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中·加 통화스와프 ‘공치사’…한은 “황당하다” 반박

지난 10월 12일(현지시각) IMF/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중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합의 결과를 설명하는 모습. /사진제공=기획재정부

“솔직히 황당합니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25일 ‘올해 기획재정부 MVP 정책’으로 통화스와프 확대가 뽑혔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해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과 한‧캐나다 상설 통화스와프 체결 실무 협상에 직접 참여한 인사다.

기재부는 연말을 맞아 일반국민과 정책전문가, 출입기자단 등 793을 대상으로 올해 가장 인상 깊은 경제 정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기재부 내 주요 부서가 올린 24개 후보 정책 중 통화스와프 확대가 최고의 정책(으뜸상)에 선정됐다.

기재부는 이 내용을 지난 22일 공식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국민이 공감하는 최고의 기획재정부 정책’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강력한 대외부문 안전판을 확충했다”는 자평도 넣었다.

한은 직원들이 마뜩잖은 이유는 통화스와프 협상을 마치 기재부 독자적으로 주도한 것처럼 표현한 까닭이다.

실제로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과 한·캐나다 상설 통화스와프 체결은 올해 초부터 한은이 실무 협상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관계자는 “통화스와프 계약서에 중앙은행 총재 명의로 서명을 하는 이유는 협상 당사국 중앙은행 발권력을 존중한다는 취지”라며 “이번 중국, 캐나다 통화스와프도 기본적으로 중앙은행 직원들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한은 인사들은 “기재부가 과도하게 공치사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특히 MVP 정책 후보로 추천하면서 한은과 한 번도 상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재부 측은 단순 설문조사 결과를 공표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한다.

그러나 한은 내부에서는 이번 일이 앞서 “한은을 존중한다”고 수차례 밝힌 김동연 부총리 발언에 정면 배치된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무겁다.

지난 11월 15일 오후(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 위치한 캐나다중앙은행에서 이주열(왼쪽) 한국은행 총재가 스티븐 폴로즈 캐나다중앙은행 총재와 양국간 통화스와프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캐나다중앙은행

한은이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통화스와프 확대가 이주열 총재 임기 중 가장 중요한 성과로 꼽을 수 있어서다.

이 총재는 내년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전환될 것에 대비해 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와프를 구상했다. 이를 위해 국제결제은행(BIS) 회의 등 주요 행사에서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계속 접촉했다. 이 가운데 캐나다가 긍정적 반응을 보여 수개월간 물밑 협상을 진행했다.

이 총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캐나다 통화스와프가 체결된 직후 정부와의 ‘공조’를 거듭 강조했다. 한은이 주도했다는 점이 부각되면 2008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이후처럼 두 기관 공치사 논란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당시 300억달러 규모 한미 통화스와프 공식 발표에 앞서 기재부가 관련 내용을 일부 언론에 미리 비공개로 알리고, 협상 과정에서 기재부의 공적을 지나치게 강조해 한은이 불편한 심기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에 당시 강만수 기재부 장관이 이성태 한은 총재에 공식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때 부총재보였던 이 총재는 그 배경과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총재 부임 이후 통화스와프와 관련해 줄곧 정부와 한은의 팀플레이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의미가 퇴색했다. 일각에선 각별했던 김 부총리와 이 총재의 신뢰 관계에 흠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향후 어떤 형태로든 기재부에서 사실 관계를 바로 잡아주길 기대하는 한은 직원들이 많다. 한 한은 관계자는 “국익에 큰 도움이 된 중국, 캐나다 통화스와프를 위해 '기재부와 한은이 힘을 모았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게 가장 원만한 해결책이 아니겠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