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해커집단, 南 게임방에서 매달 53억 번다"

북한이 정책적으로 육성한 '엘리트 해커'들이 남한 범죄조직과 손잡고 국내에 불법프로그램을 유통시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북한의 '핵커 부대'는 농협과 현대캐피탈 등 굵직한 해킹사건에도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명문대 출신 해커부대 전문 육성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지난 4일 북한 개발자들과 공모해 국내 유명 온라인게임의 오토프로그램을 불법 제작해 유포한 일당을 적발했다.

국내 게임 제작업체의 정보를 빼내고 불법 오토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으로 밝혀진 30여명의 북한 컴퓨터 전문가들은 모두 20~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정씨 등의 진술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대학 출신의 엘리트 중 엘리트로 알려졌다.

북한에서는 중학교 때부터 영재들을 따로 뽑아 2년간 컴퓨터 분야를 전문적으로 교육해 바로 김일성대학이나 김책공대의 컴퓨터 관련 전공으로 나눠 진학시킨다. 여기서도 뛰어난 학생들은 2년 만에 졸업하는 '2+2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번에 협력한 북한 개발자들은 모두 북한 '조선릉라도무역총회사' 중국 현지 상사인 '릉라도정보쎈터'와 IT연구개발기관 '조선콤퓨터쎈터(KCC)'에 근무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릉라도 무역총회사'는 표면상으로는 평범한 무역회사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을 조성하고 '외화벌이'를 전담하는 소위 '노동당 39호실'의 산하기관인 것으로 밝혀졌다. 1990년 설립된 '조선콤퓨터쎈터' 역시 북한의 내각 직속 산하기업이다.

◇北, 아이템 무차별 획득 '작업장' 노렸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2006년부터 외화벌이 일환으로 국내 유명 온라인게임의 오토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했다. 프로그램 판매뿐 아니라 '아이템거래'가 돈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십대에서 많게는 수백대의 컴퓨터를 보유한 '작업장'에서는 오토프로그램을 이용해 한 번에 수백개의 캐릭터를 자동으로 조종한다. 무차별로 게임 아이템을 취득한 뒤 고가의 아이템을 아이템 중개 사이트에 내다 팔아 현금으로 교환하는 것.

이런 작업장은 국내 뿐 아니라 중국 등지에도 수백군데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아이템거래 시장규모는 연간 1조5000억원 수준. 특히 인기게임 '리니지'의 경우 월 아이템 현금거래 금액이 1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南北협력' 사전합의하고 북한영사관까지 거쳐

남한의 범죄조직과 북한 해커들이 합심해 프로그램을 제작한 곳은 주로 중국이다. 정씨 등은 국내에서 단속 등으로 오토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개발자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브로커를 통해 북한 해커들을 소개받았다.

일당은 조선족 이씨(40)가 중국에서 운영하는 '송림유한공사'의 명의로 북한에 '프로그래밍 인력을 요청한다'는 의향서를 전달했다. 개발자들은 약 5개월씩 정씨 일당이 마련해준 숙소에서 머물며 정씨 등이 원하는 게임별로 개발팀을 구성, '맞춤형' 오토프로그램을 제작해준 것으로 밝혀졌다.

◇수익의 절반‥1개월에 최고 1억5000만원 '외화벌이'

경찰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던전앤파이터' 오토프로그램의 경우 중국 현지 딜러들에게 복제본 1장 당 매월 200위안(한화 약 3만5000원)에 넘겨졌다. '리니지'는 1장당 1만7000원~1만8000원에 중국과 국내 판매총책에게 공급됐다.

이를 공급받은 정씨는 국내 딜러들에게 이를 2만여원에 판매했고 딜러들은 다시 전국 각지의 작업장에 3~4000원의 이익을 남기고 팔았다. 이렇게 프로그램 판매와 아이템 거래로 피의자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1년6개월 동안 64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전문가들이 받은 돈은 정씨 등이 매달 올린 수익의 절반가량. 개발비를 한꺼번에 일시불로 받거나 복제본 1장당 사용료의 55%를 떼 가기도 했다. 게임 종류에 따라 매달 500만원에서 최고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사용료를 챙겼다. 일시불로 5개월간 2만달러를 받은 개발자들도 있다.

정씨 등은 "이들처럼 '외화벌이'에 나선 컴퓨터 전문가들이 중국에만 1만명 정도 있다고 들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매달 500만달러(한화 약 53억원)가 북한 당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추정했다.

◇일부러 악성코드 삽입...대남 사이버테러 가능성도

문제는 이번에 적발된 북한의 오토프로그램이 단순한 '외화벌이'에 그치지 않고 남한 주요기관 및 인터넷사이트에 침투할 수 있는 사이버테러 창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찰 조사 결과 북한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오토프로그램을 실행시킨 국내 게임 이용자의 PC와 게임 서버를 연결하는 서버 포트를 계속 열려있게 조작했다. 이를 통해 북한 측 관리자가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공격) 등의 악성코드를 삽입하면 작업장에 있는 수백대의 컴퓨터가 일시에 좀비PC로 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편 북한 해커들의 표적으로 지목된 '리니지' 개발사 엔씨소프트는 경찰 수사에 대해 "리니지 서버는 해킹당하지 않았고 오토프로그램은 해킹프로그램이 아닌 단순한 악성프로그램"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