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에 충성, 이효리에 분노, 나이키는 불매'…中 '애국청년'을 아시나요

지난 7월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공개적으로 충성 맹세를 한 펑린/ 펑린 웨이보 캡처

"(공산)당이여 안심하라, 강국에는 내가 있다." 지난 7월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공개적으로 충성 맹세를 한 여대생 펑린은 유명한 애국 인사다. 아나운서를 꿈꾸는 펑린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중국 우주비행사에 대한 찬사를 전하는가 하면 한국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장진호'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의 목줄에 끌려다니는 개다."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은 미국 정부가 자국민을 죽이려는 생물학전 증거다." 이 과격한 문구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어 640만명을 거느린 파워 인플루언서 슈창(필명 구옌무찬)이 자신의 웨이보와 트위터 등에 올린 것이다. 슈창은 주로 중국을 찬양하고 서구에 대해 무차별적 비난을 쏟아낸다.


애국심+국수주의 똘똘 뭉친 '자간오' 급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AP=뉴시스

중국에서 '국뽕(국가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에 취해 애국주의를 부르짖는 젊은 극우 청년들이 늘고 있다. 교육·문화·경제 등 사회 전반에서 글로벌 색채를 지우고 중국을 강조하는 이른바 '시진핑 사상'이 불러온 '제2의 홍위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홍위병은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절 준군사적인 조직을 이뤄 투쟁한 대학생과 고교생 집단이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은 애국심과 국수주의로 똘똘 뭉친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쏟아내는 젊은이들을 뜻하는 '자간오'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에는 과거에도 정부를 찬양하는 글을 올리는 인터넷 댓글부대가 있었다. 게시물당 5마오(약 90원)를 받는다고 해서 '우마오'로 불렸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정부의 지원 없이도 옹호 댓글이나 게시물을 올리는 젊은 애국 청년들이 등장한 것이다. 자간오는 '스스로 나서서 활동하는 우마오'의 줄임말이다. 스스로 원해서 중국 공산당과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의미도 있다. 중국 정부 관리와 그 가족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원래 중국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거짓 정보가 담긴 게시글은 웨이보나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에서 정기적으로 삭제된다. 하지만 자간오의 글들은 예외다. 심지어 이들의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관영매체에 소개돼 파급력이 더욱 커진다고 BBC는 지적했다.

또 페미니즘, 인권, 다문화, 민주주의 등이 중국 사회를 부패시킨다며 무차별 공격한다. '어린이들이 오전에 우유를 한잔씩 마시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상식에 대해서도 "중국 전통 아침식사와 가치를 무시하냐"며 비난을 퍼붓는다. 중국 우한의 코로나19 실상을 밝힌 작가 팡팡에 대해서는 "조국의 등을 찌른 배신자"라며 맹공격했다.

외국 배척하는 '분노청년·소분홍'도…한국 관련 가짜뉴스도 만들어

지난 7월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학생들이 국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AFP

자간오 외에 '분노청년', '소분홍' 등 맹목적으로 국가에 충성하며 외국을 배척하는 중국 극우 청년집단을 일컫는 용어도 있다. '21세기 홍위병'으로 불리는 분노청년 인터넷을 통해 극단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분노청년 중에서도 1990년대 이후 태어난 급진적 애국주의 네티즌을 작은 분홍색이라는 의미의 소분홍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모여 애국주의 성향을 표출하는 사이트의 색상이 분홍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이돌과 팬덤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국가보다 중요한 아이돌은 없다"며 중국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낸다. 나이키·아디다스·버버리·H&M 등 글로벌 브랜드 불매운동을 이끄는 것도 이들이다. 소분홍은 SNS 등에 "외국 제품을 쓰는 사람은 매국노", "중국 제품을 쓰지 않는 사람은 중국인이 아니다" 등 자극적인 문구로 공격한다.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특정 연예인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명성황후는 중화민국 초대대통령인 위안스카이의 첩", "김치와 한복은 중국 것", "한국인은 단오 등 중국 문화를 도용한 도둑" 등이 대표적인 가짜 뉴스다. 방탄소년단(BTS)의 수상소감이 친미 성향이라고 문제 삼는가 하면, 이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예명 '마오'가 중국 공산혁명을 이끈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을 모욕했다며 달려든다.

'젊은 극우' 왜 생겼나 …지나친 공격성에 中 비호감도 높아져

한국 6.25전쟁을 중국 관점에서 해석한 영화 '장진호' 영화 포스터/

중국에서 극단적인 젊은 애국세력이 급증한 배경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강력한 정체성 홍보 의지가 깔려 있다고 BBC는 분석했다. 중국 정부가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국가의 목소리를 홍보하고 지지하는 자간오·소분홍 등 애국 청년들의 게시물이 퍼져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놨다는 것이다. 또 애국 게시물에 광고와 유료 콘텐츠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얻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국가와 이들 세력 사이에 일종의 공생관계가 맺어졌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이들이 톈안먼사태 직후인 1990년대 이후 애국주의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라는 점도 한 요인이다. 중국이 외세에 당한 수모를 집중적으로 가르친 것이 서구에 대한 무차별 비난을 쏟아내는 밑거름이 됐다. 영화 '장진호'를 보고 오열하는가 하면 영화 속 장면을 따라하는 등 깊이 몰입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영화 장진호 상영이 끝난 뒤 자리를 뜨지 않고 거수경례를 하는 젊은 관람객들/ 웨이보 캡처

애국 청년들의 공격성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비호감도를 더 높이는 요소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1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호주·영국·미국 등 9개국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평가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다수 나라에서 4명 중 3명 이상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 내에서도 지나친 애국주의에 대한 우려가 있다. 베이징대 국제문제연구소의 위안난성 부소장은 "중국은 개방 확대를 지속하고 국내 포퓰리즘 상승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은 공식 계정을 통해 "사람을 끌어모으려는 목적의 애국 발언과 조작은 안된다"며 "애국 관련 콘텐츠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모독"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