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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대선출마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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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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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고유선 기자 =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검찰에 출석한 이 전대표는 4·11 총선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여론조사 조작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12.9.21/뉴스1  News1 박철중 기자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검찰에 출석한 이 전대표는 4·11 총선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여론조사 조작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12.9.21/뉴스1 News1 박철중 기자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25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침묵의 형벌'을 깨뜨리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한때 '진보의 아이콘'으로 승승장구했던 그는 지난 5월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특정 정파의 대변인'이란 오명을 썼었다.

'잔인한 사회, 민중의 삶을 지키는 진보정치'라는 슬로건으로 이날 출마를 선언한 이 전 대표는 진보 정치인으로는 보기 드문 '대중적 정치활동'을 펼쳐왔다. '국회의원이 뽑은 후원하고 싶은 여성 정치인 1위(2009년)', '차세대 여성리더 300인 중 1위(2010년)', '트위터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정치인 1위(2011년)'이란 수식어만 봐도 그는 대중들로부터 인정받는 진보 정치인이었다.

그는 2010년 41세의 나이로 민주노동당 대표가 됐다. 남성들이 주도하는 정계에서 여성이, 그것도 40세를 갓 넘은 나이로 강한 투쟁력을 요구하는 민노당을 이끈다는 점에서 정계와 언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입 학력고사에서도 이 전 대표는 인문계 여자 전체수석을 차지하며 1987년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1990년에는 서울대 총여학생회장을 맡아 여학우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대학시절과 사법연수원 시절 그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동기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학창시절그는 민족해방(NL, 주체사상파) 계열 학생운동을 했으며 각종 집회나 행사에 북한식 의상을 연상케하는 검은 치마와 하얀 저고리를 입고 나왔다고 한다. 연수원에서는 '남북관계, 통일' 관련 강연에서 수 백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손을 번쩍 들고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법시험(38회) 합격 이후 그는 주한미군범죄 근절운동본부를 직접 찾아가는 등 여성, 인권, 평화, 한미관계 등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런 관심은 자연스레 그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으로 이끌었고 민변에서 그는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민노당에 입당해 2008년 18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경험이 부족했지만 원내부대표, 정책위의장 자리를 역임했고 2010년에는 당대표를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한미FTA 문제, 한진중공업 사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 등 굵직굵직한 사안에서 마다 이 전 대표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2009년에는 미디어법 처리를 막다 본회의장에서 이은재, 정옥임 등 새누리당 전 의원들에 의해 끌려나갔다. 작년에는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해 부산에 내려갔다 최루액을 맞고 혼절하기도 했다.

이후 국민참여당 및 진보신당 탈당파와 통합해 통합진보당을 만든 그는 유시민 전 의원, 심상정 의원 등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으며 굵직한 역할을 해냈다. 출범 후 순항하던 통합진보당은 지난해 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후 당 홈페이지가 인공기로 도배되는 해킹사건이 발생하며 '종북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서는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 실시된 야권후보단일화 경선 '여론조사 조작 논란'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자 예비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나 검찰은 24일 "이 전 대표가 여론조사 조작과정에 개입한 물증이 없고 관련자들의 진술도 전혀 없다"며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쟁명부 비례대표 경선 문제로 불거진 혁신세력과의 갈등으로 지난 5월12일 열린 중앙위원회가 폭력사태로 치닫자 그는 대표직에서 물러나 "침묵의 형벌"을 자처하며 자숙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그는 6월 중앙위사태 와중에 분신한 당원의 빈소와 49재를 찾으며 조심스럽게 모습을 보였다. 중앙위 사태를 기록한 책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와 관련된 당원들 모임에도 참석하며 정치적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지난 3일에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파측의 '혁신재창당' 조건 중 하나였던 5·12 중앙위원회 폭력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이때 이 전 대표는 "쉬운 길이었으면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선출마를 시사했다. 10일, 11일 양일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목소리를 냈다.

그는 연수원 동기인 심재환 변호사와 결혼해 두 아들을 뒀다. 심 변호사는 2003년 "KAL기 폭파범 김현희는 한국 정부에 의해 날조된 인물"이라는 주장을 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서울(43)△서문여고, 서울대 공법학과 △서울대 총여학생회장 △38회 사시합격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운영위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처장 △18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의원 △민주노동당 원내부대표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민주노동당 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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