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실패' 인정한 정부…"백신 맞으라"며 책임 떠넘기나

정부가 중증화율과 백신 효과 예측에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정부가 중증화율은 낮게, 백신 효과는 높게 예측하는 바람에 준비한 병상과 의료인력을 뛰어 넘는 규모의 중환자가 나오는 상황이다. 예측 실패로 유행을 키운 정부는 다시 백신 효과를 강조하고 나섰다. 유행 차단의 핵심을 백신 접종에 두면서 '백신 인센티브'를 늘렸다. 사실상 미접종자에 대한 차별을 넓히고 국민에 책임을 떠미는 것으로도 읽힌다.

정부 "중증화율·백신 효과 예측 실패"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9일 0시 기준 국내 코로나19(COVID-19) 신규 확진자는 7102명이다. 이틀째 7000명대다. 위중증 환자는 857명으로 또 역대 최다 기록을 깼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도입 후 유행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것은 정부의 예측 실패로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9일 YTN라디오에서 "백신 효과가 6개월은 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3개월부터 효과가 떨어져 4개월이 되면 굉장히 낮아졌다"며 "그 때문에 위중증 환자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백신 효과 예측에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앞서 정부는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지난 8일 "7000명 정도 확진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중증화율이 당초 가정했던 1.6%보다 다소 높은 2~2.5%"라며 중증화율 예측 실패를 자인했다.


백신 효과는 높게, 중증화율은 낮게 예측해 병상이나 의료인력 등 의료자원을 확보하는 것보다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데만 집중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유행 규모가 준비된 의료자원의 한계선을 뛰어넘었다. 병상 부족이 심각해져 고위험군이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집에서 병상을 기다린다. 의료진들은 번아웃을 호소한다. 하루 이상 병상을 기다리는 사람은 무려 1003명이다. 이 중 70세 이상 454명, 고혈압·당뇨 등 기저질환자 549명이다. 위중증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중환자 관리에 구멍이 생기면서 사망자도 늘어난다. 최근 5주간 병상 대기자자 중 29명이 사망했다. '아워월드인데이터'는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치명률을 1.42%로 집계했다. 확진을 받고 10일 후 증상 악화로 사망한다는 점을 감안해 최근 7일간 사망자를 10일 전 7일 평균 환자 수로 나눈 값이다. 전 세계 평균(1.41%)보다 높다. G7 중에서는 미국(2.1%) 다음으로 높다. 방대본이 지난해 1월3일부터 집계한 국내 누적 치명률(0.82%)보다 한참 높다.

다시 '백신'으로...미접종자 차별 영역 커져
이처럼 유행이 심각해진 상황에서 정부는 해결책으로 '백신 접종'을 꺼냈다. 미접종자를 접종토록 하고 기존 접종자의 추가접종률을 높여 위중증 환자, 사망자를 줄인다는 조치다. 유행 차단의 핵심을 백신 접종에 둬 책임을 국민에 미룬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미접종자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접종 완료자보다 생활 지원금을 적게 준다.

우선 방역패스(접종완료·음성확인서) 활용 범위를 확대한다. 방역패스 적용 시설은 유흥시설 등에서 지난 6일부터 식당, 카페도 포함됐다. 사적 모임은 수도권 6인, 비수도권 8인까지만 허용하고 미접종자는 모임 내 1명만 가능토록 했다. 미접종자의 다중이용시설 이용과 모임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또한, 미접종자가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재택치료를 할 경우 추가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생활 지원비는 가구원 수에 따라 다르게 지급되는데 △1인 가구 22만원 △2인 가구 30만원 △3인 가구 39만원 △4인 가구 46만원 △5인 이상 가구 48만원이다. 미접종자는 이 지원비를 받을 수 없다. 코로나19 확진될 경우 기존 생활지원금(△1인 가구 33만9000원 △2인 가구 57만2850원 △3인 가구 73만9280원 △4인 가구 90만4920원 △5인 이상 가구 106만9070원)만 받는다.

기존에 접종 대상자가 아니었던 청소년도 방역패스 대상에 포함시켜 소아·청소년의 접종도 의무화했다. 내년 2월부터 만 12~18세 청소년도 학원이나 독서실을 갈 때 방역패스가 필요하다.

이미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의 추가접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방역패스 유효기간을 6개월로 적용한다.

이 같은 조치에도 추가접종률, 접종완료율은 정부 예상만큼 빠르게 늘지는 않는다. 9일 0시 기준 3차 접종을 받은 사람은 전체 인구 대비 9.4%다. 2차접종 완료자 비율은 80.8%다. 청소년 방역패스는 반발이 만만찮다. 소아·청소년 방역패스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에 30만명이 넘게 동의했다.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은 현재 유행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진단한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백신은 열차, 감염속도는 KTX"라면서 "현재 유행은 백신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접종만 강조하는 것은 국민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 효과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접종률을 과신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미접종자 차별을 늘리고 있어 접종에 대해 국민 반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