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지방거점 대한민국 개조론" 국가발전 전략 첫 제안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오세훈(맨 왼쪽) 서울시장이 23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 센텀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한국정치학회 특별 대담에 참석, 박형준(맨 오른쪽) 부산시장과 대담을 갖고 있다. 한국정치학회 하계국제학술대회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날 대담은 '한국 미래 지도자의 길-2030 도시, 국가, 글로벌 문제 극복 리더십'이란 주제로 진행됐다. 2024.08.23. [email protected] /사진=하경민

"박형준 부산시장의 좌절감과 울분, 간절함이 서울의 도시경쟁력 강화를 위해 늘 밖만 보고 있던 내게 굉장히 큰 충격과 깨달음을 줬다".

23일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2024 한국정치학회 국제학술대회' 특별 대담에서 기조 발제에 나선 오세훈 서울시장의 말이다. 한국정치학회가 주최하고 '한국 미래 지도자의 길-2030 도시, 국가, 글로벌 문제 극복 리더십'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오 시장은 "지난달 23일 박 시장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내려치듯 획기적인 발상이 없으면 지방 고사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다음 단계 발전이 가능하지 않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오 시장은 그러면서 자신이 구상한 새 성장·발전 모델인 '지방거점 대한민국 개조론'을 주제로 기조 발제에 나섰다. 전국을 수도권과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 등 4개의 초광역 지방자치단체 거점으로 나누고 각 지방거점을 하나의 나라처럼 강소국화하는 전략이다. 차기 대권 후보인 오 시장이 국가 단위의 발전 전략과 청사진을 구상해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 시장은 "중앙 정부가 모든 권한을 지방 4개 거점으로 이양하고 4개의 지방 거점이 각자 경쟁 상태에 돌입하면 10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 시대를 열 수 있다"며 △통합행정 거버넌스 체계 △세입·세출 분권 강화 △특화된 경제발전 전략 등 3가지를 방법론으로 제시했다.

오 시장은 "초단기간 경제가 급성장하고 엄청난 국민소득을 빠른 속도로 만들어 낸 아일랜드와 싱가포르를 보면 인구가 500만~600만명 수준으로 작고 영어를 공통으로 쓴다는 것 외에도 파격적으로 법인세를 깎아준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아일랜드의 경우 법인세율이 12.5%인데 첨단 기술을 가진 빅테크는 법인세를 그 절반인 6.25%만 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방정부 거버넌스를 종합행정 중심으로 바꿔 분야별 정책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행정과 입법 권한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완전히 이양하고 지방정부가 발전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중앙의 유능한 엘리트 공무원들을 지방으로 내려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특히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지방에서 발전 전략을 짜는 데 한계가 있다"며 "엘리트 기획재정부 공무원의 3/4을 지방으로 내려보낸다는 생각을 해야 초광역 4개 거점이 퀀텀점프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아울러 "국세 이전과 공동세 도입으로 지방의 분권과 균형발전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2008년 서울시장 재직 당시 재산세 공동과세를 도입해 25대1 수준이던 강남과 비강남 자치구 재원을 10대1 정도로 줄인 적이 있다"며 "국세인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각각 50조원 이상 과감히 이전해 현재 8대2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 비중을 5대5로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 시장은 또 "재정자립도 격차 완화를 위해선 공동세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부가가치세율을 5%포인트(p) 인상해 지역 낙후도에 따라 차등배분해야 한다"고 했다.

오 시장은 "지방거점 정부의 거버넌스를 바꾸고 재원을 나눠주면 규제를 완전히 지방으로 이양해 경제발전 전략을 짜도록 재량권을 넘겨야 한다"며 "거버넌스(종합행정)를 바꾸고 뛸 수 있는 밑천(세수)을 마련해 주고 콘텐츠(발전 전략)를 재량껏 만들 수 있게 해 주면 4개의 강소국화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 시장에 앞서 기조 발제에 나선 박 시장은 "수도권 일극주의와 강남 감각을 가진 엘리트 지배층이 현재 대한민국 발전을 지체시키고 있는 가장 큰 원흉"이라며 수도권 중심 경제발전을 모델을 폐기하고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발전하는 '공진(共進) 국가론'을 제안했다.

박 시장은 "1980년대 초까지 대한민국 경제발전은 (수도권) 일극주의로 진행되지 않았다"며 "1980~90년대부터 서울과 수도권 일극주의가 심화돼 모든 기업과 자본, 인재가 서울로 몰렸다. '인 서울'이란 말이 보편화된 것도 90년대"라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나라 발전을 가로막는 수도권 일극주의의 핵심에 이른바 '강남 감각'을 가진 엘리트 지배층이 자리하고 있다며 강남 중심주의를 한류에 빗댄 '강남류'로 명명했다. 그는 "한국의 최상층, 초고소득층과 대기업 임원, 중앙정부 고위 관료 등 엘리트들의 80%가 강남에 살고 있다"며 "대한민국 내에는 강남의 생활 양식과 역할을 주도하는 용산과 과천, 분당 등을 중심으로 의식을 공유하는 계층이 형성됐다"고 비판했다.

박 시장은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새 성장 모델로 '공진국가'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박 시장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공진화(함께 진화·발전함)가 적자생존보다 더 유리하다"며 "발전국가의 수직적 통합체계에서 수평적 의사결정과 분업, 혁신·공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