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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살아 있는 죽음 속에 축적된 어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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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 시인
  • 2020.02.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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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성향숙 시인 ‘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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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와 2008년 ‘시와반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성향숙(1958~ )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는 정해진 틀과 경계, 관성으로부터의 일탈을 욕망한다. 성장하면서 기존 질서와 가치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자아는 극도로 억눌려 ‘우울의 숲’에 갇힌 채 고독과 권태, 죽음과 사투를 벌인다.

방 안에 갇힌 우울한 자아는 “불 끄고 몰래”(이하 ‘어둠의 맛’) “살아 있는 죽음 속에 축적된 걸쭉한” 어둠과 슬픔을 맛보고, 고독을 발명하고, “가장 맛있는 순간”(‘스테레오 타이피’)을 복제한다. 세상과 담쌓은 칩거는 소문(루머)을 생산해 내지만 용기를 내 나와 타인과의 경계를 넘어 산책을 시도한다. 산책할 때 ‘바깥이 탄생’(제1부)하고, ‘어쩌다 진화’(제2부)하고, ‘해 뜨기 전’(제3부)에 ‘거기 없’(제4부)는 나는 죽음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닫는 시 ‘지평선을 바라본다’에서 보듯, “나와 죽음을 연결하면 지평선으로 편입”되고, 그 “적막한 선” 너머는 “울음조차 일으킬 수 없는 청결한 죽음” 이후의 세계다. “비의 수직”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수평선이 일어나 걸어온다”. “저 먼 선을 건너오는” 것은 “인과관계 없는”(‘뚱딴지’) 아버지나 “젊어 죽은 엄마”(‘12월’), 혹은 “죽은 줄도 모르는 언니”(‘벌안’)가 아닌 어린나무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어린 생명은 “아직도 내게 오는 중”(‘상투적으로’)이다. 아직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잠깐만,
들판을 지나 구름을 따라가다 접질려 발목이 삐었다
빛나는 햇살이 이마에 부딪쳤기 때문이야
대지에게 무한 신뢰를 보냈기 때문이야

소복하게 부푼 멍과 푸른 발등과
시린 발목을 가만히 직시하는데 우두커니
말뚝에 묶인 줄 끝에 붙어
염소 한 마리 깔깔깔 노래 한 소절 부른다
말뚝을 몇 바퀴 빙빙 돌면서

충분해
달달한 감동은 아니지만
뒤집힌 바퀴처럼 가끔 헛발질의 리듬을 음미하는 것
우울을 전달하는 절름발이 걸음으로도
자유로울 수 있지

아침의 눈인사와 지난밤의 잠자리, 손에 쥔 휴대폰
길바닥에 숨은 크고 작은 안녕들
원초적 감정과 본능들

일이 꼬이면 뒤돌아 몇 발짝 절뚝이며 걸어보는
어쩐지 슬픈 뒷모습

들판의 염소가 감긴 줄을 풀다가 말뚝에 머리 찧고
질식한 흰 침을 흘리고 서 있어
고요하고 절망적인 평화, 역겨워

염소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야

- ‘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전문


표제시 ‘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에서 “안녕하십니까?”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인사다. 굳이 대답을 듣기 위한 것도, 대답할 필요도 없는 권위나 습관에 의한 관성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안녕’이라는 말에는 가식과 진솔, 행복과 불행, 생과 사의 경계를 가르는 의미론적 존재의식이 숨겨져 있다. 이를 시 맨 앞에 배치한 것은 시인의 치밀한 의도라 할 수 있다.

“잠깐만,”은 인사와 대답 사이의 간극이면서 발목을 삔 순간이다. 내 방심 때문에 발목을 삔 것일 수 있지만 이보다는 평평할 것이라 생각한 대지에서 햇빛이 눈 부셨기 때문이다. 남성성(아버지)을 상징하는 태양과 여성성(어머니)을 상징하는 대지를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부상당했다는 것은 믿음에 대한 상처다. ‘직시’는 나와 내 상처와의 거리, ‘우두커니’는 아픈 나와 권태로운 염소 사이의 감정을 의미한다.

