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97년 아시아와 비슷하다는데…

'동유럽발' 한파가 불어닥쳤다. 주로 서유럽권 은행들이지만 금융권이 연쇄 부도위기에 처한 동유럽 국가에 1조70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대준 상황이어서 '2차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동유럽 국가들이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질 경우 은행들은 추가로 자산을 상각해야 한다. 여기에 동유럽 국가들에 지원할 자금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제 2 금융위기의 시나리오다. 이 경우 올들어 다시 불거진 금융 위기로 허덕이는 전세계 금융권에 '피니시 블로'가 될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예상되는 자산 상각 규모를 감안할 때 2차 위기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서유럽 국가들 역시 동유럽 붕괴를 대비해 자금을 지원할 만큼 문제가 심각하진 않을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오스트리아 등 인접국들은 속타지만 대부분의 유럽국에게는 아직 '강건너 불'이라는 지적이다.

◇동유럽 '총체적 난국'= 동유럽 국가들의 자금난은 심각하다. 폴란드에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동유럽 국가들의 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각국 정부의 부채 보증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 "동유럽의 경제 붕괴 규모가 1990년대말 아시아 외환위기 때와 유사하다"고 보도했다.

↑ 유럽 신흥시장 채권국 규모 순(출처 : WSJ)

덴마크 단스케방크의 라스 크리스틴슨 애널리스트는 "(동유럽 시장의 연쇄 붕괴는)마치 지난 1997년 태국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확산된 아시아 외환위기 때와 같은 급"이라고 말했다.

또 동유럽지역이 신흥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앞다퉈 투자했던 서방은행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어 자금난은 심화될 전망이다. 국제금융기구(Institute of International Finance)에 따르면 동유럽 지역의 현금 흐름 규모는 지난해 2540억 달러에서 올해에는 300억 달러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동유럽과 북유럽 일부, 구소련지역 국가들이 긴 경기하강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얼마나 물렸기에…"= 동유럽 문제에 전 세계가 '움찔'한 것은 상당수의 서방 은행들이 동유럽에 자금을 묻어뒀기 때문이다.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대출은 주로 오스트리아, 스웨덴, 그리스, 이탈리아, 벨기에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국내총생산(GDP)의 70%에 달하는 자금을 동유럽 국가에 대출해줬다.

BNP파리바의 한스-귄터 리데커 전략가는 "동유럽 지역의 경제 위기로 인해 서유럽 은행들이 추가로 자산 상각에 나서야 할 것"이라며 "문제는 그 규모가 얼마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들이 투자한 자금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를 상각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모간스탠리에 따르면 서유럽 은행들의 동유럽 대출은 현재 1조7400억달러로 추정된다. 서유럽 은행들이 적어도 3500억 달러의 자금을 추가로 상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다른 문제 핵 아닌 혹= 동유럽 국가들의 대출 상환이 어려워질 경우 서유럽 은행들의 부실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무디스는 이날 "동유럽과 관련된 영업을 영위하고 있는 서유럽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동유럽의 위기가 또다른 금융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유럽 주요국들도 '예상치 못했던 혹이 생겼다'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적어도 '문제의 핵'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앞서 조세프 프롤 오스트리아 재무장관이 지난주 유럽연합(EU) 재무장관 회담에서 "동유럽 국가들에게 1500억 유로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다수 국가들은 이를 일축했다.

오스트리아에 이어 2번째로 동유럽 대출 규모가 큰 독일의 피어 슈타인브루엑 재무장관은 "이같은 제안은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