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 좋다'는 김정은·트럼프, 길어지는 침묵의 기싸움

(하노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 261일 만에 '2차 핵 담판'에 돌입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위원장과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만남을 이어갈 것이라면서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속도보다 옳은 합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서두를 생각은 없다”고 강조했다. © AFP=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벌써 13일째다. 특유의 '폭풍 트윗'은 여전하다. 유독 북한 문제만 입에 올리지 않는다. 지난 8일 "(북한이 미사일 시험에 나선다면)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한 게 마지막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답지 않은 긴 '침묵'이다. 21일(현지시간)에도 다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묵언수행을 이어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거듭 압박했다.

말을 아끼는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말 '하노이 노딜' 이후 22일간 직접 메시지가 사실상 전무하다. 대리전에 나선 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었다. 지난 15일 "우리 최고지도부가 곧 자기 결심을 명백히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대미 메시지가 농익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집권 2기 체제가 출범하는 다음 달 11일 최고인민회의 때까진 사태를 관망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약속이나 한 듯한 북미 정상의 동반 침묵엔 여러 의도가 녹아 있다. '포스트 하노이' 새판짜기를 앞두고 이니셔티브(주도권)를 먼저 쥐려는 고도의 외교 게임이란 해석이 나온다. 먼저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추가 협상 모멘텀을 찾겠다는 의도가 양쪽 모두에게서 뚜렷이 감지된다.

단적인 예가 두 정상이 주고받는 '구애'의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무산 이후에도 김 위원장과는 "매우 좋은 관계"라고 누차 밝혔다. 김 위원장도 최근 화끈하게 화답했다. 최 부상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를 "궁합(chemistry)이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표현했다. 북미 협상가들이 주고받는 거친 설전에도 두 정상의 신뢰에 기대 상황 악화를 막아보겠다는 '외교적 수사'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내 패는 이미 보여줬으니 접고 들어오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하다. 북미는 각각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빅딜'(미국)과 영변 핵시설 폐기부터 시작하는 '스몰딜'(북한)이 마지노선이라는 입장이다. 두 정상의 침묵에선 상대가 내미는 카드 패를 먼저 확인하고 대응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숨을 고르고 시간을 벌겠다는 속내도 있어 보인다. 현재 국면은 하노이 빈손 회담 이후 북미 모두 합의 무산 과정을 복기하고 새 전략을 구상하는 단계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대한의 제재 압박으로 대화의 문을 열겠다는 전략적 행보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중국 해운회사 2곳을 제재하고 북한과의 불법 환적 의심 선박들을 발표하는 등 불법 해상운송 주의보를 발령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나온 미국의 올해 첫 독자제재다. 미국 해안경비대(USCG)는 버솔프(Bertholf) 경비함을 곧 한반도 해역에 투입한다. 북한의 불법 환적 행위를 철저히 적발해 제재 그물망을 더 촘촘히 하기 위해서다.

북한도 외교적 대응에 나섰다. 전통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와 연대하려는 움직임이 또렷하다. 주유엔 북한대사와 함께 주중·주러 대사를 최근 동시에 평양으로 소환했다. 제재 강화 움직임에 대응하는 동시에 김 위원장의 방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준비 작업과 관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날에는 김 위원장의 의전을 담당하는 최측근 인사인 김창선 국무위 부장의 방러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임박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김 위원장이 언제 대미 메시지를 발신할 지도 관심거리다. 다음달 11일로 확정된 제14기 1차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기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