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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만 1억5000만원…가족도 버린 이들을 품은 죄(罪)[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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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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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빚더미 삶, '버려진 이들의 아버지' 이길상 목사…유기견 10마리, 길고양이 5마리까지 돌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장애인 형제들이 함께 살아가는 소망의 집 이길상 목사(66). 이날은 봄맞이 이발을 하는 날이었다. 덥수룩한 머리가 툭툭 떨어지니 어찌나 시원하던지./사진=남형도 기자
장애인 형제들이 함께 살아가는 소망의 집 이길상 목사(66). 이날은 봄맞이 이발을 하는 날이었다. 덥수룩한 머리가 툭툭 떨어지니 어찌나 시원하던지./사진=남형도 기자
빚만 1억5000만원…가족도 버린 이들을 품은 죄(罪)[남기자의 체헐리즘]
"하느님, 이 바보 같은 목사님을 어쩌면 좋을까요."


이길상 목사(66)를 만나고 돌아온 24일 밤, 오랜만에 그런 기도를 했다. 인간은 미약하고 이기적인지라, 주로 급하고 절박할 때 신을 찾는 법이니.

가족도 버린 장애인들을 30년 동안 품고도 모자라, 그러는 가족마저 이해된다고 말하는 사람. 고물과 헌 옷을 주워 힘겹게 버티면서도 버려진 개와 고양이들까지 돌보는 사람. 가장 약한 존재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 죄(罪)로, 1억 5000만원을 빚지고도 잘한 결정이라며 서글서글하게 웃는 사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란 말씀을 미련하게 따르는 이가 여기 있다고, 그건 현실에선 생각보다 가혹하니 조금만 돌봐주실 수 없냐고, 그리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컨테이너서 만난 뽀미와 목사님


뽀미야, 똘이(기자의 반려견, 말티즈, 7살)랑 친구할래? 이 녀석도 버려진 개였다./사진=남형도 기자
뽀미야, 똘이(기자의 반려견, 말티즈, 7살)랑 친구할래? 이 녀석도 버려진 개였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날 이 목사를 보러 충북 청주에 갔었다. 머나먼 섬마을 여행에서까지 십자가를 봤건만, 컨테이너 앞에서 목사님을 보게 될 줄은 또 몰랐다. 으리으리한 건물,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깔끔히 입고 안내하는 신도 봉사자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설마 이런 곳일 줄이야. 이곳은 이 목사가 일하는 공간. 헌 옷고물을 모아 파는 작업장과 유기견 10마리길고양이 5마리가 사는 집이 있다.

컨테이너 철문을 여니 어둑어둑한 생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털을 말끔히 깎은 뽀미(하얀 말티즈)가 날 반겼다. 펄쩍펄쩍 뛰는 녀석은 처음 만난 날 향해 신나서 웃었다. 얘는 어쩜 이리 착하냐고 묻자 "그런데 왜 이런 애들을 버리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누군가 뽀미를 시골에 버려 돌아다녔었다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 자신이 품게 됐단다.

그 말에 '어쩐지 이 사람 삶을 알 것 같다' 생각할 무렵 뽀미가 멍멍 짖었다. 곱게 들어 품에 안으니 비로소 잠잠해졌다. 잠시 뒤엔 자그마한 머리를 내 손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따스한 심장이 콩콩 울렸다. 비로소 길게 이어진 이 목사의 얘기는 이랬다.



소망의 집 이야기 ①: 장애인 마음을 잘 알아서, 함께 살고 싶었다


작업 중인 나무 십자가. 한 개에 3000원씩 팔았으나, 지난해 10월 작업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기계도 쓸 수 없게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작업 중인 나무 십자가. 한 개에 3000원씩 팔았으나, 지난해 10월 작업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기계도 쓸 수 없게 됐다./사진=남형도 기자
이 목사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그 역시 장애인이라 장애인 마음을 알았다. 그들을 돕고 싶었고, 함께 살고 싶었다.

신학 대학을 마친 1992년부터 장애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충북 충주서 장애인 두 명으로 시작해 30년 넘게 장애인과 함께 사는 '소망의 집'을 꾸려왔다. 그동안 100여명이 그 집에서 살다 생(生)을 마쳤다. 많을 땐 함께 하는 형제가 서른 명이 넘기도 했다.

