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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으로 들어가기: 새로운 지혜를 찾는 시인의 탐색 [PADO]

머니투데이
  • 조희정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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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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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트랜의 시집 'All the Flowers kneeling' 표지. /사진제공=Penguin Poets
언제부터인가 자기만의 공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어감을 담아 나타내는 표현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잠수 탄다'는 말은 주변 모두와 연락을 끊고 홀로 지내는 사람에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렇게 타인과의 교류를 차단하게 된 이유가 뭔가 있겠지만, 대개 본격적으로 '잠수를 타는' 경우에는 그 이유조차 친구나 지인들에게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채 숨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 '동굴에 들어간다'는 말도 요즘 자주 쓰이는데, 이 표현은 특히 남자친구나 남편이 자기 얘기를 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든 상태임을 한탄할 때 많이 사용된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주체는 보통 여자친구나 아내의 입장에 서서 애를 태우면서 '동굴에 들어간' 그가 하루빨리 그곳을 빠져나와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주기만을 고대한다.

이렇게 혼자만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특별한 언어적 표현을 부여받을 만큼 예외적인 상황이 된 것은 우리가 몇십 년 전부터 경험하게 된 다양한 연락망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다. 집이나 사무실을 잠시 떠나기만 해도 연락을 받지 않을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됐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초연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할 권리가 웬만해서 주어지지 않는다. 이메일과 휴대전화로 시작된 연결망은 문자와 카톡 등 각종 메신저들의 발달로 더욱 촘촘하게 보완돼 우리가 그 속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대개 몇 개의 단톡방에는 소속돼 있기 마련이고, 좋으나 싫으나 끊임없이 각종 연락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 연락망으로부터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분리시키는 행위는 갑작스럽고 돌출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아시아계 미국인 시인인 폴 트랜(Paul Tran)의 '동굴'(The Cave)은 이렇게 촘촘하게 연결된 세상에서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혼자만의 고독하고 진지한 탐색에 대한 시이다. 트랜이 이 시에서 제시하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가 반드시 주변과 완전한 단절을 취하는 것을 전제하지는 않지만, 컴컴하고 숨겨진 공간으로 깊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한동안 삶의 방점을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에 두어야 하게 된다. 시인은 그렇게 혼자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기를 권하며, 그런 흔치 않은 여정이 개인의 삶에서 가지는 깊은 의미를 이야기한다.



폴 트랜 - 동굴 (번역: 조희정)


입구에 서 있던 누군가가 들어갈
생각을 했다. 멀리까지 가기로,

빛이나 언어가 갈 수 있는 곳을
넘어서. 그 사람이 그 생각을
따라갔을 때, 빛과 언어가 따라왔다,


마치 두 마리 늑대처럼--헐떡이면서, 헐떡임을 스스로
들으면서. 축축한 공기 속
형체 없는 향기...

계속 가 봐, 그 생각이 말했다.

누군가는 계속 갔다. 깊이 더 깊이, 그 사람은 다른 이들이
거기에 있었다는 걸 보았다. 다른 이들은 남겼다,

거기에 스스로 찾아올 수는 없었을
물건들을. 황토색으로 물든 조개껍데기들. 새 뼈들. 분쇄된
적철석. 동굴 벽에서,

마치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누군가는 자신의
목적을 보았다. 암소들. 황소들. 들소. 사슴. 말들--
새끼를 밴 것도 있고, 살해된 것도 있다.

야생의
동물은 거칠고 살아 있는 듯 보였고, 움직였다,

누군가가 움직일 때, 이리저리 뻗어 있는
그림자 위로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울 때. 계속 가 봐,

그 생각이 다시 말했다. 가 봐...

