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어도 못 갚아" 막아선 美…러시아 진짜로 디폴트 빠지나

미국 재부무가 자국 은행들에게 러시아 달러화 채권 이자 지급 불허 명령을 내리면서 러시아가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미국 달러와 러시아 루블화/사진=AFP

우크라이나 군사 침공으로 서방으로부터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또 다시 국가부도 위기에 놓였다. 지난달 중순 1차로 찾아온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는 가까스로 모면했지만 이번엔 국채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도록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섰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가디언 등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자국 은행들에게 러시아 달러화 채권 이자 결제 처리와 관련 불허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가 거래은행인 JP모건 은행 계좌를 통해 지불한 달러화 채권 이자는 승인이 나지 않아 지급이 중단된 상태다. 이 달러화 채권은 2022년과 2042년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로 이날이 이자 지급일이었다. 통상 채권을 발행한 국가가 이자를 지급하면 거래은행이 이 금액을 해외 채권 보유자들에게 나눠주는데 미국 정부가 이를 막은 것이다.

앞서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제재 초기인 지난달 16일 달러화 채권 이자를 지급한 바 있다. 당시에도 국가부도 위기에 놓였지만 미국의 허가로 투자자들에게 이자 지급이 이뤄졌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재무부 건물/사진=AFP

하지만 이번엔 달러화 국채 이자 결제가 막혔다. 미 재무부 대변인은 "이전까지는 러시아의 결제 처리가 이뤄졌지만 4일부터는 이자 지급이 허용되지 않는다"며 "러시아 정부의 미국 금융기관 계좌에서는 앞으로 달러화 채권 이자를 상환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는 자국에 남아 있는 달러 보유고를 소진하거나 새로운 수입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며 "이 두 가지를 할 수 없다면 채무불이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달러화 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지만 당장 국가부도가 나는 것은 아니다. 최초 이자 지급 만기일로부터 30일간 지불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러시아가 다음달 4일까지 이자를 갚으면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갚지 못할 경우 1998년에 이어 24년 만에 디폴트 상황을 맞는다. 당시엔 아시아 외환위기와 맞물려 루블화 채권을 갚지 못해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이번엔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 이후 약 105년 만에 처음으로 외화 국채 때문에 디폴트 위기에 놓인 것이다.

러시아가 글로벌 시장에 갚아야 할 달러화 국채는 총 15개, 390억달러(47조8000억원) 수준이다. 이는 러시아의 외환보유액 6430억달러(790조원)에 비해 큰 금액이 아니지만 러시아 수중에는 당장 가용할 외화가 넉넉하지 않다. 대부분 자금이 미국 뉴욕·영국 런던 등 주요 도시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에 묶여 있다.

앞서 러시아는 외환보유고 접근이 불가한 제재로 채무 지급이 어려운 만큼 자국 통화인 루블화로 갚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달러화 채권을 발행할 때 루블화 대체 지급 규정 등을 명시하지 있지 않아 러시아가 이자를 루블화로 지급할 경우 국제사회는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원금을 전액 상환하는 등 법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러시아는 국제 자본시장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