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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세상에서 삭제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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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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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탁운우 시인 ‘혜화동 5번지’

[시인의 집]세상에서 삭제되는 것들
2012 계간 ‘시현실’로 등단한 탁운우(1962~ ) 시인의 첫 번째 시집 ‘혜화동 5번지’는 내 삶의 중심과 사회의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일(사건)들의 관계와 연대, 그 방향성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시인은 연민이라는 지도 위에 그린 삶의 풍경을 사회변혁과 실존적 사유, 생명존중이라는 뚜렷한 좌표로 찍어 보여준다.

세상에서 삭제되는 사건과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는 시인은 “촉망받는 것들의 공공성”(‘늦은 점심’)으로 가는 과정이나 정의·가치·겸손·균형과 같은 “삶의 명도”(‘고양이의 명도銘刀’)를 중시한다. “더 부서지지 않기 위해서/ 다른 길”(‘끝내 이기는 길’)을 갈 때 필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성이며, “세상과 나 사이”(이하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거리’)에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거리”라는 인식은 시를 한결 깊게 만든다.

시인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생활환경의 연대성을 중시한다. “연민을 괜찮다는 우리의 고백으로 나누고 싶”(이하 ‘자서’)다는 시인은 “나를 깜깜한 어둠 속으로 밀어 넣던 질문들을 꺼내 시”를 쓴다. 또한 시종일관 낮은 곳에 머물며 “더 멀리 돌아가 깜깜한 어둠 속에서 길을 찾”고자 한다.

나무 벽에는 쉽게 못이 들어갔다
단 한 번의 못질에도 쉽게 제자리를 내주는 벽

지난여름 이사한 집에서는
단 한 번의 망치질도 성공하지 못했다
자로 재 정확하게 날아간 망치에도
못을 토해
내 손을 찌르던 벽

토해낸 자리마다 들어차던 깜깜한 어둠

다시 빼도 되지 않을 단단한 못자리는 없었을까

오늘 나는
차라리
저 벽이 되어보기로 한다

- ‘못질’ 전문


서시와도 같은 시 ‘못질’은 이번 시집의 방향성과 안으로 숙성시킨 자기 탐구를 보여준다. 시인에게 벽을 뚫는 행위는 타인에 의한 자아의 해방이나 자율의지, 혹은 “순수할 권리”(‘순수할 권리’)를 획득하는 것과 같다. 시인 스스로 앞에 놓은 벽은 누군가 낸 “칠흑 같은 틈”(‘상처’)이나 외풍을 막아주지 못하는 바람벽(‘빈 바람벽을 이고 가위눌리던 밤’)이 아니라 무언가를 걸어두어야 하는 자리에 존재한다.

이사를 하면 액자나 옷걸이, 달력 등 벽에 걸어야 할 게 많다. 벽은 어떤 재질로 되어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못을 받아들인다. “나무 벽은 쉽게 못을” 받아들이지만, 콘크리트 벽은 “자로 재 정확하게 날아간 망치”질에도 못을 튕겨낸다. 쉽게 못을 허용한 나무 벽은 이후 못의 지배하에 뽑히는 순간까지 종속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못을 토해”낸 콘크리트 벽에도 자리를 바꿔가며 두드리면 끝내 못이 박힌다는 사실이다. 단단한 대오를 자랑하지만, 어느 한 곳은 못에 틈을 내어주고, 못을 “토해낸 자리마다” “캄캄한 어둠”이 들어찬다. 저항의 상처를 지켜보던 시인은 “다시 빼도 되지 않을 단단한 못자리”를 떠올린다. 현실의 자리에서 상처받은 가족과 이웃을 너무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못이 되”고 싶을 만큼 지켜보는 고통 또한 심하다. 벽을 만들고 끌어안고 허무는 것이 시인의 과제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높이를 잃었다고 생각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네가 미끄러진 어떤 곳

