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가 포기한 환자, 한국까지 온 이유…숨졌는데 "감사" 기부까지

서울성모병원장 윤승규 병원장(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과 의료진, 고(故) 나탈리씨의 남편과 맏며느리가 지난 13일 나탈리씨를 추모하는 미사를 드린 뒤 병원 로비 성당 앞에 모여 고인의 뜻을 기리고 있다

말기 간암으로 고통받던 외국인 환자의 치료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한국 의료진의 사연이 뒤늦게 전해졌다. 환자는 끝내 숨을 거뒀지만 '아름다운 이별'을 맞게 해준 병원에 감사하며 환자의 가족들은 기부와 자선사업으로 화답했다.

25일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적의 나탈리(Nathalie M)씨는 스위스에서의 진료 포기 권유를 거부하고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마지막까지 치료받으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다 지난 10일 숨졌다. 향년 78세.

병원에 따르면 나탈리씨의 아들은 지난 8월, 이 병원 국제진료센터 옥진주 교수에게 한 통의 메일을 보냈다. 옥 교수는 비자검진클리닉과 여행클리닉의 전담 의사로 20여개 주한 대사관의 주치의로 활동 중이다. 메일을 확인한 뒤 전화를 건 옥 교수에게 아들은 "스위스 병원에서 말기 간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가 의식이 혼미해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고 알렸다"며 "어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생명을 인위적 행위로 죽음을 이르게 하는 '치료 포기'를 거부하기로 하고 간암 치료에 앞선 서울성모병원에 하느님께 어머니를 부탁하는 마음으로 연락했다"며 절박한 심정을 드러냈다.

옥 교수는 나탈리씨의 아들에게 받은 의무기록과 혈액검사 결과 등을 간암 혈관 및 인터벤션 치료의 권위자인 영상의학과 천호종 교수, 간암 전문가인 소화기내과 성필수 교수와 공유하고 치료 계획을 논의했다. 당시 나탈리씨는 세균감염으로 인한 패혈증과 간성뇌증으로 의식이 저하됐고, 간 기능이 떨어져 심한 황달과 복수가 동반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병원 의료진은 '환자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돌본다'는 가톨릭 생명 존중의 정신을 기반으로 치료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꺾지 않았다. 철저한 사전 준비로 마침내 나탈리씨는 지난달 14일, 서울성모병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나탈리씨가 응급실에 도착하자 성 교수와 응급의학과 임지용 교수는 지체 없이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다행히 간 기능이 회복되며 나탈리씨는 병원에 도착한 지 이틀 후 의식이 회복됐고 일주일 뒤부터는 안경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정도로 상태가 안정됐다. 스위스에서는 의식상태가 나빠 가족들과 대화가 어려운 정도였지만 아들과 맏며느리, 손녀딸까지 와서 대화를 나눌 정도로 기력을 되찾아 간암 치료에 나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지난 4일 갑작스럽게 찾아온 폐렴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고인의 남편인 트리베르트(Tribert A)씨는 "아내의 치료와 돌봄에 정성을 쏟은 서울성모병원의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와 보살핌에 감동을 받았다"며 나탈리씨의 이름으로 연구 발전기금 5만 달러(한화 약 6600만원)를 기부했다. 고인의 가족은 앞으로 아프리카에서 치료받기 어려운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자선사업을 진료 분야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성 교수는 "환자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도와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간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올리는 진료를 하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