즈(NYT)는 "이번 합병은 스포츠 이슈인 동시에 세상의 '힘'에 관한 것"이라고 봤다. NYT는 사우디가 열악한 인권 상황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해 스포츠에 큰돈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도 전했다. 최근 몇 년간 골프, 테니스, 자동차 경주, 종합격투기 등 주요 대회가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에서 줄줄이 개최된 점도 비슷한 맥락이다. PGA와 LIV 합병 신설법인의 회장을 맡을 예정인 PIF의 야시르 알루마얀 회장은 영국 축구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회장이라는 점도 주목했다.

무함마드 만난 블링컨 -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7일(현지시간) 제다에서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고 있다. /AFPBBNews=뉴스1

CNN방송은 사우디의 '돈'이 스포츠뿐만 아니라 게임, 모빌리티, 빅테크기업, 자동차회사까지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PIF는 여러 주요 비디오 게임 회사에 총 75억 달러(9조 8032억원)를 투자해 EA(Electronic Arts) 지분 9%, 테이크투 인터랙티브(Take-Two Interactive) 지분 7% 및 액티비전 블리자드(ATVI) 지분 5%를 확보했다.

또 콘서트 기획사면서 티켓 마스터의 소유주인 라이브 네이션(LYV) 지분도 5% 넘게 갖고 있다. 모빌리티 회사인 카니발(Carnival Corp)과 우버(Uber), 그리고 줌에도 각각 수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PIF의 가장 큰 미국 투자는 전기 자동차 제조업체 루시드(Lucid)인데 주식의 60%를 소유하고 있다. 7일 종가 기준 76억 달러(9조9300억원) 규모다. 루시드는 최근 PIF가 18억달러의 추가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한편 이번 '골프 빅딜' 발표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사우디에 도착하자마자 발표된 점도 주목했다. 최근 외교활동에 나선 사우디의 활동의 연장선인 동시에 미국 정부의 '화해 제스츄어'가 섞여 있다는 의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2020년까지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 문제를 언급하며 비판했던 입장에서 한발 뒤로 물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7일(현지시간) 모하메드 왕자와 회담을 갖은 블링컨 장관은 "인권의 진전으로 양국 관계가 강화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언급했다.

뉴욕과 워싱턴의 반발

사진=CNBC뉴스 캡쳐

뉴욕과 워싱턴 곳곳에서도 PGA와 LIV의 합병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9·11 희생자 유족 연합의 성명을 집중 보도했다. 이들은 "충격과 깊은 불쾌감을 느낀다"며 PGA투어와 최고경영자(CEO)인 제이 모너핸이 유족들을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유족들은 2001년 뉴욕에서 발생한 9·11 테러의 범인 상당수가 사우디 사람이었다며 LIV 골프의 출범부터 반대해왔다. 테리 스트라다 9·11 유족 연합 회장은 "모너핸은 지난해 여름 9·11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지인을 얘기하며 LIV로 옮긴 골퍼들의 사과를 요구했었다"며 "PGA 리더들은 (입장을 바꿔 사우디와 손잡기로 한) 위선과 탐욕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인권 단체인 국제앰네스티도 이번 합병을 '최고의 스포츠 워싱'이라고 꼬집었다. 앰네스티는 "이번 합병 발표가 사우디의 잔인한 인권 기록을 가릴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국회의원들도 동참했다. 미 의회 전문지 더힐(TheHill)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크리스머피(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너무 이상하다. PGA 관리들은 불과 몇 달 전에 내 사무실에서 사우디의 인권 기록이 주요 미국 스포츠에 대한 그들의 이해 관계 자격을 박탈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며 "아마도 그들이 우려한 건 인권이 아니었나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상원의원은 PGA 투어가 PIF와 계약을 체결한 것을 규제 당국이 조사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합병에는 규제 당국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민주당 소속 딕 더빈(일리노이) 상원의원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제는 이번 딜이 준수하지 못한 외국 관계 또는 외국 사업 거래와 관련된 현행법 위반 여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원 외교위원회가 (골프 합병) 거래를 조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덧붙였다.

법조계도 단호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번 합병의 조건으로 PGA와 LIV는 상호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지만, 법무부의 조사가 반드시 멈추는 건 아니라는 취지다. WSJ은 "합병 발표가 과거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며 "PGA의 불법 행위가 있었다면 합병한다고 해도 처벌까지 피할 순 없을 것"이라고 관계자 발언을 통해 전했다.

또 연방 정부가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를 통해 매년 합병 승인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 유럽위원회(EC)도 별도의 합병 검토를 하기 때문에 규제 당국이 차단할 수 있는 유형의 결합 여부도 판단해야 할 여지가 남아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에 기회

2022년 8월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LIV GOLF 인비테이셔널 대회장에 나타난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AFPBBNews=뉴스1

이번 PGA와 LIV의 합병이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새로운 '카드'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화당 대선 경선의 선두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PIF의 긴밀한 관계가 결국 미국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작년 7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PGA에 충성을 하는 골퍼들은 LIV와의 합병이 불가피할 때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수백만 달러를 받는 PGA 관계자들로부터 큰 감사 인사만 받을 것이다"라고 썼다. LIV와 관계가 돈독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합병을 어느 정도 예측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LIV골프 대회의 출범부터 협력했다. 워싱턴 포스트(WP)에 따르면 2021년 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사모펀드를 만들었는데, PIF가 20억달러(2조 6106억원)를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LIV 골프대회가 트럼프 오가니제이션(Trump Organization) 자산에서 개최됐다는 의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최고경영자(CEO)인 에릭 트럼프는 올해 초 "회사가 LIV를 주최하게 된 것을 영광이라 생각한다"며 간접적으로 연관성을 내비친 바 있다. 에릭 트럼프는 7일(현지시간) 골프대회 합병 소식에 대한 소감을 묻는 말에 "골프 게임을 위한 멋진 일"이라며 이번 합의를 환영했다. 합병이 완료되면 트럼프 소유 코스에서 토너먼트가 계속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