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여만에 금리인상 임박…채권형 펀드, 한달새 4조원 이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한 가운데 국내 채권형 펀드 환매에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한 이후에 4조원이 이탈하는 등 투자자들이 빠른 속도로 자금을 거둬들이고 있다.

2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국내 채권형 펀드 설정액은 88조335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100조원대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지 1년여 만에 12조원이 줄어든 것이다. 이 중 30% 수준에 해당되는 3조9627억원은 지난달 19일 이 총재의 금리인상 신호 이후 빠져나갔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국내 채권형 펀드에는 오랜 기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와 박스권 장세로 뭉칫돈이 들어왔다. 2012년 이후 국내 채권형 펀드 설정액은 매년 10조~20조원씩 불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부터 미국을 비롯해 국내 금리 인상 우려감이 커지고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자금 유출이 시작됐다. 특히 미국이 금리인상에 나선 지난해 11~12월에는 두 달 연속 3조원 이상의 자금이 순유출됐다.

채권형 펀드 환매는 올 들어 한동안 잠잠했지만 지난 6월 이 총재가 금리인상에 대해 언급한 이후 다시 재개됐다. 특히 오는 30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인상 가능성이 유력해지며 다시 순유출 규모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15일부터 20일까지 국내 채권업계종사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2%는 이달 기준금리가 연 1.50%로 인상될 것으로 전망했다.

저금리 기조에서 은행 이자 이상의 안정적 수익을 냈던 채권형 펀드 수익도 올 들어서는 기대 이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국내 채권형 펀드는 2012년 이후 매년 평균 2~4% 수준의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1.43%로 떨어졌고 올 들어서는 전날 기준으로 0.80%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금리인상이 6년5개월 만에 이뤄지면서 단기적으로 채권형 펀드 자금 변동성은 불가피 하지만 과거와 비교했을 때 금리인상 횟수나 폭이 크지 않아 대규모 자금이탈은 없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최근 자금 유출은 연말 자금 수요와 함께 공모형 펀드와 단기채 펀드에서 주로 이뤄진 것일 뿐 채권형 펀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관 사모펀드에서는 의미 있는 수준의 자금 유출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채권형 펀드의 79%(69조7638억원)은 사모펀드가 차지하고 있고 공모펀드는 21%(18조6617억원)에 불과하다.

사모펀드에선 지난달 19일 이 총재의 금리인상 시사 이후 2조8020억원, 공모펀드에선 1조1606억원이 감소했다. 이 기간 공모펀드 가운데 한화단기국공채(-3396억원), 유진챔피언단기채(-1496억원, 동양단기채권(-856억원) 펀드 등 단기채 펀드에서 자금 유출이 가장 많았다.

김기현 키움투자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올해 말을 시작으로 내년에 많아야 두 차례 정도 완만한 금리인상이 예상된다"며 "연말 금리인상과 자금 수요라는 특수요인을 반영해 자금 유출이 일어나고 있지만 내년 초쯤에는 다시 진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본부장은 "일부 자금이 주식 등 위험자산으로 이동할수 있겠지만 공모펀드 자금이나 단기성 자금에 해당되는 얘기일 뿐 기관투자자의 사모펀드나 일임자금과는 거리가 있다"며 "대다수 기관투자자는 자산배분 원칙에 의해 주식과 채권투자 자금 자체가 분리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자금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보험사, 연기금 입장에서 금리상승이 불리한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기존 투자자산의 경우 금리 인상으로 손실이 날 수 있지만 신규로 들어오는 자금은 높은 금리에서 재투자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