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사고뭉치' 인식은 곤란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은 물론이고 그 시행령(안)을 뜯어보면, 여전히 증권사를 '사고뭉치'로 간주하는 경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문화적 성숙도가 외국 투자은행(IB)에 비해 턱없이 낮다고 보고 있는데, 이같은 접근이 유지돼서는 국내 증권사의 발전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 모 대형 증권사 한 임원

　"당국은 금융회사, 특히 증권사에 대해 불신과 의심의 시선을 접지 않고 있다. 자통법과 그 시행령(안)을 보면 진정으로 글로벌 IB를 육성하고자 하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탁상공론식 발상과 독소조항이 담겨 있다" - 또다른 대형 증권사 임원


　국내 증권업계가 참고 있던 불만을 한꺼번에 터뜨리고 있다. 자통법과 시행령(안)이 비판의 핵심에 서 있다.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 글로벌 투자은행(IB) 육성이란 원대한 취지에서 자통법이 만들어졌지만 증권산업을 규제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규제본능'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업종간 벽을 금융선진국 수준으로 허물면서 꼭 필요한 규제만 하자는 것이 자통법의 취지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질식할 것 같은 규제에다 외국계 IB와의 역차별 등으로 사실상 글로벌IB출현이 어렵게 돼 있다는 것이 증권업계의 주장이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 등 과도한 건전성 규제로 대형투자는 힘들고 자회사 만들어 일을 할수도 없다. 증권업계는 미완성 과제로 남아 있는 자통법의 각종 문제들을 지금이라고 현실에 맞게 수정해 진정한 글로벌 IB 출현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자통법이 과도한 경쟁을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증권사의 발전을 위해서는 규모확대 뿐 아니라 수익향상 등도 중요한데, 금융투자업 진입장벽을 당초 예상보다 크게 낮춤으로써 금융·증권시장을 더욱 혼탁하게 만들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이다.


　증권사 규모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접근하는 '획일·평등주의적 접근'도 문제다. 진입 장벽을 낮춰 경쟁을 촉진한다는 의도에 집착한 나머지 '헤비급'증권사와 '라이트급'증권사나 똑같이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금융정책은 가장 민감한 시장인 금융시장을 다루는 만큼 최대한 현실에 부합해야 하는데, 자통법과 그 시행령(안)을 보면 현실을 도외시한 채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 곳곳에 담겨 있다"고 비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국내 금융회사를 불신한 채 일방적으로 각종 제약을 강제해 왔고, 자통법 체제 하에서도 이같은 접근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라며 "특화·전문 증권사 육성 등은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논리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쟁을 촉진해 대형화ㆍ전문화ㆍ글로벌화를 유도한다는 '이상론'에 사로잡혀 금융시장에 숱한 '도토리'급 플레이어들의 등장을 허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금융회사에 외환위기의 원죄론을 여전히 들씌우고 있다"며 "금융시장과 금융회사를 규모와 경쟁력 그리고 건전성 등에서 차별화해 우량 금융회사를 적극 육성하기보다는 일단 숱한 제약을 만들어 놓은 뒤 상황에 떠밀려 찔끔찔끔 완화해주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