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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10곳 탈락" 속상한 어르신도…'천원 술집'서 위안 받았다 [르포]

머니투데이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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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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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술 합법' 입법예고, 탑골공원 르포…부자촌 10년째 판매, 어르들 "마음의 안식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에 있는 부자촌은 소주 한 컵을 1000원에 판매한다. 계란은 500원, 멸치 안주는 공짜다. /사진=김지은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 부자촌 가게에 70대 손님이 찾아와 막걸리 한 잔을 주문했다. 그는 최근 면접 10곳을 봤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모두 떨어졌다고 했다. /사진=김지은 기자
"면접 10곳 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여기 와서 마음의 위안이라도 받는거죠."

8일 오전 11시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 '부자촌' 식당. 인기 트로트 가수 진성의 '보릿고개'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곳은 막걸리 한 잔, 소주 한 잔을 1000원에 판매하는 탑골공원 유일무이 '잔술 술집'이다.


이날 이곳을 찾은 78세 김모씨는 막걸리 한 잔에 계란 하나를 주문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가방 안에 있는 채용 공고와 이력서 종이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는 아파트 경비, 병원 도우미 등 여러 면접을 봤지만 모두 떨어졌다고 한다.

김씨는 "부천에서 여기까지 10년 넘게 매일 오고 있다"며 "일자리를 찾으려고 해도 다 떨어진다. 국민연금으로 아껴서 생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르면 이달부터 잔술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다고 밝혔다. 잔술은 불법인데다 이윤이 크지 않아 대다수 식당은 팔지 않았지만 일부 술집에선 암암리 거래됐다. 어르신이 모인 탑골공원 인근에서 10년 넘게 잔술을 판매한 부자촌이 대표적이다.




막걸리, 소주 한컵 1000원…어르신들 "마음의 안식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에 위치한 부자촌 가게. 이곳은 막걸리 한 사발 또는 소주 한 컵을 단 돈 1000원에 판매한다. /사진=김지은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에 위치한 부자촌 가게. 이곳은 막걸리 한 사발 또는 소주 한 컵을 단 돈 1000원에 판매한다. /사진=김지은 기자

부자촌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 송해길에서 17년 넘게 장사를 했다. 식당 내부에서는 차돌박이 해장국, 닭곰탕, 돼지국밥 등 일반식을 6000~8000원에 판매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작은 테이크아웃 카페처럼 잔술만 따로 판매한다. 소주 한 컵, 막걸리 한 잔에 각각 1000원이다. 소주 한 병(4000원)에 여기 잔으로 4잔 정도 나오는데 각각 1000원에 판매하는 셈이니 소위 '바가지'도 아니다.

안주도 다양하다. 계란은 하나에 500원, 땅콩 봉지는 3000원. 불고기 한 컵도 1000원에 판매한다. 단무지, 멸치, 다시마, 강냉이 등은 모두 무료다. 가게 옆에 있는 자판기 커피는 한 잔에 200~300원이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무료 점심을 먹기 위해 노인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무료 점심을 먹기 위해 노인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부자촌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혼술을 하는 사람부터 동년배 친구들과 찾아온 사람도 있다. 이들은 요즘처럼 소주값이 6000원을 웃도는 상황에서 값싼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위안"이라고 했다.

김씨는 "나는 사실 어디 갈 곳도 없다"며 "친구가 있으면 소주라도 나눠먹지만 그럴 사람도 없어서 여기에 오는게 딱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긴 안주도 공짜로 부담이 없다"며 "좋게 말하면 마음의 안식처이고 고마운 공간"이라고 말했다.

부자촌은 가장 바쁜 시간대가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다. 오후 6시가 되면 모두들 집으로 되돌아가 오히려 손님이 없다. 이날도 오전 10시쯤에 손님이 가장 많았다. 노인 6명이 테이블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70대 이모씨는 탑골공원에서 주는 무료 점심을 먹기 위해 일찍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는 "점심 시간에 가면 300~400명이 줄 서있다"며 "집에 혼자 있으면 뭐하냐. 일찍 와서 이렇게 커피 먹고 이야기 나누다가 밥 먹으러 가면 좋다"고 말했다.



'잔술 판매 허용' 입법 예고… 부자촌 "천원의 행복, 보람 느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에 있는 부자촌은 소주 한 컵을 1000원에 판매한다. 계란은 500원, 멸치 안주는 공짜다. /사진=김지은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에 있는 부자촌은 소주 한 컵을 1000원에 판매한다. 계란은 500원, 멸치 안주는 공짜다. /사진=김지은 기자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0일 식당, 술집에서 잔술 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의 주세법으로는 주류를 빈 용기에 잔술 판매하는 건 금지된 행위였다. 하지만 위스키 샷, 글라스 와인 등 잔술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법과 시장 간의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잔술 판매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한정된 테이블에 1~2잔 잔술을 판매하는 것보다 병째로 판매하는 게 더 낫다는 시각이 있다. 근처 한 상인은 "잔술을 팔면 사실상 인건비밖에 못 받는다"며 "효율성도 떨어지고 테이블 회전율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부자촌은 손님이 많을 때는 하루에 100명 정도 온다. 많이 팔면 하루에 잔술로 10만원 정도 버는 셈이다. 부자촌 사장인 70대 전모씨는 당장 큰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잔술 판매는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끔씩 '고맙다'고 말하는 손님들이 있다"며 "단 돈 1000원에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이 역시 보람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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