초창기엔 시멘트를 싣고 공사판에서 일하며 쌀과 반찬을 사곤 했다. 눈비가 오는 날엔 라면으로 때웠다. 2000년쯤 비인가 장애인 시설서 불이나 12명이 숨지는 일이 생겼다. 정부에서 비인가 시설들을 양성화하겠다며, 인가를 받으면 보조금을 주겠다고 했다. 이 목사의 통장 잔고가 그 당시 15만원이었다.

그는 돈을 여기저기서 빌려 충북 괴산에 '소망의 집'을 지었다. 1억원이 넘게 들었다. 인가를 받았지만 바로 준다던 보조금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이 계속 불었다. 5~6년 뒤에야 보조금 4800만원이 나왔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빚 갚는 용도론 쓸 수가 없었다. 카드를 쓰고 영수증을 청구하는 방식이었다.



김치찌개에 김 반찬, "더 맛있는 것 주고픈데"


점심을 준비 중인 소망의 집. 이날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직원을 더 써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길상 목사 사모님의 손이 늘 분주하다./사진=남형도 기자
점심을 준비 중인 소망의 집. 이날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직원을 더 써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길상 목사 사모님의 손이 늘 분주하다./사진=남형도 기자

이야기는 잠시 뒤 더 듣기로 하고, 충북 청주 작업장에서 충북 증평에 있는 '소망의 집(장애인들이 머무는 집)'으로 이동했다. 차로 25분 이동해야 했다. 원래 작업장은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단다. 한 개에 3000원인 나무 십자가를 만들고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보일러 과열로 인한 화재로, 십자가를 만드는 기계까지 다 타버렸다.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에만 1000만원이 들었다. 소방호스를 함께 들며 뭐라도 건지려 뛰어다니다가 어깨까지 다쳤다. 치료를 제대로 받았냐고 물으니 이 목사는 "병원비가 비싸다"며 "죽을병은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

소망의 집에 도착하니 좁다란 마당이 보였다. 문을 열고 형제들과 첫인사를 나눴다. 시선들이 내게 모였다. 이야기를 듣고 싶어 왔다고 찬찬히 소개한 뒤 천천히 둘러 보았다. 지적 장애, 자폐성 장애가 있는 발달 장애인이 대부분이었다. 사지 또는 하반신 마비가 있는 지체 장애인, 그리고 시각장애와 자폐성 장애가 있는 중복 장애인도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계속해서 홀로 대화하듯 중얼거렸다. 그 외엔 고요한 차창 안으로 정오 빛이 들어왔고, TV 속 사극 드라마 대사 소리만 울렸다.
맛있게 점심 식사 중인 나눔의 집 형제들./사진=남형도 기자
맛있게 점심 식사 중인 나눔의 집 형제들./사진=남형도 기자

하루 동안 봉사할 참이라 겉옷을 벗었다. 점심시간이라 주방으로 향했다. 메뉴는 김치찌개. 이 목사 사모님이 식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릇 12개를 가져와 커다란 밥솥에서 밥을 넉넉히 퍼 담았다. 성훈 형제(가명)가 밥상을 나르고 바닥에 폈다. 형제 중 조금이나마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세 명 정도가, 설거지와 청소 당번을 정해 집안일을 한다고 했다.

사모님은 "형제들이 밥을 말아 먹는 걸 좋아한다"며 김치찌개에 밥을 말았다. 12그릇이 완성돼 밥상에 차곡차곡 놓였다. 김과 김치, 장아찌까지 상에 놓였다. 조촐한 반찬이었다. 밥상 앞에선 "다른 때는 반찬이 더 괜찮아요"라고 겸연쩍어하던 이 목사는 나중에 나와 있을 땐 다시 이렇게 고백했다. "더 맛있는 걸 주고 싶지요. 실은 반찬 같은 것도 잘해 먹기가 힘들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형제들은 밥을 맛있게 먹었다. 식구(食口), 한집에 함께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 각자 달리 태어났고, 사연도 생김새도 나이도 다 달랐으나 이렇게 모여 길게는 30년, 짧아도 10년 이상 함께한 이들. 누군가의 사랑 안에 같이 사는 삶. 그래서인지, 형제들의 밥 먹는 소리 만큼은 따스하고 경쾌했다.



소망의 집 이야기 ②: 빚더미 삶, 차마 그만두지도 못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기자와 이길상 목사 사모님. 뒷모습도 살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사진=이길상 목사님
설거지를 하고 있는 기자와 이길상 목사 사모님. 뒷모습도 살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사진=이길상 목사님
밥을 다 먹고, 설거지 당번인 성훈 형제를 쉬게 하고 호기롭게 나섰다. 12인분은 처음이라 잠깐 후회할 뻔했다(그러나 티는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오후 4시 30분이면 다시 저녁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모님의 일손을 덜고 싶어서. 그는 "성훈 형제는 그릇 뒷면도 씻어야 한다고 자꾸 알려줘야 하지요"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함께 살고 있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이니.

