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 "故 이선균 그립다면, 영화로 만나면 돼" [인터뷰]

영화 '행복의 나라'의 유재명./사진제공=NEW

배우 유재명이 권력을 향한 욕망 가득한 악인으로,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관객들의 두 주먹 불끈 쥐게 할, 분노 유발자를 예고했다.


유재명은 영화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로 관객들과 만난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이야기를 그렸다. 오는 14일 개봉.



극 중 유재명이 맡은 인물은 전상두. 합수단장 그는 10.26을 계기로 위험한 야욕을 품은 인물이다. 정인후를 조롱하듯 재판을 감청하고, 재판부에 실시간으로 쪽지를 건네 사실상 재판을 좌지우지한다. 음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위협하는, 그러다 결정타를 날려 숨통을 죄는 뱀 같은 모습을 갖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행복의 나라'는 등장인물들 역시 실존 인물들을 토대로 했다. 여러 인물 중, 강력한 존재감을 뽐낸 유재명이다. '분노 유발자'로 뒤끝 남게 한 열연을 펼친 유재명을 아이즈(IZE)가 만났다.

영화 '행복의 나라'의 유재명./사진제공=NEW

-개봉 전 언론시사회를 통해 영화가 공개됐다. 영화를 직접 본 소감은 어땠는가.


▶ 설레고 긴장된 순간이다. 같이 고생한 멤버들과 함께 우리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고민했다. ('행복의 나라'는) 드라마가 강하고, 법정 장면과 인물들의 감정이 천천히 드러나고, 거기에 진입하면서 그림을 놓치지 않는 영화다. 숨죽이고 보는 영화다.


-앞서 공개됐던 디즈니 플러스 '노 웨이 아웃 : 더 룰렛'(이하 '노 웨이 아웃')에서 악인으로 열연했다. 이어 '행복의 나라'에서도 악인으로 분했다. 연이어 악인이었는데, 이런 배역에 대한 거리낌은 없는가.


▶ 저는 태생적으로 그런 게 없는 사람이다. 배우라는 운명적 직업을 만나서, 이렇게 나이가 들었다. 내가 표현하는 캐릭터일 뿐이다. '다른 작품 안 오면 어떡하지?'라는 건 없다. 이번에 전상두 역 같은 경우, (캐릭터 스토리) 라인이 안 보여서 고사를 했던 부분이 있다. 서사가 약하니까 그런 거다. (전상두 캐릭터의 모티프가) 전두환이라서 그런 건(고사) 아니었다. 기사에 악인, 악인 이렇게 나오는데 안 맞는 비유인 것 같다. '노 웨이 아웃'의 김국호는 태생적으로 악한 본성을 타고난 범죄자다. '행복의 나라' 전상두는 그 시대에 엘리트였다. 육사(육군사관학교) 나와서 장군이 됐고, 하나의 사조직을 권력화했다. 자신의 권력으로 군사 반란,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 세력이다. 그들을 지칭하는 (악인이 아닌) 다른 표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세력이 한국 현대사에서 엄청난 위치를 차지한다. 악인이란 표현보다, 감독님이 '야만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제가 거기에 덧붙여서 전상두를 연기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고 해주셨으면 좋겠다.


-출연 제안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좋았다. 이번 출연이 좋은 경험, 판단이었다고 생각하는가.


▶ 다행이라는 표현이 가장 솔직한 표현이다. 끝이 났을 때, 영화의 장점이 분명히 느껴졌다. 영화 큰 맥락, 흐름 중에 역사적 사실에 휘말린 개인이 있다. '포레스트 검프'도 그런 얘기다. 영화에 기발한 상상력과 시공간 넘는 흐름이 있지만, 실존했던 개인의 켜켜이 쌓인 고뇌를 통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서사도 보려고 한다면, 조금은 복원된 감성이 있다. 아날로그가 아닌, 영화로 '이런 거였지'를 관객에게 줄 수 있던 것 같다. 그렇게 봐주실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 '행복의 나라'의 유재명./사진제공=NEW

-극 중 전상두를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는가. 연기적으포 포인트를 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 '행복의 나라'에서는 전상두가 10.26 통 해서 어떤 이익을 취하고 12.12를 일으키려 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저한테 주어진 분량, 포지션은 어느 단계의 순간을 보여주는 게 다였다. 그런 부분이 감독님과 제가 말씀드리는 전상두 개인이 아니라, 정치 재판에 개입해서 자신의 이익을 모색하려는 검은 권력자 영역인 거 같다. 예를 들어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12.12를 하려고 참모들에게 다 모여보라고 했다면, 개인의 야망을 연기했겠죠. 그러나 그런 것보다는 가만히 도청하고, 어떤 사람을 바라보고, 그러다 툭 한마디 던지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던 거는 극도의 디테일밖에 없었다. 어떤 인간을 바라보고, 조롱하고, 오만에 빠진 모습 등 다분히 상징화된 디테일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 연기를 보며 조마조마했다. 그런 것 때문에 더 그런 거 같다. 실제로 마지막 골프장 신이 나오기 전까지 정인후, 박태주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작품인 것 같다.