누군가는 계속 갔다. 그 사람은 그 생각을 너무나 깊숙이 안으로 따라가서
바깥에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이 시에서 "누군가"를 '동굴'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어떤 "생각"이다. 갑자기 자신을 강렬하게 잡아끄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는 순간, "누군가"는 '동굴'로 진입하게 된다. 시인은 "빛이나 언어가 갈 수 있는 곳을 넘어서" 더 멀리까지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기에, "누군가"가 감행하는 이 탐색의 여정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지식이나 완전하게 언어로 표현된 이론 바깥의 무엇인가를 향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빛과 언어"는 혼자만의 지적 탐험을 시작한 "누군가"를 "헐떡이면서" 따라가기에 바쁘다. 새롭게 경험한 내용을 지식으로 만들어 내고 언어화하는 것이 숨 가쁠 정도로, 컴컴한 동굴에서 이루어지는 "누군가"의 탐색은 상당한 속도감을 가지고 진행된다.

인터넷 검색이 보편화되고 인공지능이 원하는 답을 쉽게 찾아 주는 요즘에, 어떤 주제에 관심을 두고 거기에 혼자만의 노력을 들여 상당 기간 몰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 돼 버렸다. 마치 우리를 둘러싼 촘촘한 연락망에서 빠져나와 홀로 서는 것이 쉽지 않듯이, 궁금한 것을 아주 단순하고 손쉬운 방식으로 찾아낼 수 있는 세상에서 굳이 '동굴'로 들어갈 결심을 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런데도, 트랜은 컴컴한 '동굴'로 혼자 들어가기를 택하는 "누군가"의 여정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채로 숨어 있는 지식의 세계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에, 또 그런 세계에 빠져들고픈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기에, '동굴'에서의 탐색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꼭 알고 싶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컴컴한 '동굴'로 들어간 "누군가"는 그 어둡고 가려진 공간에 이미 다녀간 "다른 이들"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경우에, 지적인 탐색의 여정은 외롭게 시작되는 것 같지만 뜻하지 않게 타인과의 유대감을 찾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에 띈 한 권의 책 속에서, 혹은 열심히 찾아 헤매다 발견한 역사적 기록 속에서, 자신이 지금 가진 문제의식과 뚜렷이 겹치는 어떤 글귀나 사료 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발견은 "누군가"의 지적인 탐험을 더욱 흥미롭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며, 보이지 않는 "다른 이들"과 구체적인 매개를 통해 교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누군가"가 '동굴' 안에서 찾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이 시에서 "야생 동물"의 형태로 형상화돼 있다. 어떤 동물은 "새끼를 밴" 모습으로 나타나 있어서 지식을 찾고자 하는 긴 여정이 어느 정도의 생산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살해된" 것으로 나타난 동물은 예전에 "다른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지적인 탐색의 부분적인 실패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군가"는 아직 정확하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 명확한 형태로 "야생 동물"을 보거나 그려내지 못하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야생 동물"의 그림자 위에 겹치도록 드리우면서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탐험을 지속한다.

이 시의 마지막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을 처음에 이 모험으로 이끌었던 문제에 대한 답을 완전하게 찾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을 매료시켰던 어떤 생각이 다른 생각들과 가지는 차이에 대한 명료한 감각이다. 플라톤(Plato)은 '동굴' 속에 있는 인간이 실체를 대신해 그림자만 볼 뿐이기에 온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지만, 트랜의 시는 아직 "그림자"만 보이는 '동굴'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어떤 완벽한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자체를 부정하는 듯하다. 대신, 이 시에서 '동굴' 밖에 있는 것은 그저 또 다른 "생각"일 뿐이며, 이런 마무리는 단일한 진리를 인정하기보다 사고 체계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수긍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동굴'로 들어갈수록 더욱 명확해지는 유일한 사실은 이 '동굴'이 수많은 동굴들 중 하나의 '동굴'일 뿐이라는 자각인 것은 아닐까? 내가 가진 생각이 다른 방향의 생각들과 어떻게 차이를 빚는지를 깨닫기 위해서라도 깊고 진지한 지적 탐색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시인이 권하는 것처럼 인생의 한 때에라도 무엇인가에 대한 미칠 듯한 호기심에 이끌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어떤 생각에 몰입해 보는 경험은 크나큰 행운일 것이다. 여러 가지 덕질 중에서도 가장 품이 많이 드는 지적인 덕질에 푹 빠져 본 이후, 아마도 "누군가"의 삶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변화할 테니까 말이다.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국제시사·문예 매거진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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