다친 나를 약 올리듯 “깔깔깔 노래 한 소절” 부르는 “염소 한 마리”는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 “헛발질의 리듬을 음미”하며, “절름발이 걸음으로도/ 자유로울 수 있”는 내 입장과 엇갈린다. 하지만 나도 “아침의 눈인사와 지난밤의 잠자리, 손에 쥔 휴대폰”과 같은 안녕을 확인할 수 있는 것들에 속박되어 있다. “말뚝에 묶여 있는” 염소와 다를 바 없는 처지다. “염소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라지만 실상은 내가 말뚝에 매여 빙빙 도는 염소인 것이다.

서점의 책들은 날것이다

책들이 풀처럼 일어선다
나는 낯선 글자들에 민감하다

신선한 제목들 앞에선 야생의 짐승으로 돌변한다
눈에 띄는 대로 뺏다 도로 끼웠다 한다
날것의 글자들은 날것인 채로

서점의 시간은 풋것을 섭취하는 채식주의자의 원형 식탁
중심은 비어 있고
마리코 아오키가 은밀한 체위를 꿈꾸듯
절름발이 늑대에게도 경건한 목례를 표하며

상상도 식물성일까?

하루를 꺼내 들고 백 년의 변기에 앉으면
시간을 세는 초침을 이해하고
정착지를 잃은 상상들을 외롭지 않게 다독였다
끈질기게 씹어 삼킨 살코기를 생각한다
관념이 풍기는 따위의 고소한 맛에 대해

한 권의 들소를 해독하는 데 천만 평 초원이 필요하다
원형 식탁의 즐거운 추억일지라도
들소는 묵직한 침묵으로 배설될 것이다

-‘마리코 아오키는 서점에 갈 때마다 배변 욕구가 생긴다’ 전문


“울창한 숲에서 나무와 함께 아파트가 탄생”(이하 ‘코드’)하고 나는 “또 거주지를 옮”긴다. “산은 넓은 도로가 되고 논밭”은 서점이 되었다. 오늘은 서점으로의 외출이다. 위의 시 제목은 마리코 아오키 현상, 즉 책 인쇄에 사용하는 잉크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인간의 뇌에 영향을 주었거나 많은 책 중에서 필요한 책을 골라야 하는 초조한 심정 때문에 배변 욕구가 생긴다는 설에서 가져왔다.

서점에 진열된 ‘날것’의 책들은 “풀처럼 일어선다”. 서점은 순간 벌판이라는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지식의 산물인 책은 들판에서 자라는 싱싱한 풀이다. “야생의 짐승으로 돌변한” 나는 ‘날것’인 풀을 뜯어 먹는다. 서점은 책의 무덤이 아닌 “날것의 글자들은 날것인 채로” 맛나게 먹는 만찬장으로 변환된다. 채식주의자인 나는 원형 식탁에 앉아 “풋것을 섭취”하려 한다.

살아 있는 생명을 취한다는 것은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닌 ‘생존’이기에 경건함을 동반한다. ‘하루’는 오늘 읽을 책, ‘백 년’은 책 제목(어쩌면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거나 책을 읽는 시간을 가리킨다. 중심이 비어 있는 원형 식탁에 앉으면 침묵은 고요로 변한다. 몰입의 순간이다. 내 안으로 들어온 ‘날것’은 이해하고, 다독이고, 생각하면서 “관념이 풍기는 따위의 고소한 맛”이 된다.

책을 통해 쌓은 지식은 “원형 식탁의 즐거운 추억”이다. 하지만 “한 권의 들소를 해독하는 데 천만 평 초원이 필요”하듯, 내 지식은 살아 있는 나무의 희생으로 이룬 것이다. “묵직한 침묵으로 배설”된 들소를 해독하는 일은 의미 없을지 모르지만, 들소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지겠지만 이 시(집)를 읽는 사람(독자)들은 들소(시인)를 알고 있다.

◇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성향숙 지음. 푸른사상 펴냄. 154쪽/ 9000원.


[시인의 집] 살아 있는 죽음 속에 축적된 어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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