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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사막에서 사람을 사랑할 자격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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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1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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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김삼환 시인 ‘일몰은 사막 끝에서 물음표를 남긴다’

[시인의 집]사막에서 사람을 사랑할 자격을 얻다
1994년 월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김삼환(1958~ )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시사진집 2권 포함) ‘일몰은 사막 끝에서 물음표를 남긴다’는 엄격한 도덕적 규율을 따르는 한 엄숙주의자의 삶을 다루고 있다. “곁눈질하지 않고” “결대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李重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 좋은 면을 억누르는 건 엄숙주의자의 숙명과 같다.

“선을 이탈하고 싶은 욕망”(‘탈선脫線’)이 생길 때마다 곁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런 행운이 지속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이 온다면 갈등할 수밖에 없다. 삶이 조금만 궤도를 벗어나도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하고, 혹독한 자기 진통의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 그 순간 불의나 불합리에 저항하지 못하고 나와 타협했을 때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부끄러움이 불쑥 솟아오른다. 그 부끄러움이 삶의 방향성을 재정립한다.

사막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알려주는 것은 북극성이다. “시간의 흐름은/ 인식의 순간에만 의미를 갖는다”는 ‘시인의 말’은 나이를 먹자 삶에 변화가 생겼고, 인식에도 변화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 변화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이루어나가야 한다. 이번 시집은 갈등하고 방황하지만, 결국 사막의 낙타처럼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다짐과 다르지 않다.

염소는 참 맛있게 풀을 뜯어먹는다
매일 한결같이 웃음 띤 얼굴로
품위와 품격을 갖추어 말해야 하는
나도 때로는
잘못된 것에 대해 저항할 수 있을까
염소는 맛있게 풀을 뜯어먹는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온종일
업무에만 몰두하고 단 일 초라도 해찰하지 않는
나도 때로는
부정한 것에 대해 저항할 수 있을까
염소는 풀을 뜯어먹는다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가래침을 뱉지 않으며 타인에게 늘 예의를 갖추는
나도 때로는
무례한 것에 대해 저항할 수 있을까
염소는 풀을 먹는다
염소가 풀을 먹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면
알 수 있으리라.
염소는 참으로 맛있게 풀을 뜯어 먹는다

- ‘나도 저항할 수 있을까 –이중성(二重性)에 대하여’ 전문


시인의 고뇌와 갈등은 “잘못된 것에 대해 저항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에서 출발한다. “매일 한결같이 웃음 띤 얼굴로/ 품위와 품격을 갖추어 말”하는 모범적인 삶은 존경받을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답답하다. 출근하면 “단 일 초”도 딴생각이나 딴짓을 하지 않고 죽어라 일만 하는 삶은 또 얼마나 재미없는가. 여기에 공중도덕도 잘 지킨다. 저항이라 했지만, 실제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섬약함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시인의 부끄러움을 되짚어가면 5월 광주가 있다. 그때 철원 “문혜리 텃골에서”(이하 ‘텃골’) 하사로 군 생활을 하던 시인은 “완전군장에 몇 날 밤을 설치며” 비상대기했다. 연속된 비상대기에 “궁시렁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 고향 남쪽 도시”에서 방송국이 불타고, 사람들은 “질질 끌려나”갔다. 후에 “뭔 일인지 알고 나서도” 시인은 “말 못”하고 살았다,

시인의 의식 깊숙이 죄의식이 존재한다.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산 자여 따르라”(이하 ‘아직도’)는 “대목에 이르면 아직도/ 나는 늘 뭉클해져 눈물”이 난다며 “따르지 못하고” 산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드러낸다. 또 “돌멩이 한번 던지지 못하고/ 머리띠 한번 묶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안산 둘레길을 걸어서 한 바퀴 돌다가
내려오기 직전 아래를 내려다보면
서대문형무소 자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아내는 내게 항상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적어도 문인이라면
언행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 한마디는 나를 늘 부끄럽게 한다
굳이 역사 기록을 들추어보지 않더라도
서대문형무소가 어떤 곳인지는
익히 알고 있지만
‘미와 와사부로(三輪和三郞)’
일본인 고등계 형사의 이름을
내가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은
그 놈 앞에서 치욕을 당해야 했던
독립투사들의 모습이 스쳐가기 때문이고
식민지시대에 살았던 저명한 문인들에 대해
그들이 남긴 빼어난 문학작품과
그들이 행한 친일의 행적은
구분하여 평가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의
쉰내가 진동하는 목소리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 ‘서대문형무소’


시인의 부끄러움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에 닿는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이하 ‘밑줄을 그으며’) 임종국의 ‘실록친일파’ 책을 읽을 때, “간혹 한숨과 탄식을 내뱉”는다. 오래전에 읽었는데도 책장에서 다시 꺼내 “그어놓은 밑줄에 또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다. 시에 인용한 그 책의 서문에는 “혼이 없는 사람이 시체이듯이,/ 혼이 없는 민족도 죽은 민족이다./ 역사는 꾸며서도/ 과장해서도 안 되며/ 진실만을 밝혀서/ 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고 쓰여 있다.

