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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서둘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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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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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0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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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박일만 시인 ‘뼈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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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현대시’로 등단한 박일만(1959~ )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뼈의 속도’는 몸과 마음을 다해 한 가족을 지탱한 가장(家長)의 고군분투와 쓸쓸함, 깨달음을 다루고 있다. “생의 무거운 끝을 온전히 끌어안고”(‘초행길’) 살다 보니 정작 몸은 뒷전으로 밀려나 상처투성이고, 중심에서 밀려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전장(戰場)과도 같았던 생의 전선에서 물러나자 비로소 감춰두었던 상처와 주변 사람들의 아픔이 확연해진다. 생의 속도를 늦춘 시인은 천천히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면서 삶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시든 꽃을 따려다가 그만둔다
꽃이 나무를 그러쥐고 있는 힘에 화들짝 놀란다
봄날엔 화려했을 저것이 지금은 핏기 가시고 몸 비틀렸다
잎사귀들 틈에 볼품없어 가지에서 떼 내려던
내 손에 전해오는 악력과 전율!
저것도 한때는 피가 돌고 살에 물기 가득하고
한 나무의 식솔로 살았을 것이거늘

사람도 저와 같아서
한창때는 팽팽한 모습이었다가
꽃 같은 모습으로 한집안에 의지하며 살다가
시절이 흘러가면 저 꽃처럼 시들 것이거늘

아침에 핀 꽃이 저녁에 들었으나
제 살붙이들을 아직도 꽉 쥐고 있는

시든 꽃을 솎아내려다 그만둔다

- ‘살붙이’ 전문


시 ‘살붙이’는 시든 꽃을 통해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잎사귀들 틈에 볼품 없”는 “시든 꽃”을 무심코 잡아당기다가 “화들짝 놀란다”. 쉽게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완강하게 버틴 것.

시인은 “지금은 핏기 가시고 몸 비틀렸지만” “봄날엔 화려했을” 순간에 “한 나무의 식솔로 살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내 손에 전해오는 악력과 전율”을 느끼는 순간 시인은 가족을 떠올리며 깨닫는다. 가족은 아프다거나 늙었다 해서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이 보살펴 다른 가지처럼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시든 꽃”이라 해서 무에 다르겠는가.

풍겨오는 빵 냄새, 개 한 마리 어슬렁댄다
내 유년과 닮았다
배고픈 날 방앗간을 기웃대던 시절,
저 풍광은 기억 속 밀밭이다
그곳에는 부풀어 오르는 질량이 있었다

철야 근무를 마치고 빈 도시락통 철렁이며
모퉁이 돌아가면
언제나 푸르게 넘실대던 꿈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파릇한 향기보다 먼저 허기가 밀려왔다

자전거 빵 배달원의 꽁무니를 따라 돌던
온종일의 내가 있었고,

식솔들 앞세우고 밀고 가는 리어카 위
밀가루 포대에
아버지는 항상 발효되는 듯
허리를 주무르셨다

나 이제 그 나이 되어
빵집 앞에 배불뚝이로 서 있다

- ‘빵집 앞’ 전문


시인은 추억한다. 가난하던 시절 생선 한 토막을 아들에게 덜어주던 어머니(‘지구의 저녁 한때 4’), 냄새나는 젓갈에 먹던 꽁보리밥(‘발효’), 시장에 땔감을 팔고 늦은 밤 달빛을 밟으며 돌아오신 아버지(‘지구의 저녁 한때 1’), 스물 갓 넘은 나이에 남자 친구를 소개하던 누이(이하 ‘누이’).

