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銀, RM의 거듭된 진화 '솔루션 프로바이더'

'베스트 솔루션 프로바이더(Best Solution Provider)'. 하나은행 기업영업그룹(기업BU)의 올해 슬로건이다. 올해 여신 전략도 RM(Relationship Manager) 이 단순히 대출영업을 하는데서 벗어나 기업이 필요로 하는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솔루션 매니저'로 육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용승 하나은행 (0원 %) 기업영업그룹 부행장은 "RM은 기업이 원하는 금융상품을 기업 실정에 맞게 디자인해서 제공해야 한다"며 "만능 RM, 즉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진화하자는게 올해 목표"라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개별 기업 및 그룹별로 RM체제가 돼 있고, 지역별로도 구분돼 있다. 또 PM(Product Manager)과 협업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양 부행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며 여신영업의 끊임없는 진화를 강조했다.

'솔루션 매니저'가 된다는 것은 RM 1명이 담당 기업의 자금 흐름에 통달할 뿐 아니라 각종 상품 구조에 대해서도 능통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다양한 기업의 금융 욕구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 시스템에서 RM이 IB(투자은행) 영역까지 아우르는 이런 솔루션 매니저가 되기는 쉽지 않다. 교육도 불충분할 뿐더러 3년 정도면 타부서로 자리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어렵다고 여겨지는 이런 솔루션 매니저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목표도 그래서 나왔다. 양 부행장은 "지금까지 RM은 론(대출) 비즈니스를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제는 방향이 바뀌었다. PM과 RM이 유기적으로 코웍(Co-work)해 솔루션 매니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M의 역할을 솔루션 매니저로 확대할 수 있는 배경은 하나금융지주의 진화된 협업체제에 있다.

국내 금융지주회사 중 하나금융지주만큼 진화된 협업 구조를 갖춘 곳은 많지 않다. 하나은행의 RM부서를 예로 들자. 기업영업그룹(기업BU)은 여의도 하나대투증권 빌딩에 있다. 금융지주는 기업BU을 컨트롤하고 기업BU에서 은행의 RM과 증권의 PM을 통합 관리한다. 다른 금융지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조다. 하나은행과 하나대투증권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런 구조는 개인금융이나 기업금융 가릴 것이 없다. 양 부행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하지 않을 바에는 금융지주를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기업영업에 대한 신념은 확고했고 지금의 구조를 짜는 데 기본 철학이 됐다. 김 회장은 하나은행의 RM이 유일하게 ‘영업’과 ‘심사’를 함께 다루도록 해서 타금융기관과 차별화했으며 이는 결국 의사결정의 신속성으로 이어졌다.

그게 1999년말, 2000년 초였다. 하나은행은 당시 국내 처음으로 RM 제도를 시행했던 보람은행과 합병했다. 이는 요즘 은행권 'RM'의 시초다. 시중은행이 본격적으로 RM 제도를 만들어간 게 2002년이었으니 시행착오를 빨리 겪었고 담금질이 됐다.

일화가 있다. 당시 김 행장은 지점장이 적접 기업체 심사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반발이 많았다. 지점장은 영업에 바쁜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철학을 관철시켜 나갔다. 시간이 갈수록 반발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요즘은 기업영업지점장(RM)이 직접 심사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 곳이 없다.

기업들은 "하나은행 RM과 상담을 하면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경쟁 업체의 상황에 대해서도 대화가 통한다. 의사결정도 빨라졌다"고 평을 하기 시작했다.

금융지주 출범 후에도 마찬가지다. 자회사간 중복 부분의 결합을 강조했다. 은행은 증권 업무를, 증권은 은행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접점을 찾아 조직 부서를 새로 세팅해 나갔다. 시너지 효과를 강조한 금융지주회사는 많지만 실제 조직 시스템을 바꿔버린 은행은 적었다. 기업금융 관련 부서가 지금처럼 모두 하나의 줄기로 엮어질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효과는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하나대투증권은 지난해 IFR지 선정 '아시아 최고의 론딜(Loan Deal of the Year)'상을 수상했다. KKR과 AEP의 OB맥주 인수 딜에서 하나대투증권은 원화 차입 4500억원을 주관했다. 은행과 증권이 결합하고 RM의 영역을 확장해서 만들어 낸 성과다. 하나금융지주라는 우산을 쓰고 그 안에서 각 부서의 업무를 미세 조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업영업 확대가 하나금융지주의 진화와 함께 발전해 나갔던 셈이다. 올해 여신 전략도 솔루션 매니저를 통해 구체화될 예정이다.

양 부행장은 "어떻게 보면 지금 하나은행이 '솔루션 매니저'를 하겠다는 것은 '영업'과 '심사'를 동시에 하던 10여 년 전부터 운명적으로 내재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하나은행은 자연스럽게 기업금융 발전 단계를 밟아 왔다"고 했다.

올해 국내 기업의 대출 수요는 크게 줄었다. 금융위기 때 미리 유동성을 확보해 불확실성에 대비하려 했으나 상황이 좋아지면서 잉여 현금으로 대출을 갚는 기업이 많다. 따라서 은행 자금 수요는 많지 않다. 그래서 은행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것이라는 게 양 부행장의 판단이다.

그는 “디테일하게 구분해서 거기에 맞게 대응전략을 짜는 게 올해 영업전략이다. 예컨대 예전에는 수신 자금 비중이 개인과 법인이 6 대 4 정도였다. 요즘은 4 대 6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은행 영업전략은 예전과 바뀐 것이 없다. 이런 부분에서 상황에 따른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게 올해 영업 전략”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