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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음의 악역도전, 눈물겹지만 아쉽다

머니투데이
  • 조이음(칼럼니스트) iz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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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2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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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탈출', '죽을맛' 김순옥 월드서 갈길 못 찾아

사진=방송 화면 캡처
사진=방송 화면 캡처
SBS 금토드라마 ‘7인의 탈출’(극본 김순옥, 연출 주동민)은 여러 사람이 어두운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듯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각각의 캐릭터들이 쏟아내는 대사들 중 귀를 사로잡는 건 “우린 사람을 죽인 게 아니야. 스스로를 지켰을 뿐”이라는 살인자의 비겁한 변명으로 짐작되는 한마디. 그리고 “이건 그 아이의 저주야, 방울이의 저주”라는 외침이다.


어두워진 화면은 드라마 제목과 함께 2018년 9월로 시간을 돌린다. 황정음이 연기하는 금라희는 따뜻한 빛이 내리쬐는 한적한 시골 마을 어느 가정집 한가운데 앉아 시청자를 맞이한다. 대접받은 차를 마시려던 금라희는 이 빠진 낡은 잔을 보고 마음이 식은 듯 한숨을 내쉰다. 내내 표정 없는 얼굴로 세 가족의 화목한 기록이 곳곳에 있는 집안을 둘러보던 그는 “엄마” 한마디에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돌아본다. 15년간 제가 낳은 딸 방다미(정라엘)를 키워준 박난영(서영희)과 이휘소(민영기)에게 “자식을 나눠 가졌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한다.


금라희는 키워준 부모에게 매정한 태도로 선을 긋고, 15년 만에 만난 제게 “엄마”라고 부르며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딸 방다미와 함께 새집으로 향한다. 차 안에서 음악 취향과 혈액형 등을 꼽으며 저와의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방다미에게 금라희는 “애쓸 필요 없다”며 차갑게 내뱉는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방다미가 당황하자 그는 일부러 밝은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안도감을 선사한다. 마치 방다미가 양부모 앞에서 보인 쌀쌀맞은 태도와 저를 대하는 싹싹한 태도 모두 속내를 감추기 위한 노력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모든 걸 이해하는 어른이라는 듯이. 하지만 이는 앞으로 달라질 금라희에 비하면 티저 예고편에 불과했다.


사진=방송 화면 캡처
사진=방송 화면 캡처


‘욕망의 화신’으로 통하는 금라희는 드라마 제작사 대표다. 제 사업에 현금 부자인 방칠성(이덕화)을 끌어들이기 위해 금라희는 그의 유일한 핏줄인 방다미가 필요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금라희에겐 제가 유기한 친딸을 찾아가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방다미를 데리고 왔음에도 상황은 금라희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눈앞에서 투자 유치 기회가 날아가 버리자 금라희는 방다미 앞에서 썼던 천사 같은 엄마, 대학 갈 때까지만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엄마의 얼굴을 벗어던지고 본색을 드러낸다. 제가 정한 룰을 지키기 않았다는 이유로 악담을 퍼붓고, 방회장의 마음을 돌려놓으라며 방다미를 빗속으로 내몬다. 이후 금라희는 계획대로 거액의 투자금과 방회장의 신뢰까지 얻지만, 세상에는 방다미를 둘러싼 가짜뉴스가 일파만파 퍼진다. 이른바 ‘방울이 사건’이다.


“진실 따위는 상관없어. 세상이 믿고 있는 게 진실이야”


결백을 주장하는 방다미를 향해 금라희는 매정하게 일갈한다. 온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10대 딸에게 친엄마가 하는 말이라기엔 한없이 차갑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가장 현실을 반영한 한마디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금라희는 친딸을 죽이라며 남에게 돈을 주며 사주한다. 총격과 함께 방다미는 자취를 감추고,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방회장은 돈줄로 금라희의 숨통을 조인다. 하지만 ‘한 소녀의 실종에 연루된 7명의 악인들 간 치열한 복마전과 생존투쟁을 그린 복수극’이라는 드라마 설명처럼 결국 방회장과 금라희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자는 금라희였다. 4회까지의 전개가 이토록 폭력으로 점철된 드라마라니, ‘순옥적 허용’(부족한 개연성도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적당히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로 ’시적 허용‘에 빗댄 표현)을 생각한다고 해도, 매정한 대사처럼 매정하기만 한 기(起)다.


황정음은 이번 드라마를 통해 3년 만에 복귀했다. 김순옥 작가의 팬이라는 그에게, 둘째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마침 아기 기저귀를 갈고 있을 때. 연기가 무척이나 절실했던 그에게, ‘요즘 뭐해? 너 악역 해볼래?’라는 작가의 전화로 ‘7인의 탈출’ 캐스팅이 성사됐다. 배우 개인의 여러 상황적 이유와 첫 악역 도전, 이른바 ‘막장 계의 대모’와의 만남 등으로 기대는 뜨거웠다. 하지만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아쉬움은 그 이상이다.


사진=방송 화면 캡처
사진=방송 화면 캡처


많은 이들이 배우 황정음을 떠올리면 발랄하고 씩씩한 모습과 함께 ‘지붕뚫고 하이킥’을 연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황정음이 ‘배우’로 각인되기 시작한 건 역시 드라마 ‘비밀’이 시작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신해 감옥살이를 하고, 자식을 강제로 잃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분노를 표출하는 감정 연기가 그의 눈에 그렁그렁했다. 이를 시작으로 ‘자이언트’ ‘내 마음이 들리니’ ‘골든타임’ ‘돈의 화신’ ‘킬미, 힐미’ ‘그녀는 예뻤다’까지 쉼 없이 달렸고, 매 작품마다 녹아들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어떤 작품에서 만나도 황정음이란 배우보다 캐릭터 자체로 작품까지 돋보이게 만드는, 그야말로 ‘황정음 매직’을 부리는 마법사였다. 2020년 방송된 ‘쌍갑포차’에서 역시 500년 된 귀신이라는 캐릭터 설정에 맞춰, 이야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자신의 모습을 맞췄다.


다시 ‘7인의 탈출’로 돌아가자면, ‘순옥드’로 모두가 기대감을 표할 때 필자에겐 황정음의 복귀작이자 새로운 도전으로 궁금한 작품이었기도 하다. 하지만 4회까지의 전개에선 그저 아쉽기만 하다. 한 배우의 표현을 빌려 이 드라마는 시청하는 것조차 매운맛을 넘어 ‘죽을 맛’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다. 누구라도 그저 ‘출연 혹은 연기’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면, 섬세한 연기로 캐릭터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는 연기로 호평받는 배우는 왜 필요했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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