시인은 단순히 추억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삶에 투영시킨다. 아니 현재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통해 과거를 소환한다. 하지만 과거나 현재나 가난한 삶의 모습은 변함없다. “살아온 내력을 눈매가 대신 말해” 줘도 말없이 견디며 살고 있다. 서로 안부를 묻고 돌아서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시 ‘빵집 앞’에서는 빵집 앞을 서성대는 “개 한 마리”를 통해 “배고픈 날 방앗간을 기웃대던 시절”의 나와 “허리를 주무르셨”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배고픔의 발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밀밭”이 있다. 빵이 되기 이전의, 혹은 남의 집 밀(밭)은 빛 좋은 개살구다. 아무리 많아도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배고픔이 “부풀어” 올라 더 허기지게 한다.

좀 더 성장해 취직하고, “철야 근무”를 하면서도 “언제나 푸르게 넘실대던 꿈”을 꾸었지만 빈한한 살림살이는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 아니 허리가 아픈 아버지로 인해 더 안 좋아진다.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먹여 살리다 보니 어느새 “식솔들 앞세우고 밀고 가는 리어카 위”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고, “빵집 앞에 배불뚝이” 중년 사내의 모습으로 서 있다.

젖은 습기마저 바다에 돌려준 너희들
폭설을 맞고도 떠는 기색이 없네

삼삼오오 스크럼을 짜고 빳빳한 온기 나누며
겨울의 언덕을 타고 노네

그래도 왜 외롭지 않겠는가
올해나 작년에 다녀간 식솔들의 흔적 위에서
혹한을 견디는 일

맨살로 얼다 녹으며 세상 건너가는 나의 계절은
힘줄 만큼이나 질긴 것이네

살갗을 찌르는 동토의 바람
드디어는 조금도 아프지 않네

- ‘황태덕장’ 전문


시인은 돌아본다. 도깨비 시장의 좌판 인생들(‘덤’), 바닷가에서 저녁놀을 바라보는 몸이 불편한 노부부(‘동행’), 지하철역에서 노숙하는 사내(‘그 사내의 발등’), 노점상·일용직·트럭운전·대리운전 등을 하다 병든 중년 가장(‘투잡’), 먼저 죽은 아내의 수의를 짓는 노인(‘수의 짓는 노인’), 정치판을 전전하다 돌아온 중년배우(‘왕년의 스타’), 파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밀고 가는 노인(‘구부러진 사람’)….

심지어 삼복더위 뙤약볕 도로 위에서 말라죽은 지렁이(‘지렁이’), 재개발지구에 유기된 고양이(‘길고양이’), 잘 익은 한 통의 수박(‘수박’)에까지 눈길을 준다. 시인은 이들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는다. 인생이란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동행, 한순간만 방심해도 낭떠러지인 긴 여정이라는 것이다.

시 ‘황태덕장’은 고적하고 외롭지만 “혹한을 견디는 일”이 곧 삶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고향인 바다를 떠나 찬바람과 폭설을 견디는 황태와 덕장을 지키며 타지로 간 자식들을 기다리는 늙은 부모는 다르지 않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지만 “떠는 기색이 없”는 황태나 외롭지만 “맨살로 얼다 녹으며 세상 건너가는” 사람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

폭설이 내린 황태덕장의 풍경이 수묵담채를 떠올리게 하지만 “드디어는 조금도 아프지 않”다는 표현에서는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또한 “살갗을 찌르는 동토의 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결기와 인내, “고요히 삶에 잠기는”(‘휴식’) 겸허와 달관의 경지는 이 시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시인은 깨닫는다. 발바닥의 티눈 하나가 “생을 통째로 뒤뚱거리게”(이하 ‘티눈’) 하므로 이제부터는 서둘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아가라는, “작은 알맹이 하나에도 몸을 절뚝여야 하는/ 나의 생을 향해 쉬어가”라고 스스로 다독여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뒤뚱거리고 흔들리고 휘청거리고 절뚝거렸다면, 이제부터는 삶의 균형과 중심을 잡으며 “정말 반듯하게”(‘초행길’) 살아야 한다는 것을.

◇ 뼈의 속도=박일만. 실천문학사. 132쪽/10000원.


[시인의 집] 서둘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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