설거지를 마치고 이 목사와 나란히 앉아, 아까 이야기를 이어서 들었다.

2016년 말 얘기로 돌아간다. 어쨌거나 이 목사는 첫 소망의 집(괴산)을 만드느라 냈던 빚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장애인 가족들에게 돌보는 위탁금을 받는 것도 아녔다. 아예 이사 간 뒤 전화번호를 바꾸는 장애인 가족들도 있었다. 명절에도 거의 찾지 않았다. 이 목사는 "형제들도 다 안다. 가족들을 기다린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러니 명절엔 종일 분위기가 무거워 형제들 눈치를 본다"고 했다. 가족들도 버리다시피 했으니 날이 갈수록 힘에 부쳤다. 이들을 끌고 나갈수록 빚이라 청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별수 없이 집을 넘기기로 했다.

Ah... /사진=인터스텔라 속 다른 차원을 헤매고 있는 남형도 기자
Ah... /사진=인터스텔라 속 다른 차원을 헤매고 있는 남형도 기자

우선 사정이 그나마 나은 장애인 다섯 명을 내보냈다. 그제야 모른 척하던 가족들이 난리가 났다. 가난해서 맞벌이해야 하는데 얘를 어떻게 돌보냐고, 우린 어떻게 사냐고 애걸복걸했다. 어떤 이는 이 목사의 교회에(주로 장애인 형제들만 다니는) 몰래 아이를 다시 두고 갔다. 그걸 차마 내치지 못했다. 10~20년씩 함께한 정(情)이 무서웠다.

어쩌겠는가. 갈등하던 이 목사는 2017년, 충북 증평으로 옮겨 장애인들과 다시 함께하기로 했다. 소망의 집을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증평에서 집을 다시 구했다. 또다시 빚을 1억 9000만원 정도 냈다. 후원금으로 그나마 조금씩 갚았다. 소망의 집 이야기는 다시 '잠시 멈춤'.



봄맞이 머리 깎는 날!


소망의 집 형제들은 이발 중./사진=남형도 기자
소망의 집 형제들은 이발 중./사진=남형도 기자

오후엔 형제들 머리를 깎기로 했다. 한 달 반 만에 돌아오는 날이었다. 기나긴 겨울 끝 봄맞이 이발이랄까. 미용 초보인 이 목사가 직접 깎는 터라, 스타일은 짧은 스포츠형 한 가지다. 원래는 오래 미용 봉사한 이가 있었는데, 그 역시 나이가 들어 미안해서 더는 부탁할 수 없게 됐다고. 그래서 이 목사가 직접 3개월간 미용 학원을 다녔단다. 넉넉히 두 시간은 잡아야 다 깎는다고.

의자를 가져오고 거울을 세우니 제법 미용실 같았다. 이 목사가 이발기를 들고 시원스레 깎기 시작했다. 베드로(가명) 형제를 시작으로 장장 8명을 단장해야 하는 대장정. 기계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겨우내 하얗고 검게 묵은 무거운 머리털이, 바닥에 툭툭 떨어져 쌓여갔다. 다 깎고 이 목사가 "머리 마음에 들지?"하니 베드로 형제가 그렇다며 고갤 끄덕였다. "잘못 깎아도 어쩔 수 없어"하며 이 목사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슬며시 웃었다.

샴푸로 머리 감기는 건 내 몫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왼손
샴푸로 머리 감기는 건 내 몫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왼손

시원스레 다 깎은 머리를 감기는 건 내 몫이었다. 형제들을 조심조심 화장실로 이끌어 머리에 물을 묻히고, 샴푸를 살짝 짜서 다섯 손가락으로 마사지하듯 문질렀다. 조곤조곤 타이르듯 하나씩 이야기하자, 아이처럼 얌전히 말을 잘 따랐다. 거품이 난 머리에 따스한 물을 끼얹자 내 마음도 어찌나 시원하던지. 천천히 구석구석 깨끗이 씻어냈다. 혹여나 오래 묵은 기억 중 나쁜 건, 이리 다 씻겨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을 닦아주자, 이삭(가명) 형제는 몇 번이고 "감사해요"라고 했다.



