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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퀴어'의 커밍아웃, 화려하지 않은 고백

머니투데이
  • 한수진 기자 iz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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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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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웨이브
사진제공=웨이브
기자는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성 정체성에 관해 갈등하는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살면서 만나본 성소수자는 10년 전 대학생 시절 같은 교양 수업을 들었던 타과생이 전부다. 그와도 딱히 친한 건 아니었다. 종강을 기념해 교수가 학생들을 포차에 불러 모아 거하게 한잔했을 때, 교수는 그를 일으켜세우며 "이 친구는 바이섹슈얼이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사랑하는 특별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때 그 학생의 당황하던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웃팅(강제로 성정체성이 밝혀지는 일)을 당한 직후 그가 한 행동은 소주를 병째로 들어 벌컥벌컥 들이키는 일이었다. 순식간에 떠들법석했던 자리에 정적이 흘렀다.


이 일을 겪기 전까지만 해도 성소수자에 대한 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히 해프닝으로 지나치기엔 그 학생이 나지막이 읊조렸던 욕설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일로 교수는 공개 사과를 했다. 그 학생도 사과를 받으며 일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과를 주고받았다고 해서 그의 마음은 정말 괜찮은 걸까 걱정이 들었다. 처음 목격한 커밍아웃이 아닌 아웃팅의 결말은 이러했다. 본인에게나 교수에게나, 그 자리에 있던 학생 모두에게 상처뿐인 그런 결말.


이러한 이야기를 꺼낸 건 웨이브 '메리퀴어'를 보면서 당시의 기억이 다시 한번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메리퀴어'는 다양성(性) 커플들의 연애와 결혼 도전기를 담은 국내 최초 리얼 커밍아웃 로맨스 관찰 리얼리티 예능이다. 게이 커플(보성-민준), FTM(Female to Male) 트렌스젠더와 양성애자 커플(지해-민주), 레즈비언 커플(가람-승은)의 결혼기를 그린다. LGBTQ에 대한 영화와 드라마는 수차례 봐왔지만 예능은 처음이었다. 영화와 드라마는 연기지만, 예능은 출연자들이 실제 성소수자라는 점에서 체감이 다르다. 예능보단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던 관찰기는 더욱 싱숭한 마음을 들게 했다.


사진제공=웨이브
사진제공=웨이브


세 커플을 관찰하는 패널은 신동엽, 홍석천, 하니까지 총 3명이다. 이 중 홍석천은 오래 전 커밍아웃을 한 대표적인 게이 연예인이다. 신동엽은 그런 홍석천의 오랜 친우이고, 하니는 이들과 특별한 접점은 없지만 유일한 여성으로서 그 자리에 앉았다. 신동엽은 "큰 화면에서 이들이 같이 사는 모습이 나오니까 조금은 어색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보여주는 거다. 저 분들한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이라고 말했다. 신동엽은 위트와 진지함 사이에서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세 커플의 용기에 덤덤하게 위로의 말을 보태면서도, 홍석천의 장난어린 스킨십에는 철벽을 친다. 하니는 평범한 일상 생활도 평범하게 보내지 못하는 커플들을 지켜보며 곧잘 눈물을 터트린다. 홍석천은 LGBTQ에 대한 부연 설명을 더하거나, 커플들에 자신을 이입하며 진하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게이 커플인 보성과 민준은 혼인신고가 목표다. 같이 산 지는 1년이 넘은 커플이다. 이들이 친구들을 초대해 나누던 대화는 성소수자가 지닌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였다. 민준은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 엄마가 사흘 간 앓아 누웠던 일을 털어놓으며 "엄마가 3일 째 되는 날 자리에서 일어나서 '성소수자로 살면 많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엄마 친구 중에 엄청 친한 이모가 있다.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그 이모랑 결혼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엄마는 '아니'라고 했고, 나 역시 그렇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보성은 "고등학교 때 주변 눈치를 봤다. 그래서 여자도 사귀었다. 그러다 다들 내가 게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자연스럽게 멀어진 친구들도 있었다"고 했다.


지해와 민주는 FTM 트렌스젠더와 양성애자 커플이다. 지해는 주민등록증 성별 정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앞서 둘은 수영장 나들이에 나섰다. 지해는 유독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수영은 좋아했지만 여자 수영복을 입어야했던 이유로 수영장에 발을 끊은지가 오래였다. 하지만 이들은 물에 가까이 가지도 못한 채 데스크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탈의실이 문제였다. 지해가 트렌스젠더임을 밝히자 관리자는 이들을 돌려보냈다. 평범한 일상도 이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레즈비언 커플인 가람과 승은은 결혼식이 목표다. 실행에 옮기기 위해 둘은 웨딩 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던 안내 직원들은 이들이 레즈비언 커플임을 밝히자 곤란한 기색을 대놓고 드러냈다. 한 업체는 대놓고 "진행이 어렵다"고도 말했다. 물론 모든 업체가 이들을 거부한 건 아니지만, 몇몇의 거절이 이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사진제공=웨이브
사진제공=웨이브


우리는 말하지 않으면 비트랜스젠더 이성애자로 취급된다. 성소수자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는 이 암묵적인 규범을 거스르는 고백이 필요하다. 규범을 깨트릴 용기와 특별한 동기가 있을 때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을 한다. '메리퀴어'의 세 커플은 결혼이라는 특별한 동기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 이들은 결혼을 준비하거나 심지어 수영장을 이용해야 할 때도 커밍아웃을 반복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커밍아웃의 개념은 정체성을 숨기라는 외압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에 가깝다. 드라마와 영화로만 이를 봐온 탓이다. '메리퀴어'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들의 용기는 반발이라기보단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위한 고투에 가깝다.


방송 채널이 아닌 OTT 플랫폼 임에도 불구하고 '메리퀴어'는 방송을 앞두고 반대 여론에 부딪히는 일이 여지없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회적 비판과 위험을 무릅쓰고 커밍아웃을 감행한 동기에 대해 출연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의 전환점, 단순히 사실을 말하는 것, 무거운 짐, 진정한 내가 될 수 있게 해주는 관문, 독과 약이라고. 여러 시선을 쏟아냈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대답을 내놓는다. "내가 원하는 대답을 상대방한테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 더 나다워질 수 있는 행위"라고 말이다. 겸허한 어투로 자신들의 처지를 보여주는 모습에서 예상치 못한 가슴의 저릿함을 느꼈다.


'메리퀴어'에 대해 아직도 많은 커뮤니티에서 "고칠 수 있는 병"이라고 말하는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아이들이 보고 따라할까봐 걱정"이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메리퀴어'는 모방심리를 자극하지 않는다. 이들의 정체성이 고귀하거나 특별하게 여겨지게끔 미화된 장면은 없다. 차별 받는 일상을 보여주며 이들의 불편을 더 부각한다. 오히려 영화 '아가씨'와 같은 작품들이 미화된 연출로 동성애에 대한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판타지를 거둬낸 성소수자의 현실적인 삶은 그들의 우려처럼 따라하고 싶은 그것이 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함에 대한 범주에 조금의 이해를 더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란을 누구보다도 예상했을, 이젠 주변인이 아닌 세상으로부터 차별 받게 된 여섯 명의 용기는, 누군가에겐 은밀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마땅히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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