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주홍글씨' 34년 만에 지운 윤성여씨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가 17일 오후 수원지방법원 형사법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후 감격해 하고 있다. 2020.12.17/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청주=뉴스1) 김용빈 기자 =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53)가 억울한 누명을 벗고, 살인자라고 새겨진 가슴 속 주홍글씨를 34년 만에 지울 수 있게 됐다.

8차 사건은 화성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사건이 계속되던 1988년 9월16일 발생했다. 이날 새벽 경기 화성군 태안읍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박모양(당시 13세)이 성폭행당한 뒤 목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듬해인 1989년 7월 경찰은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당시 경찰은 범행 수법이 이전 화성 사건들과 다른 점, 방에서 발견된 체모가 윤씨의 것과 일치한 점 등을 근거로 윤씨를 특정했다.

윤씨는 경찰 조사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조사 과정에서 얼차려와 구타가 이어졌고 3일 동안 잠도 자지 못했다. 밥을 먹은 기억조차도 없었다.

경찰의 강압 수사 끝에 윤씨는 결국 범행을 허위 자백하게 됐다.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탓에 조서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도 모른 채 지장을 찍었다. 현장검증도 엉망이었다. 범인이 넘었다는 담을 경찰의 도움을 받아 넘어야 했다.

그렇게 재판이 시작됐다. 그는 범행을 시인해야 사형은 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가슴 속 억울함을 억누른 윤씨는 1심에서 사형은 면했지만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얼굴도 보지 못한 국선 변호사가 선임됐지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1심이 끝난 후에야 그는 억울함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검찰에 재수사를 요구했지만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사건 당시 함께 잠을 잤던 증인의 증언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복역 중에도 재심을 해보려 했지만 시도할 명분이 없었다. 확정 결과를 뒤집을 만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윤씨는 대법원까지 간 재판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무기수로 복역하던 그는 20년형으로 감형돼 2009년 8월 청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사건 누명을 쓴 윤성여씨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뉴스1 김용빈 기자

그렇게 청주에 정착한 윤씨는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자기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살아왔다. 불편한 몸으로 직장도 얻었다. TV속에서 화성 살인 사건이 언급될 때마다 철저히 외면했다.

그렇게 마무리되고 잊혀질 것 같았던 이 사건은 30여년 만에 이춘재의 자백으로 새 국면을 맞았다. 이춘재는 8차 사건도 자신의 짓이라고 진술했다.

20년간 옥살이한 윤씨 역시 '경찰의 강압 수사로 누명을 썼다'며 재심을 신청했고, 몇 달간의 재판 끝에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박정제)는 17일 '이춘재 8차사건 재심'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고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씨가 8차 사건의 진범으로 몰렸던 당시 수사기록, 현장검증, 국과수 감정내용서 등 채택된 증거들에 대한 오류가 있음이 명백히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춘재가 수사기관부터 사법기관에 이르기까지 했던 진술들이 매우 신빙성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법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의 말도 전했다.

경찰청도 이날 입장문을 내 "재심 청구인을 비롯해 사건 피해자와 가족 등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윤씨는 사건과 관련된 모두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청주에서 새 삶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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