가족도 버린, 소망의 집 형제들 이야기


이 곳에서 20~30년 함께하는 삶. 그러니 식구며 가족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이 곳에서 20~30년 함께하는 삶. 그러니 식구며 가족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한 명씩 머릴 깎을 때마다 형제들 이름을 묻고 외우려 했다. 각자 사연은 이랬다. 몇몇만 소개한다.

전신 마비라 지체 장애 1급인 기현(가명) 형제(소망의 집에서 지낸 지 12년)는 엄마와 함께 살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엔 이곳에 왔다. 누나와 동생이 있으나, 같이 데리고 살긴 쉽지 않았다. 참 똑똑하고 기억력이 좋다고. 소변 감각이 없어 기저귀를 하는데, 습진과 욕창이 자꾸 생긴다고 했다.

자폐성 장애인 지훈(가명) 형제는 20대 때 소망의 집에 왔다. 20년 가까이 됐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비장애인 여동생과 산단다. 지훈 형제가 엄마를 자꾸 때려서 힘든 생활이었다고. 그는 자신의 코를 자꾸 때리고 자해를 하는 버릇이 있다. 내게도 마스크를 내려 코를 보여주며 씩 웃었다.

영민(가명) 형제는 7년 전에 소망의 집에 왔다.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할머니까지 돌아가셨고, 아빠가 홀로 키우기 힘들게 됐다. 그래도 특수학교를 나와 글도 알고, 교육도 받았단다.

가족도 모른 체 하는 형제들의 삶. 명절에도 오는 이들이 거의 없단다./사진=남형도 기자
가족도 모른 체 하는 형제들의 삶. 명절에도 오는 이들이 거의 없단다./사진=남형도 기자

성구(가명) 형제는 부모가 이혼했다. 아빠는 지적 장애인이다. 공장에 다니는데 성구 홀로 두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왔는데, 그게 벌써 17년이 됐다. 성구 형제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데, 순하게 앉아 성경책을 거꾸로 들고 넘기는 걸 좋아한다고. 그러고 보니 그가 든 성경책이 너덜너덜했다.

이야길 다 듣고 바라보니, 비로소 그들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몇몇은 돌아보다 눈이 마주친 내게 환히 웃어주었다.



소망의 집 이야기 ③: 10명에게 진 빚이 1억5000만원, 잠도 안 온다고


이발 후 떨어진 머리카락을 청소하는 목사님./사진=남형도 기자
이발 후 떨어진 머리카락을 청소하는 목사님./사진=남형도 기자

이발을 마치고 바닥 청소까지 다 했다. 청소기가 말썽이라 고치느라 조금 분주했다. 말끔해진 집과 형제들을 보니 봄 개나리가 벌써 핀 듯 산뜻했다. 의자에 앉아 쉬던 이 목사에게 다가가 "고생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뒤이어 소망의 집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이곳 현재 상황은 이랬다. 소망의 집엔 8명(발달·지체·시각장애인)이 살고 있다. 수입과 지출을 따지면 한 달에 200~300만원씩 계속 빚을 지는 형편이다.

수입은 이렇다. 증평에선 공동생활가정(그룹홈)으로 등록됐다. 그래서 충북 증평군청에서 1년에 보조금 240만원이 나온다. 그걸 잘못 알아듣고 "한 달에 240만원이냐"고 되물었더니 "1년에 240만원 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달에 20만원 꼴이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 6명에게 50만원씩 받는다. 생활비로만 쓸 수 있는 돈이다. 거기에 이 목사가 고물과 헌 옷을 주워 한 달에 80만원 정도 번다.

지출은 이랬다. 복지사가 둘인데, 한 명은 이 목사의 아내라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 나머지 한 명에 대한 월급이 한 달에 270만원 나간다. 건물 빚에 대한 원리금이 한 달에 110만원이고, 작업장은 한 달에 20만원 낸다. 장애인들 생활비를 뺀 고정 비용만 한 달에 400만원. 여기에 병원비도 들고, 죽으면 장례 비용까지 든다. 그러니 빚만 계속 늘고 힘이 빠져, 6년 동안 하던 교회(월세 30만원)도 2월 말까지 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은퇴한 목사 부부 2명 외엔, 신도가 모두 소망의 집 형제들뿐이었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교회 갈 때 외출 하는 걸 아이처럼 너무 좋아했다고. 이 목사는 "소풍 가는 것처럼 좋아했는데, 교회도 그만두게 돼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현재 남은 빚이 1억 5000만원. 빌린 이들만 모두 10명이라 밤에 잠도 안 온다고. 손을 하도 벌려서 이젠 친구도 없단다. 그는 "빚만 없어도 세상을 훨훨 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학대당한 사랑이, 산책에 신난 선물이


