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우토반 체험기…'속도 무제한'의 비밀은?

지난해 독일 출장길에 느꼈던 이방인으로서 아우토반에서 느낄 수 있었던 몇 가지 단상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한국에 도착해 집으로 오던 인천공항 고속도로에서 전 조금 부아가 났습니다. '왜 다들 모든 차선에 퍼져서 차선을 장악하고 아무 규칙도 없이 달리는 거야?' 라구요. 2주간 독일의 도로를 달리다 오니, 한국의 고속도로가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를 경험하다가, 두 줄 서기 된 에스컬레이터를 맞닥뜨린 기분이랄까요? 운전자들이 공공도로의 효율성을 살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배려하고 다른 운전자와 호흡하기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운전이 만연해 있다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또 며칠 지나면, 저도 이러한 도로 문화에 다시 젖어들어 괜찮아지겠죠. 문화가 그래서 무서운 것 같습니다.

아우토반은 '속도 무제한'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달려보니 무제한의 주행보다도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가 유지될 수 있게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과거에 서울-부산을 KTX보다 빨리 주파할 정도로 스피드를 즐겼습니다. 스포츠 드라이빙 스쿨도 꽤 다녔을 만큼 운전에도 자신이 있었고요. 하지만 처음 아우토반에 진입했을 때의 느낌은 솔직히 설레기보다 조금 무섭더라고요.

눈발이 날리는 도로임에도 군데군데 반짝반짝 결빙된 것이 보였습니다. 하위 차선임에도 흐름에 맞춰 달리다 보면 평균적으로 130~150km는 기본으로 달립니다. 그런 고속주행 상황에서도 차간거리는 은근히 좁았습니다. 추월 차선이 아님에도 전조등 켜고 꽁무니에 딱 붙어있는 차들을 보면 부담스러워 엑셀에 힘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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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없는 주행에 칼같이 끼어드는 차들.'

처음에 아우토반에 받은 느낌은 딱 이거였습니다. 다들 준 레이서에 거친 황야의 무법자 같았습니다. 운전자를 살펴보면 백발의 지긋한 할아버지부터 아리따운 여성까지 다양했습니다.
평균 독일 운전자들의 드라이빙 포텐셜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어,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온 이방인인 저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면서 그 속에 어떤 규칙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주간 전조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간 전조등 켜기가 잘 시행되는 나라에서 운전해보면 느낌이 다릅니다. 주의력을 환기시켜 운전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주변 차량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게 해줍니다.

낮에도 나무 등 장애물에 가려있거나 무채색의 차들이 회색빛 도로에서 비슷한 속도로 달리다 보면 각 차량에 대한 주의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전조등이 켜있으면 무의식중에 한 번 더 차량을 인식하게 됩니다.

마치 그건 전자제품의 'ON' 버튼의 불빛같은 역할을 하죠. '아 저기 움직이고 있는 차량이 있구나!' 라고요. 특히 고속으로 달리는 아우토반에서는 서로 간의 존재 파악이 매우 중요하니까 낮에도 전조등은 필수입니다.





둘째, 추월선 뿐 아니라 모든 차선을 기준으로 고속 차는 왼쪽으로, 저속 차는 오른쪽으로 붙습니다.

보통 4차선은 트럭들이 장악하고, 3차선은 일반 차량과 추월하는 트럭들입니다. 2차선으로 가면 좀 달리는 차들이 있습니다. 1차선은 거의 비어있다가 가끔 굉음을 울리며 달려가는 차들이 있습니다. 이게 가장 자주 접한 일반적인 풍경입니다.

빨리 갈 사람은 빨리 움직이고 천천히 갈 사람은 천천히 가고, 일정한 규칙에 맞추기만 하면 서로 피해를 안 주는 거죠. 그리고 4차선부터 차들이 채워져 나가기 때문에 도로가 굉장히 효율적으로 운영됩니다.

반대로 우리나라 고속도로를 보면 굉장히 재밌는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차들이 떼를 이뤄 달리는 현상인데요. 차선마다 차가 촘촘히 있어서 정체가 시작되나 싶다가도 어떻게 추월을 하고 나면 전방엔 차가 없이 뻥 뚫려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좀 달리다 보면 또 전차선을 장악하고 있는 새로운 차 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로 피해를 주는 겁니다. 빨리 갈 사람은 상위차선에서 정속 주행하는 차들 때문에, 정속 주행하는 차들은 무리해서 추월해가는 고속차량 때문에 스트레스와 피해, 사고 위험이 커지는 거죠.

