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박원순의 시간' 못버리는 與…'노무현 정신'과 나란히?

/사진=뉴시스

여권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성추행'으로 몰락한 두 사람이지만,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에도 여권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대선 국면까지 이런 모습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조국의 시간'에 강성 지지층 "나의 대통령"조국 전 장관은 다음달 1일 회고록 '조국의 시간' 출간을 예고했다. 그는 "2019년 8월9일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정리하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한다"며 "촛불시민들께 이 책을 바친다.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내려가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꾹 참고 썼다. 사실을 밝히고 싶었다"고 밝혔다.

자신이 뇌물수수 등 11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황,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1심에서 징역 4년, 벌금 5억원을 선고받은 상황에 대해서는 "검찰, 언론, 보수야당 카르텔이 유포해놓은 허위사실이 압도적으로 전파돼 있다. 사명을 수행하다가 날벼락처럼 비운은 만났다"고 설명했다. 억울하다는 것이다. 출판사 측은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홍보문구를 적었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의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은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4분 만에 매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친문 성향 커뮤니티인 '클리앙'의 누리꾼들은 "조국과 촛불은 하나", "나의 대통령", "한 권은 소장용, 한 권은 탐독용, 한 권은 선물용으로 3권 샀다", "뭉클하다" 등의 내용을 더해 구매 인증글을 올렸다. 조 전 장관이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점이 드러난 대목이다.

/사진=클리앙 캡처

"용산공원에 박원순 이름을"에 586 '좋아요'...조국과 박원순의 얼굴, 노무현과 나란히올 3월에는 박원순 전 시장이 소환됐다. 성추행 사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 전 시장 심판 여론이 4.7 재보선을 앞두고 비등하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움직였다. 그는 "박원순은 내가 아는 가장 청렴한 공직자였다"며 "용산 공원의 속 어느 의자엔가는 매순간 사람의 가치를 높이고자 치열했던 박원순의 이름 석자를 소박하게나마 새겨 넣었으면 좋겠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이 글에는 조 전 장관(65년생)을 비롯해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61년생), 조한기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66년생), 문대림 전 청와대 제도개선비서관(65년생) 등이 공감을 눌렀다. 여당 주류인 친문 586 인사들이 '박원순 재평가'에 동의를 한 것이다.

이처럼 조 전 장관과 박 전 시장에 대한 여권 강성 지지자들의 애착은 여전하다. 이런 경향은 최근 두 차례의 전시회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19~24일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진행된 '사람사는 세상전'에는 조 전 장관과 박 전 시장의 초상화가 전시돼 논란이 일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12주기를 맞아 '노무현 정신'을 기리는 전시회에 두 사람의 얼굴이 노 전 대통령 초상화와 함께 걸린 것. '노무현'의 권위를 활용해 두 사람에게 정치적 면죄부를 준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김수민 시사평론가는 "역사는 후안무치한 자가 쓴다"고 꼬집었다.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지난 19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진행되는 '사람사는 세상전'에 걸린 그림.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백기완 선생, 노회찬 전 의원 외에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그림이 걸렸다./사진=최경민 기자

앞서 지난달 김종도 작가의 개인전에도 두 사람의 초상화가 포함됐는데, 윤미향 민주당 의원은 이 전시회 페이스북 게시글을 공유하며 홍보했다. 윤 의원이 공유한 전시회의 취지는 "프레임에 갖혀진 사람은 표적이 돼 온 가족이 발가벗겨 지고 목숨을 잃기도 한다. 프레임을 만든 거대 권력, 보이지 않는 통탄할 세상을 초상화를 통해 김종도 작가는 그려내고 있다"였다.
'586+시민단체' 공고…변화는 없다586(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및 시민단체 출신의 친문 세력이 여권 주류인 상황에서 조 전 장관과 박 전 시장에 대한 '손절'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재보선 이후 초선 5인방이 제기한 '조국 책임론'은 강성 지지자들에게 즉각 제압당했다. 이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할 경우 '문자폭탄'으로 응징당할 것이라는 우려,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못 받을 것이란 걱정이 적지 않다.

대선후보 경선 국면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 조 전 장관의 회고록 출간에 대권주자인 이낙연 의원은 "조 전 장관이 고난 속 기반을 놓은 정부의 개혁 과제들, 특히 검찰개혁의 완성에 저도 힘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조국의 시간'은 우리의 이정표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한 인사는 "공천부터 시작해서 핵심 지지층을 고려한 정무적 판단을 안 할 수가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강성 친문당이 돼 참 어렵게 됐다. 앞으로 나서보고 싶어도 죽을까 두렵다는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박원순 전 시장의 기일인 7월9일도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