가족에게 버려진 존재들, 개들마저 품어준 소망의 집. 사람을 이리 좋아한다. 내게 웃어주는 것조차 너무 미안하다./사진=남형도 기자
가족에게 버려진 존재들, 개들마저 품어준 소망의 집. 사람을 이리 좋아한다. 내게 웃어주는 것조차 너무 미안하다./사진=남형도 기자

늦은 오후, 소망의 집에서 나와 다시 청주에 있는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있는 유기견 10마리와 길고양이 5마리를 돌볼 차례였다.

6년 전에 예산 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에 구한 유기견 사순이를 데려온 게 시작이었다. 주인에게 학대당한 사랑이, 버림받은 말라뮤트(대형견) 선물이, 뒷다리가 없는 장애묘 온유, 유기묘 소망이와 새끼 고양이 세 마리까지. 사정 때문에 최저가 사료도 맘 편히 못 먹이다가, 황동열 팅커벨 프로젝트 대표 도움으로 사료 후원을 석 달에 한 번씩 받게 됐다.

유기견이었다가 구조된 소망의 집 평강이. 평강아, 너무 예쁜 거 아니닝./사진=하트 나가는 남형도 기자
유기견이었다가 구조된 소망의 집 평강이. 평강아, 너무 예쁜 거 아니닝./사진=하트 나가는 남형도 기자
이 목사가 견사에 들어가 밥과 물을 가득 채워줬다. 나도 뒤따라 들어가 그 안에 널리 퍼져 있는 응아를 치웠다. 그러는 동안 녀석들이 내게 반갑다고 꼬릴 흔들고, 다릴 붙잡고 아주 난리였다(개들에게 인기 많은 편). 쓰다듬으랴, 응아 치우랴, 간식 나눠주랴 행복하게 정신이 없었다. 다 마치고 나니 아직 서늘한 날씨임에도 땀에 흠뻑 젖었다. 이 목사는 "혼자 할 땐 두 시간 정도는 걸린다"고 했다.

선물이(말라뮤트) 산책을 시키기로 했다. 몸이 불편한 이 목사가 하기엔 좀 어려우니, 간만에 이 녀석 에너지 좀 쏟으라고. 줄을 풀어주니 앞으로 뛰쳐나가는데, 자칫하면 안드로메다로 끌려갈 뻔했다. 평소 이두박근을 단련한 덕분에 꽉 잡을 수 있었다. 선물이와 논밭을 따라 전력 질주도 하고, 중간중간 말을 걸며 쓰다듬어 주고, 함께 냄새도 킁킁 맡으며 1시간 정도 즐거운 산책을 했다. 녀석은 돌아온 뒤에야 기분 좋은 표정으로 헥헥 거리며 차분해졌다.



괴로운 밤마다 시(詩)를 썼다


이발 후 어깨가 아프다며 주무르고 있는 이 목사. 치료하라니까 그 돈이 아깝다며./사진=남형도 기자
이발 후 어깨가 아프다며 주무르고 있는 이 목사. 치료하라니까 그 돈이 아깝다며./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니 '버려진 존재들의 아버지'랄까. 그러나 그 삶은 위태롭게 휘청거린다.

어둑어둑할 무렵에야 컨테이너로 돌아온 이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하루 무사히 지나가기만 바랍니다." 버거운 빚에, 청년 땐 기세 좋았던 건강도 나빠졌다. 고혈압에 고지혈증에 심장도 좋지 않다고. 덜컥 죽을까 두렵지만, 앓아누워 돈만 쓸까 싶어 더 두렵단다.

밤이 괴로워 잠이 안 올 때면 시(詩)를 썼다. 그럼 그걸 쓸 동안엔 걱정을 잊었다. 고민의 도피처로 글을 쓴 거였다.

아픔이 사랑인 줄 그렇게 말없이 눈물로 살아왔습니다.
흘린 눈물로 작은 연못 하난 만들었을 것만큼 많이요.
먼 날 고운 꿈 안고 님들의 곁을 떠날 때
그때 아름다운 향기로 님들의 사랑의 의미가 되고 싶어요.