촉수처럼 예민한 너의 평생이
낡은 버스 속 팔걸이에 기대다니

민들레 뿌리보다 더 깊이 박힌
너의 가난을 어쩌지 못해
종양이 자라는 뇌수 한쪽을
봄빛인 양 살았구나

조문도 혁명처럼 빛나던 시대
버스 속 팔걸이에서 네 평생을 놓치다니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듣는다

- ‘혁명의 시대’ 전문


시인의 주석에 의하면 “재스민 혁명”은 튀니지의 시민혁명으로, 튀니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이름을 따 서방 언론이 붙인 명칭이다. 시위는 2010년 12월 남동부 지방도시인 시디 부지드 거리에서 무허가 노점상을 하던 한 청년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튀니지 시민은 반정부 시위로 영원할 것 같은 독재 체제를 한 달도 되지 않아 무너뜨렸다.

가난하게 살다가 뇌종양에 걸려 죽은 한 혁명가를 조문하고 돌아오면서 공교롭게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듣는다”. 기본적으로 혁명은 통치형태를 바꾸는 것이지만 사회·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기존 가치체제를 부정하고 깨뜨려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시인이 생각하는 혁명가는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혁명가의 길 끝에는 가난과 아픈 몸 그리고 죽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조문도 혁명처럼 빛나던 시대”를 산 “네 평생”은 실패한 삶이 결코 아니다. 아우의 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가난이나 부조리, 정의를 위해 투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혁명가의 삶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 사람이 떠나자 우리는 다 같이 서로의 모가지를 끌어안았다 겸손한 단 한 사람만이 골목 끝 세탁소를 향했는데 도시의 하수가 끝나는 지점에는 겸손한 시민을 위로하는 희망세탁소가 운영되고 맑고 깨끗한 운영을 위해 매달 시민의 주머니에서 적정액이 이체되지만 누구도 세탁소 시민이 되는 건 진실로 꺼린다 세탁소에서는 매번 적정한 매뉴얼로 시민의 불행을 희망으로 재생시킨다고 광고하지만 누구도 겸손한 불행이 지워지거나 회복된 적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비상할 무기도 없어 모가지를 걸어두고
출근하던 날

도시의 하수 세탁기의 프로세스를 통과하다 말고 세상과 작별한 시민의 소식을 듣는다 오늘도 세탁소 매뉴얼은 겸손한 시민의 자세를 조금 더 착하게 재생하려 애쓰고 속삭인다 오늘 네가 떨어진 그 다리는 별게 아니라고 조금만 더 겸손해지면 오늘 떨어진 그 다리에 다시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우리는 차마 무거워 흘리지 못하는 눈물을 지우고 다시 다리에 오른다

- ‘다리 가까운 데 오르는 법’ 전문


사회적 죽음을 진술하는 시인의 태도는 울분에 차거나 지나치게 경건하지 않고 덤덤하다. 사물을 통해 묘사하거나 감정을 내세우지도 않고, 교훈적 메시지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다 같이 서로의 모가지를 끌어안”고 “겸손한 단 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할 뿐이다. 사건과 슬픔의 간극에는 ‘간접’이라는 가상의 벽이 존재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작별한 시민의 소식”을 전해 듣기 때문에 차분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옷을 세탁하는 것과 도시를 세탁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명확한 명제에도 불구하고 세탁소에서 “도시의 하수 세탁기의 프로세스”, 그리고 “오늘 네가 떨어진 그 다리”와 “시민의 자세”가 제시하는 함께하는 가치는 선명하지 않다. “겸손한 불행이 지워지거나 회복된 적 없다”면 오히려 “불행을 희망으로 재생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는 광고, 즉 과장된 가상공간에서만 존재하는 무형의 것이다. 현실은 “눈물을 지우고 다시 다리”에 올라야 하므로 가상의 현실을 넘어 슬픔은 극대화된다. 무거움을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거리와 속도를 조절함으로써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탁운우의 시는 약자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고발과 사회적 연대의 밑바탕에는 생명존중 사상이 깔려 있다. 다음의 기록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혜화동 5번지=탁운우 지음. 한결 펴냄. 132쪽/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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