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공매도 칼 빼들었지만…"

금융감독원이 주가 하락의 주범으로 지목돼 온 공매도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사전 모니터링 결과 올 들어 체결된 공매도의 40% 가량이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리고 조사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명확한 제재 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아 얼마나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공매도 주체가 대부분 외국인이어서 제재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규정 위반 공매도 10조원
금감원 조사결과 올 들어 체결된 공매도 계약 26조원 가운데 38%인 10조원 가량이 관련 규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차입계약 없이 공매도 주문을 내거나 공매도로 표시하지 않은 채 낮은 가격으로 매도 주문을 내는 방법이 사용됐다.

금감원은 예상보다 공매도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보고 관련 검사를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공매도 규정위반 가능성이 있는 45개 증권사를 모두 검사하고 씨티·SC제일·HSBC·도이치은행 등 4개 주식 보관은행에 대해서도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번 금감원 조사는 외국계 증권사에 집중될 전망이다. 외국인이 공매도 주문의 89%를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계 증권사로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매도 주가하락 주범
공매도의 폐해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난 7월 하이닉스를 시작으로 현대중공업 (198,300원 ▲7,300 +3.82%), 삼성중공업 (10,630원 ▲130 +1.24%), LG전자 (110,100원 ▲600 +0.55%), NHN (159,900원 ▼700 -0.44%) 등이 공매도 공격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하이닉스의 경우 지난달 공매도가 집중되면서 종합주가지수 하락폭의 2배 가까이 주가가 떨어졌다. 공매도가 몰린 다른 종목의 주가도 하락폭만 다소 차이가 있을 뿐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6월의 경우 전체 매도금액 대비 공매도 비중이 10% 이상인 종목의 경우 주가지수나 업종지수에 비해 하락폭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주가 하락을 틈타 공매도가 주가조작에 이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공매도를 한 후 악성 루머를 유포하고 주가를 떨어트려 차익을 거두는 방식이다. 공매도 이후 주가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차익은 더 커지게 된다.

최근 주가가 크게 하락한 기아차 역시 공매도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신증권은 지난 20일 기아차 (105,600원 ▲2,100 +2.03%)가 2거래일동안 10.66%나 하락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매도 급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재 조항 미비, 솜방망이 처벌 그칠 듯
하지만 금감원이 이번 조사를 통해 공매도 관련 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적발하더라도 제재할 근거가 없다. 공매도 관련 규정은 금융감독규정이 아닌 거래소의 유가증권업무 규정에 포함돼 있기 때문.

금감원 관계자는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땅치 않다"며 "특히 주문자 대부분이 외국인이어서 (제재가)더욱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가증권업무규정을 위반하게 되면 해당 증권사에 대해서는 위약금을 물리거나 관련 임직원에 대해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공매도 규정 위반으로 제재한 선례가 없는데다 관련 규정을 적용하기 힘든 측면이 많아 실제 제재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공매도 제한 전세계적 현상
이런 폐해 때문에 공매도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추세다. 서브프라임 부실로 직격탄을 맞은 미국의 경우 지난 12일까지 프레디맥과 패니매 등 19개 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제한했다. 공매도 제한 조치에는 최근 산업은행 인수설이 나돌았던 리먼 브라더스와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등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속임수의 여지가 있는 공매도를 제한하는 새로운 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다. 새 규정은 특정 기업뿐 아니라 상장된 모든 기업에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