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직업 속이고 보험 가입해도 3년 지나면…대법 "계약 유효"

보험사에 '위험 직업'이 아니라고 알리고 보험에 가입해도, 계약 기간 중 직업이 바뀌지 않았다면 상법상 '통지의무 위반'으로 보험을 해지할 순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상법상 통지의무는 계약 체결 당시가 아닌 계약 중간에 직업이 바뀌는 경우로만 제한해야 한다는 취지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A씨 유족이 메리츠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와 배우자 B씨는 2009년 7월과 2011년 2월, 2016년 7월 A씨를 피보험자로 하는 상해보험계약 3건을 체결했다.

A씨는 보험 가입 전부터 사망 전까지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했지만 직업을 보험사고 발생 위험이 낮은 사무원 등으로 고지했다. 계약 체결 뒤로도 실제 직업이 다르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2021년 7월 A씨는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유족들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계약자의 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보험사는 A씨가 보험 가입 당시 '사무직' 등으로 직업을 고지했고 계약 체결 이후 직업이 변경된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고지된 직업과 다른 직종에 종사했기 때문에 보험사고의 위험성이 증가했으므로 통지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족들은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2억232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피보험자가 직업을 잘못 기재했을 경우 보험사는 '고지 의무'와 '통지 의무' 위반을 주장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고지의무'란 보험계약 당시 계약자가 중요한 사실을 보험사에 알릴 의무, '통지의무'란 계약 기간 중 사고 발생 위험이 크게 커지거나 늘어난 사실을 알았을 때 알릴 의무다.

이 사건의 경우 A씨 측이 직업을 속였다는 '고지의무 위반'은 계약일로부터 3년을 넘겨 제척기간이 지나 위험직업을 유지한 것이 '통지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만 쟁점이 됐다.

1심과 2심은 모두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계약 기간 중 실제 직업이 바뀌지 않았다면, 보험사에 고지된 직업과 다르더라도 '통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통지의무는 보험계약 성립 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 보험기간 중에 사고 발생의 위험이 새롭게 변경 또는 증가된 경우에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면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지의무를 위반해 보험계약 성립 시 고지된 위험과 보험기간 중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된 위험에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보험기간 중 사고발생의 위험이 새롭게 변경 또는 증가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