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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근로자 작업중지권'의 골든타임

머니투데이
  •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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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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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해보자. 공장에서 작업 중에 근처 다른 공장에서 유독 가스가 누출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어떻게 하시겠는가? 회사 경영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공장 작업자들이 회사에 먼저 보고를 하고 지시에 따를 것을 원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골든타임이 허비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자,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의 작업중지(제51조)'와 별도로 '근로자의 작업중지(제52조)'도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1981년 제정될 당시에는 사업주의 작업중지의무만 규정하고 있다가 1995년 개정으로 '근로자의 작업중지' 규정이 신설되었고, 1996년 사업주가 '근로자의 작업중지'로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이 마련되어 '작업중지권'이 구체화되었다.

지난 9일 대법원에서 이에 관한 판결이 선고(대법원 2023. 11. 9. 선고 2018다288662 판결)되었다. 사실관계를 간단히 살펴보면, 2016년 7월 오전 8시 무렵 상온에 노출되면 독성 기체인 황화수소를 발생시키는 티오비스라는 화학물질 300ℓ 가량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때 누출 지점에서 200m 가량 떨어진 공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조합 지회장(원고)이 상황을 파악한뒤 오전 10시46분 무렵 소방본부로부터 '이미 대피방송이 있었다'는 답변을 듣고 작업장을 떠나면서 작업 중이던 조합원 28명에게도 대피하라고 했다. 이때가 오전 11시50분 무렵이었고 조합원 28명도 작업장에서 떠났다. 다행히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 회사는 원고에게 정직처분을 내렸고, 원고가 그 무효를 다투는 소를 제기했다.

원심은 회사의 정직처분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사고 발생일 오전 10시 무렵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근로자 대표가 원고에게 누출사고 현장에 함께 가볼 것을 제안했으나 원고가 이에 응하지 않은 만큼 '상황 파악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거부했으니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믿을 합리적 근거가 없었다고 보았고, 작업중지권이 노조활동으로 행사되었다는 측면에서도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원고가 피고 회사의 근로자이자 노동조합의 대표자로서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이 누출되었고 이미 대피명령을 하였다는 소방본부 설명과 대비를 권유하는 근로감독관의 발언을 토대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식하여 대피하면서, 다른 근로자들에게도 대피를 권유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회사가 정직처분을 내린 구체적인 내막은 알 수 없는데, 만약 회사의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작업을 중지하고 공장에서 이탈한 사실 자체만으로 정직처분을 내린 것이라면 산업안전보건법이 근로자에게도 작업중지권을 인정한 취지에 반하는 조치이며, 정직처분이 타당하다고 본 원심 판단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첫째 목적은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이고, 예방조치의 적정성을 사후 결과로 평가하면 신속한 예방조치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법원에서는 시정이 되었지만, 2016년 7월에 발생한 사고에 관한 판결이 대법원에서만 5년 가까이 진행되다가 이제서야 내려진 것은 아쉽다. 이 판결로 정직처분에 따른 불이익이 사후적으로 구제될 여지는 있겠지만, 자신과 동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권리를 행사한 개인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지 않았는지, 장차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장할 방법은 없을지, 우리 사회가 고민할 숙제는 남아 있다.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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