시인의 부끄러움은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시인은 초야에 묻혀 후학을 양성하던 사림(士林) 같다. 선비처럼 고고한 삶을 살고 있지만, 백성은 고초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식인의 고뇌. 외면할 수도,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상소조차 올리지 못하는 유약함에 대한 반성이다.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고 울분하고, 반성하고, 이를 시로 쓰는 것이다.

“적어도 문인이라면/ 언행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아내의 질문이 시인을 부끄럽게 한다. 또 평소 엄했던 아버지의 “말씀의 무게”(‘소금꽃에 대하여’)나 “구순을 앞두고도 정갈하신 어머니”(사막어록 3‘)의 “이 세상 누구와도 척지고 살지 말아라/ 아무리 급하고 어려워도 막말은 하지 말”(‘옛우물’)라는 말씀은 시인을 엄숙주의자의 삶으로 이끌고 머물게 했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여기 와서
사람을 사랑할 자격을 얻었다

하란 산맥을 넘어 텅거리 사막을 횡단하는 바람이
등을 구부리고 낮게 불어와 흐물흐물한 해를 밀어내는
저녁 무렵에 내 몸에서 빠져나온 벌레들이 모래 속을 헤집어
손금 같은 선을 그으며 가고 있었다

선을 따라 내 노트에 적힌 미움의 기록들을
하나하나 모래 속에 묻었다 내 이력 속에 얼룩처럼 묻어 있는
몇 번의 욕설과 몇 번의 무례와 치욕, 몇 번의 눈물 섞인 안타까움도
함께 묻었다 모래 위를 쓰다듬는 키를 낮춘 바람의
부드러운 손을 볼 줄 아는 눈을 얻었다

그 자격증 하나 얻기 위해 이 먼 길을 돌아왔느니
벌레들이 빠져나간 텅 빈 몸으로 텅거리 사막을
걷고 또 걸으며 나는 다시 사람을 사랑할 자격을 얻었다

- ‘사막어록 2’ 전문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인의 삶을 지탱시켜주던 이들은 시방 곁에 없다. 이런 현실은 시인을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떠나게 한다. “발을 헛디뎌 넘어져 보”(이하 ‘토우土偶 23’)고서야 시인은 “오가는 길만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이중성이 슬그머니 치밀고 올라올 때쯤 시인은 사막으로 간다. “무겁게 등짐을 지고 사막 위를 타박타박 걷”(‘사막어록 1’)다 발견한 것은 북극성과 “사람을 사랑할 자격”이다.

그 자격의 조건은 사막을 걷는 고행을 스스로 한 것처럼 말뿐 아니라 앞으로 행동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사막에 오기 전의 사랑이 ‘말’이라면 사막에서 얻은 사랑은 ‘행동’이다. 손금에 묻어 있는 집안의 내력이나 섬약한 성정으로 행하지 못한 “미움의 기록들”과 “몇 번의 욕설과 몇 번의 무례와 치욕, 몇 번의 눈물 섞인 안타까움”을 모래 속에 묻는다. “마음속의 결이 명쾌”(‘장작을 패면서’)해진다

사막에서 “기진한 사랑을 충전”(‘충전기의 힘’)하고, “지금까지 담아온”(이하 ‘새로 고침’) 생각을 “전부/ 새로 고”치겠다고 다짐하자 비로소 부끄러움에서 자유로워진다. 시인은 기꺼이 “산 자여 따르라”는 행렬에 합류해 저항의 시도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단단한 마음 하나로/ 이 세상을 버”(‘돌과 나무의 대화’)텼다면 이제는 “가슴을 쭈욱 펴고/ 당당하게”(‘미소공장’) 새길을 갈 것이다.

◇일몰은 사막 끝에서 물음표를 남긴다=김삼환 지음. 북인 펴냄. 128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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