한편 아우토반에서 쉼터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고 가끔 갓길에서 확장된 개념의 '잠시 쉬어가는 곳'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좀 위험해 보입니다. 차가 고장나면 모를까 졸리더라도 절대 쉬고 싶지가 않죠.

그런데 아우토반에는 휴게소 말고 'P'로 표시된 곳이 있습니다. 운전 중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중간마다 꽤 자주 마련되어 있습니다. 체감상으로는 매 10km 정도 달릴 때마다 본 것 같은데요. 정말 촘촘히 마련되어 있다는 것 외에 쉼터란 곳이 고속도로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안심하고 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입니다.





셋째, 끼어든다고 차선 변경 의사를 표시하면 일단 무조건 끼워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고속도로 합류 구간(휴게소, 인터체인지 등)에서 차가 합류를 위해 오른편에서 다가오면, 직진하던 차량은 대부분 신경 안 쓰고 그냥 달립니다. 혹시라도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감속할 상황이라도 되면 쌍라이트를 번쩍번쩍 날리기 바쁩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한 아우토반은 이런 한국의 자동차 문화와는 달랐습니다. 깜빡이 넣고 끼어들면 최대한 상황에 맞춰 감속하든 어쩌든 끼워줍니다. 상위차선이 비어 있으면 당연히 차선을 옮겨 쉽게 끼어들 수 있도록 미리 차선을 비워주기도 하죠.

끼어들지 말지 서로 눈치 보는 것이 없습니다. 규칙대로 서로 칼같이 움직이니까 훨씬 효율적입니다. 저속 상황에서 뒷차 신경도 안 쓰고 끼어드는 몰상식도 없었습니다. 기본 교육이 잘 된 거죠. 운전면허 따기 참 어렵다고 하데요.


넷째,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칼치기'라고 하죠? 공간을 찾아서 차선변경을 칼로 썰듯이 날카롭게 잘라가며 달린다는 말입니다. 혹은 끼어드는 데 있어서 공간이 거의 없음에도 아슬아슬하게 끼어든다고 그런 이름이 붙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서 어급했듯 아우토반의 운전자들은 차간 간격이 우리나라보다 좁게 운전을 합니다. 처음엔 빨리 가라고 일명 똥침을 놓는다고도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고가 한번 나면, 수십 중 추돌의 대형 사고 위험도 있어 보였습니다.

때문인지 다들 우리나라의 칼치기가 연상될 만큼 빠르고 신속하게 끼어들고 빠집니다. 차선변경은 움직임이 뒷차량이나 주변 차량이 애매해 보이지 않도록 정확하게 직설적으로, 그리고 가능한 신속하게 이뤄집니다.




아우토반을 달려보니, 좋은 차를 타고 싶은 욕심이 자연스레 마구 생기더군요. 저는 포드 피에스타를 탔는데, 아우토반에선 경쟁적이라기보다 일단 빠르면 비켜주고 서로 배려와 관심(?) 속에서 고속주행이 이뤄지다니 훨씬 안전하게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아우토반을 통해 독일 차들의 주행 특성의 기원 또한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고속에서도 안정감 있게 달리고 신속하게 차선변경을 하더라도 불안하지 않게 탄탄한 하체 특성을 기본으로 차를 만들어야 하겠죠. 고속을 내기 위해 엔진 성능 뿐 아니라, 고속에서도 잘 서기 위한 브레이크 등 제반 퍼포먼스도 받쳐줘야 할 겁니다.

또 하나는 정말 다들 신이 나게 달려서 연비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신경을 안 쓰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요. 고유가 시대에 주유비 걱정이 없어 보였습니다. 어쩌면 고속에서 따로 잘나오는 연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독일 차들을 시승할 때 검증해야겠지만, 예컨대 1600cc 피에스타는 5단 3000rpm에서 시속 110km가 나옵니다. 고 알피엠에도 시속 90~100km로 주행할 때보다 연비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래저래 부러웠던 독일 아우토반의 자동차 문화였습니다.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5월 5일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