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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죽음을 품고 삶을 감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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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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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김옥종 시인 ‘민어의 노래’

[시인의 집]죽음을 품고 삶을 감싸 안다
2015년 ‘시와경계’로 등단한 김옥종(1969~ ) 시인의 첫 시집 ‘민어의 노래’는 생명을 죽임으로써 생명을 살리는 자의 슬픔이 짙게 배어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마 위는 “내 생을 도축”(‘췌장아 미안하다’)하는 곳이기도 하여 비장미마저 흐른다. 칼에 잘리는 건 생선 살이지만, 내 살이 잘리는 것 같은 통증에 시인은 죽음을 품고 삶을 감싸 안는다.

광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시인은 요리, 특히 회를 뜨면서 관찰한 것을 사랑이나 이별, 살아가는 이야기로 풀어내지만 거창하게 철학이나 종교를 들먹이진 않는다. 시인은 남도 특유의 걸쭉한 사투리와 푸짐한 먹거리, 풍부한 해산물을 시의 소재로 활용하면서 사랑이나 외로움, 쓸쓸함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하여 그의 시에는 저녁 무렵의 갯내음이 진동한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꽃을 안으로 피운다고/ 속살이 덜 뜨겁게 느꼈다면/ 네 생은 겉이 멍든 파란 시절을 보냈을 뿐이다”(‘무화과’), “봄을 품어야 겨울이 깊어진다”(‘해넘이’), “생은 넘쳐나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즐거워서 넘쳐나는 것”과 같은 문장에선 경험과 성찰이 감지된다. 또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회한과 그리움도 묻어난다. “썩을 년/ 사랑한다고나 하지 말 것이지”(‘더덕무침’)에선 ‘쿨’한 척, 강한 척하지만 여린 속까지 감추진 못한다.

어머니 선술집 할 때
손님이 가져온 광어 한 마리 어설픈 첫 회 뜨기로 시작해서
벌써 십오 년 칼의 날은 가슴을 저밀 만큼 자라나 있는데
마흔일곱 나이에 묻는다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네가 원하는 게 진정 요리사인지
엎어트리고 자뿔셔 봤으니
이젠 살리는 일을 하고 싶은 게냐?
나는 또 묻는다
내 심장에 고드름을 꽂듯이
“지치지 않게 가거라”
이 메아리는 늘 결을 바꾸지 않았으니
“지친 이들을 안고 가거라”
단 한번만이라도 지친 그대에게 따뜻한 심장을 꺼내 체온을 올려줄 수 있다면
내 마른 대파 잎의 봄을 잘게 찢어 고명으로 올려줄 것이니.

- ‘숙명’ 전문


시 ‘숙명’은 시인이 어떻게 회를 뜨는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선술집을 하는 어머니를 돕다가 우연히 “손님이 가져온 광어 한 마리”를 회 뜨다가 재능을 발견한다. “벌써 십오 년”째 광주에서 고향 이름을 딴 ‘지도로’라는 횟집을 운영하는 시인은 스스로 묻는다. 진정 가고자 하는 것이 ‘요리사의 길’인지,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갈 것인지. 중요한 것은 생계가 아니라 “지친 이들을 안고 가”는 것이다. 시인은 삶에 지친 사람들의 “체온을 올려줄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할 것을 다짐한다.

시인의 이력은 좀 특이하다. 발문을 쓴 강제윤 시인에 의하면 전남 신안군 지도에서 중학교를 마친 그는 목포로 유학을 온다. 공부보다 싸움에 능했던 그는 고교 시절 목포의 유명 폭력조직의 일원이 된다. 그때 첫사랑을 만났는데 “깡패 새끼랑은 더 이상 안 만나겠다”는 선언에 정신을 차리고 조직을 탈퇴한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킥복싱 선수가 되었다가 한국 최초로 이종격투기 선수로 출전한다. 1회 KO패를 당한 그는 ‘쪽팔려’ 바로 은퇴한 후 킥복싱 체육관을 연다. 점점 수련생이 줄자 체육관을 닫고 어머니의 식당 일을 돕는다. “엎어트리고 자뿔셔” 본 그는 ‘어머니의 길’을 물려받으며 비로소 ‘나의 길’을 발견한다.

