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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정치인생' 박희태 국회의장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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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2.0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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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차윤주 기자= 박희태 국회의장이 결국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9일 전격 사퇴의사를밝혔다. 그간 여야의 사퇴 압력에도 꿋꿋이 자리를 버텨왔으나 끝내 스스로 물러났다.

경남 남해 출신의 박 의장은 19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부산고검, 부산지검, 대전지검 등에서 검사장, 고검장을 두루 거친 검찰 엘리트였다.

재선 시절에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얻어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 비록 딸의 대학교 편법 입학 논란으로 열흘만에 장관에서 낙마했지만 6선의 국회의장이 되기까지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고향인 경남 남해 하동에서 내리 5선을 했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정권 창출에 공을 세웠다.

사자성어를 즐겨섞는 특유의 선문답식 화법에 맥주와 양주를섞어 만든 '폭탄주'를 대중화시킨 것이 박 의장이라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개성 넘치는 거물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뜻밖에도 낙천의 고배를 마시면서 박 의장의 정치인생은 어긋나기 시작한 듯하다.

박 의장은 그해 치러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전당대회에 원외 후보로 출마, 박빙의 승부를 벌인 끝에 정몽준 전 대표를 꺾고 당 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듬해인 2009년 10·28 양산 재선거에서 당선해 6선을 거머쥐었고 2010년 6월 8일 18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으로 입법부 수장자리까지 올라 24년 정치인생이 명예로 빛나는듯 했다.

하지만 고승덕 새누리당 의원의폭로로 2008년 전대에서 원내·외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들에게 금품이 살포됐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박 의장이 당사자로 지목됐다.

처음 돈봉투 사건이 불거졌을 때부터 모르는 일이라고 한사코 손사래를 쳤지만 검찰 수사로 박 의장의 측근들이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박 의장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친정인 새누리당 역시 "정치적 결단을 내리라"고 압박했고 검찰이 그의 측근들을 줄소환하면서부터는 사실상 그의 정치 인생은 끝났다.

박 의장을 주저앉힌 전대 돈봉투 사건은 친이(친이명박)계가 무리하게 박 의장을 당 대표로 추대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단'이란 평가가 나온다.

당시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는 정 전 대표가 앞섰지만 대의원 표결에서 박 의장이 뒤집었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정 전 대표를 누르기 위해 대의원들의 표심을 '돈 봉투'로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대의원이 동원되는 당 대표 선거에서 거마비 차원의 돈봉투가 도는 것은 정치권의 오랜 관행인데 박 의장만 희생양이 됐다는 평도 있다. 나쁜 관행은 뿌리뽑아야겠지만 최근 정치권에 대한 시선이 싸늘한 가운데 여야가 박 의장을 제물로 만들었다는 동정론도 나온다.

이날 오전 박 의장은 한종태 국회 대변인을 통해 "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며 국회의장직을 그만두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사퇴로 박 의장은 헌정 역사상 비리 의혹 때문에 국회의장 임기를 마치지 못한 첫번째 국회의장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지금까지 국회의장직을 마치지 못하고 물러난 사례는 이승만(1948년, 대통령 당선으로), 이기붕(1960년, 사망), 백두진(1979년, 10·26사태) 국회의장 등이 있었고, 박준규(1993년) 국회의장은 재산공개 파문으로 불명예 중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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