-극 중 전상두는 실존 인물 고(故) 전두환을 바탕으로 했다. 이 인물은 여러 배우가 맡았던바. 유재명은 어떻게 이 인물을 해석했는가.


▶ 관객들에게 그 시대를 조명하는 영화 세 편이 나온 게 고무적이다. 어느 한 시대를 각각 다른 스타일로 그린 게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겠지만, 소비하는 관객들에게는 '이런 재미가 있구나' '이렇게 미학적으로도 나오는구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저희 영화는 죽음, 가족, 아버지, 변호하는 딜레마가 있다. 변호인단의 이러지도 못하는 상황, 소시민 인권이 짓밟히는 상황,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검은 세력에 의해 꺾여지는 자유 등을 '이렇게 표현하는구나'가 전달되었으면 한다.


-극 중 전상두의 캐릭터가 미화되는 부분도 있는가.


▶ 보시는 분들의 관점이 다를 것 같다. 제가 표현한 연기 포인트 중에는 '그래서 더 악마 같다'는 게 있다. '저렇게 멋있게 표현해야 하나?'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거다.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거는 조심스러운 표현이긴 한데, 미화가 아니다. (극 중 상황에서) 정당화시키고 싶었다. '나 정도면 자격이 있는 거 아냐?'라는 오만함이다. '박정희란 사람이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된 것처럼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정당화다.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지만, 극 중 전상두 입장에서 일개 변호사 정인후가 골프를 치고 있는데 찾아오는데, 그 때 마음을 드러낸다. 굉장히 지독한 권력욕에 빠진 거를 표현하는 게 정당성이었다. 제가 절제하고 표현하다 보니 그게 멋있게 보일 수도, 밉게 보일 수도 있다.

영화 '행복의 나라'의 고 이선균(사진 왼쪽), 조정석/사진제공=NEW

-'행복의 나라'의 주연 조정석과 고(故) 이선균과 호흡은 어땠는가.


▶ 조정석 배우는 좋은 배우라고 알고 있었다. 정말 좋은 배우라는 거를 새삼 느꼈다. 재기발랄하고, 얼굴에 항상 장난기가 많은 친구다. 똘망똘망한, 경쾌하고 밝은 호흡의 에너지를 가진 배우가 '행복의 나라'에서 정인후라는 시대를 표현하는 인물을 통해 엄청난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그걸 보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훌륭한 배우였다고 느꼈다. 고생 많이 했고, 대견했다.


이선균 배우는 진짜 어려운 연기를 했다. 자기 죽음을 앞두고 다시 보지 못할 가족, 총으로 쏜 동료, 나의 조국 등 여러 상황에 대한 생각으로 딜레마에 빠진 한 인간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굵은 선으로 잘 표현해 준 것 같다.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행복의 나라'가 고 이선균의 진정한 유작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대중이 고 이선균을 어떻게 기억해 줬으면 하는가.


▶ 많은 분이 말했다.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거가 표현됐다. 제가 한번 표현한 적이 있다. '영화는 그리워하면 찾아볼 수 있는데, 사람은 그리워하면 찾아볼 수 없다. 저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배우 이선균은 영화를 통해서, 그리우면 찾아볼 수 있다'. 배우 이선균을 그리워하면, 영화로 이선균을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움에 대한 절제, 조심스럽게 표현됐으면 한다.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그는 어떤 배우였는지,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 조금 더 잘 조명되는 게 훨씬 더 적극적인 우리의 자세이지 않나 싶다. 그렇게 연기를 해줘서 고맙다. 대중, 개인의 몫으로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영화를 보시면 잘 전달되지 않을까 싶다. 정말 좋은 배우였다. 저는 (관객들이) 그렇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영화 '행복의 나라'의 유재명./사진제공=NEW

-'행복의 나라'라는 타이틀을 두고 관객들이 행복의 나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것 같다. 유재명이 생각하는 행복의 나라란?


▶ 개인의 딜레마, 실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간극이 있을 거 같다. 현실을 살고 있는 개인의 현실적 문제, 고뇌와 다른 것 같다. 또 극적 사건이 크다. 대통령 암살, 가해 사건이라는 전제 때문에 일반 대중이 현실 사는 이야기와는 간극을 느끼실 것 같다. 그렇지만, 그 고뇌에 빠진 인간(극 중 박태주)이 하는 마지막 말이 있다. 아내가 밥을 짓고, 아이가 뛰어다니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그게 상징인 것 같다. 크고 거창한 게 아니라, 개인이 편하게 마음껏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말할 수 있는 담론이 (형성)됐으면 좋겠다. 그것이 감독님이 표현하고 싶은, 가장 원초적인 근거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