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늙어서 돼지고기 안 먹어"…소비 줄어도 육류업체 '호실적' 왜?

상하이의 한 시장에서 손님이 돼지고기를 주문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돼지고기 소비국으로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의 49%를 소비한다./머니투데이=DB

중국인들이 늙어가면서 그 좋아하던 돼지고기도 덜 먹고 있다. 세계 최대 육가공업체이자 글로벌 돼지고기 큰 손인 중국 WH그룹(솽후이)의 상반기 매출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 줄어든 실적은 미리 유통망을 장악해 둔 미국에서 채워 오히려 영업이익은 늘었다.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을 독점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 WH그룹은 지난 12일 상반기 재무보고서를 발표했다. 주력인 육류 매출은 올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6% 줄었는데 이 중 돼지고기 매출이 10% 감소했다. 특히 중국 내 돼지고기 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6.4%나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등 외생변수 시기를 제외하고 반기 매출이 이처럼 줄어든 것은 처음이다. 이 여파로 글로벌 매출도 6.3% 줄어든 122억9000만달러(약 17조원)에 그쳤다.


돼지고기는 중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식품 중 하나다. 14억 인구가 안정적으로 돼지고기를 소비하면서 글로벌 돼지 수요의 절반 가량이 중국에서 나온다. 중국 핵심 경제지표인 CPI(소비자물가지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에 돼지고기가 포함돼 있을 정도다.

그런데 올들어 이상징후가 감지됐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올 상반기 중국 내 전체 돼지 판매량이 3억6400만두로 전년 동기 대비 3.1% 감소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날것으로 봤던 돼지고기 수요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직접적인 원인은 중국 경기부진에 따른 가계 소비 감소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의 소매판매는 지난해 12월 전년 동기 대비 10.1% 상승하며 고점을 찍은 후 6월 반짝 회복한 것을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지난 7월에도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에 그치며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돼지고기라고 예외일 수 없다.


중국에선 돼지고기 소비패턴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에 더 주목한다. 핵심은 인구다. 중국 농업전망회의는 지난 4월 '2024~2033 중국 농업전망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중국 인민의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건강한 식사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돼지고기 수요가 줄어들고 쇠고기와 양고기 수요는 늘어날거라는 전망이다.

무엇보다 급속한 고령화로 늙어가는 중국인들은 질긴 돼지고기를 이전처럼 많이 먹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60세 이상 노인 인구는 2억9700만명이다. 65세 이상도 2억1676만명으로 15.4%를 차지했다. 14억 중국 인구를 감안하면 아직 선진국 대비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고령인구 수 자체는 여느 국가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사진=바이두

이에 따라 농업전망회의는 향후 10년간 중국의 돼지고기 소비가 연 평균 0.5%씩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돼지고기 소비 바로미터 격인 WH그룹도 이미 이런 징후를 감지하고 있다. 궈린진 WH그룹 CEO(최고경영자)는 "중국 소비자들의 육류 제품 소비 변화에 적응해 채널을 전환하고 제품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말했다. 회원제 판매점과 편의점 등 새 채널에 집중하겠다는 내용이다.

아이러니는 WH그룹이 중국 수요부진의 직격탄을 맞고도 영업이익은 크게 늘었고, 그 대부분을 중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미국과 멕시코 등 미주지역에서 내고 있다는 거다. WH그룹은 지난 2013년 미국 식품기업이자 당시 세계 최대 돼지고기 가공 기업이던 스미스필드를 인수, 글로벌 돼지고기 왕국을 건설했다.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솽후이에서 사명을 WH그룹으로 바꾼것도 이 때다.

스미스필드는 이후 중국 돼지고기 산업에 완충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중국에서 돼지 사육량이 급감, 돼지고기 품귀 현상이 발생했던 지난 2020년, WH는 스미스필드 미국 가공공장 세 곳을 폐쇄하고 해당 물량을 중국 본토로 돌렸다. 30% 가까이 부족했던 중국의 돼지고기 쇼티지(공급부족)는 일부 해소됐고 반면 미국의 돼지고기 제품 가격은 치솟았다.

이는 중국 기업이 돼지고기 유통망을 장악하면서 미국과 중국 돼지고기 수요가 출렁인 대표적 사례였다. 그런데 중국 내 돼지고기 수요가 감소하자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WH그룹은 상반기 중국 내에서 마이너스 매출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미주지역에서 호실적을 냈다. 이에 힘입어 WH그룹의 글로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8.4% 늘어난 11억4000만달러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