여보게
내 연인의 굽은 등을
젓가락으로 보듬었더니
바다는 냉골이었으나
물밑은 얼마나 뜨거웠던지
그만,
화상을 입고 말았다네

- ‘고등어 구이’ 전문


남도의 풍성함으로 사람들의 미각을 사로잡던, ‘요리사의 길’을 걷던 그에게 ‘또 다른 길’이 펼쳐진다. “엎어트리고 자뿔”시면서도 놓지 않았던 ‘시인의 길’이다. 낮에는 칼을 들고 밤에는 펜을 들었다. 요리를 하면서 만난 민어·낙지·꼬막·가오리·준치·홍어·주꾸미·갑오징어·고등어·문어 등은 그저 횟감이 아닌 시의 소재였다. 죽음을 위무하고 “살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민어 몇 마리 돌아왔다고 기다림이 끝난 것은 아니다”(‘민어의 노래’), “꼬막을 먹는다는 것은/ 달의 뒤편을 맛보는 것”(‘꼬막’), “가래 낙지 먹고 싶은 날에는 언제나 귀가 아팠다”(‘무덤낙지’), “그깟 예전 설움이야 속을 도려내면 될 일”(‘가오리찜’), “생의 건너편에 있는 것들까지 부르고 잡다”(‘주꾸미 초무침’), “술로 견디든/ 사람으로 견디든/ 생을 붙들고 있다가”(‘갑오징어 회’), “삶은 고비에서/ 허허롭게 일어나는 것”(‘문어’) 등에서 알 수 있듯, 시인은 갯것으로 요리를 하다가 시적 상상력을 넓힌다. 그렇게 싱싱한 시가 쌓여갔다.

시 ‘고등어 구이’도 그중 한 편이다. 불판에 올려진 고등어는 “내 연인”으로 치환된다. “바다는 냉골”, 즉 연인의 주변은 반응이 차가웠지만 연인의 사랑은 뜨거워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화상을 입”는 것이다. 사랑이란 그만큼 치열해야 한다는 것을 시인은 짧은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김옥종 시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랑과 이별을 통해 정통서정을 노래한다는 것이다. “너의 치명적인 것은/ 독이 아니라 애정이었으니”(‘복섬’), “얼마나 많은 세월을/ 당신을 짓고/ 허물어 내야/ 봄이 오는 것인가요”(‘벼락 새비 젓’), “마비가 되고서야 지독한/ 통증에서 벗어나는 것”(‘연애에 대해’)에 드러나듯, 그의 사랑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여 그 사랑은 “지독한 통증”과 슬픔을 동반한다.

“외로움이야 또 한 시절 잊고 지내다 보면/ 속쓰림처럼 울컥 올라”(‘갑오징어 회’)오겠지만 정성스럽게 내놓은 음식을 먹고 떠난 자리처럼 헛헛한 속내까지 숨길 수는 없다. 칼을 갈 듯 마음을 다잡아도 어찌할 수 없는 것 또한 세월이다. 요리를 하면서 “무엇을 빼고 억제해야 할 것인가”(‘시인의 말’)를 고민한다는 시인은 오늘도 “연애하듯”(‘고추냉이’) 시와 음식을 만든다. 더 넣을 것도 뺄 것도 없는 시 ‘통닭구이’로 시집을 덮는다.

나는 늙어 가는데
너는 익어 가는구나
내 생도 한 번쯤은
감칠맛 나게 뜯기고 싶다


◇민어의 노래=김옥종 지음. Human & Books 펴냄. 124쪽/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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