<이길상- 사랑의 의미가 되고 싶어요 中>

&quot;후회 할 때는 없나요?&quot; &quot;가끔 후회할 때도 있지만, 그 결정은 잘한 것 같아요.&quot;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삶을 오래 꿈꿨고, 그걸 30년 넘게 실현한 이 목사의 표정이 그리 대답하고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후회 할 때는 없나요?" "가끔 후회할 때도 있지만, 그 결정은 잘한 것 같아요."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삶을 오래 꿈꿨고, 그걸 30년 넘게 실현한 이 목사의 표정이 그리 대답하고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정말 힘들 땐 어떻게 이겨내느냐 물었다. 형제들, 아니 식구들 생각하며 버틴다고 했다. "그래도 저는 나은 편입니다.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내가 그들처럼 버림받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렇게나마 위로를 합니다."



바다에 데려가고 싶어요, 형제들과


새만금 바다에 간 소망의 집 형제들. 태어나 처음 간 이도 있었고, 너무 좋아했단다. 바다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다 비슷한 게 아닐까./사진=이길상 목사
새만금 바다에 간 소망의 집 형제들. 태어나 처음 간 이도 있었고, 너무 좋아했단다. 바다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다 비슷한 게 아닐까./사진=이길상 목사
그러나 더 잘해주지 못함이 죄스럽단다. 40~50%만 채워주는 것 같다고. 더 여유가 생기면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코로나19로 답답한데 운동도 더 시켜주고 싶고, 먹는 것도 더 잘해주고 싶고, 가까운 곳에 여행도 더 데려가고 싶다고. 거기에 본인을 위한 내용은 없었다.

그러면서 형제들이 새만금 바다에 갔을 때 사진을 보여줬다. 삼성에서 버스 지원을 해줘서 갈 수 있었다고, 이미 꽤 오래전 일이라 했다. 태어나 바다를 처음 본 형제들도 있었다. 너무 좋아했더라고. 형제들도, 이 목사도 사진 속에서 환히 웃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을 했다. 2017년에 소망의 집을 그만둘까 고민했었던 그의 선택 얘기다. 결국 계속하기로 했는데, 그걸 후회한 적은 없었냐고. "가끔 후회하기도 했죠." 솔직한 답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제가 선택을 참 잘했어요." 왜 그러냐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우리 식구들이 잘 지내고, 그들의 가족들까지 갈등 없이 잘 지내잖아요."

그리 바라보니, 그는 생각보다 더 많은 이를 행복하게 하며 산 것일 거라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이들을 돌보면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었던 요셉 형제. 그는 소망의 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 됐고, 그에게 소망의 집도 그러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불의의 사고를 당했었던 요셉 형제. 그는 소망의 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이 됐고, 그에게 소망의 집도 그러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술에 취해 벌어진 사고였다. 순식간에 3층에서 떨어졌다. 죽을 뻔했다. 대신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게 벌써 20년 전 얘기라 했다. 그 시간 동안 소망의 집에서 지냈다. 요셉 형제 얘기다. 성도 이길섭 목사와 같다. 그래서 "요셉아, 너 나한테 큰아버지라고 불러"라고 하고 "싫어요"하는 티격태격이 이어지곤 한다.

처음엔 다쳐서 누워만 있었다. 소변도 못 가렸다. 병원 갈 일이 있을 땐 이 목사가 업고 뛰었다. "지금은 무거워서 들지도 못한다"고 놀렸다. 감각도 찾았고, 건강도 회복했다. 살림살이를 많이 돕는다고.

머리를 다 깎은 요셉 형제에게 다가가 물었다. 소망의 집은 그에게 어떤 의미냐고. 수줍게 웃으며 가족이라고만 답했다. 질문을 바꿔 다시 물었다. 소망의 집이 없었다면 어땠을 것 같냐고. 그제야 그는 목소리를 또박또박 내며 이렇게 말했다.

"소망의 집이 없었으면, 이것보다 훨씬 더 비참한 삶을 살았을 거예요."
막짤은 애교 많은 고양이 온유. 뒷다리 한쪽이 없으나 그게 뭐가 중요하랴. 돌봐주는 이가 있고 사랑을 줄 수 있다면. 서로 온기를 나눌 수 있다면./사진=남형도 기자
막짤은 애교 많은 고양이 온유. 뒷다리 한쪽이 없으나 그게 뭐가 중요하랴. 돌봐주는 이가 있고 사랑을 줄 수 있다면. 서로 온기를 나눌 수 있다면./사진=남형도 기자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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