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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명나라만 받든 '외고집' 조선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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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07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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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

서울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에 서 있는 신도비
서울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에 서 있는 신도비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역을 잇는 큰 길이 새문안로이다. 새문안로에서 서울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10여 걸음 가면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린 큰 신도비가 있다.

비석은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으로 시작한다. 이 글귀에 대한 해석은 크게 세 가지다. 그 하나는 '밝음(明)이 있는 조선국'이란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거의 설득력이 없다. 우리 먼 선조들은 '유당(有唐)신라', '유송(有宋)고려'라는 비문을 남겨왔고, '유명조선'도 그 연장선상이기 때문에 그렇다.


다른 하나는 유(有)를 '크다'의 의미로 보고 대국인 명이 있던 시대의 조선국이라고 새기는 것이다. 명을 올리기는 했으나, 명과 조선을 대등한 개념으로 여긴다.

또 다른 하나는 '명나라에 있는 조선', 즉 명의 속국 조선으로 해석한다. 이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이때의 속국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체 연호 대신 당, 송, 명의 연호를 썼던 것처럼, 당 등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인정하는 독립 국가라는 의미가 강하다. '유명조선국' 다음 구절은 신도비의 주인공을 드러낸다. 은신군(恩信君)으로, 사도세자의 아들이고 정조의 이복동생이다. 1771년에 17세 나이로 숨졌다.

명나라는 1644년에 망했다. 마지막 황제가 자금성 옆 산에 올라 목매 자결했다. 1771년은 청나라 건륭제 때다. 명이 망한 지 무려 130여 년이 지났다.


이 무렵 조선의 한편에서는 실학이 일어나고 있었다. 실학자들은 청에서 배울 것은 배우자고 했다. 외국과 교역을 늘리고 상공업을 진흥하고 수레를 많이 쓰자는 목소리를 과감히 냈다. 그러나 왕실과 노론 집권층은 비문의 첫머리로 '유명조선'을 계속 고집했다. 은신군 비문도 이런 많은 실례 중 하나다. 정제두 , 박세당 등 소론 계열에서는 '유명'을 빼고 조선국으로 시작하는 비문을 남기기도 했으나, 송시열을 계승한 힘 있는 이들은 이들을 '사문난적'이라고 몰았다.

조선과 청은 악연으로 시작했다. 정묘와 병자호란이다. 명과도 시작은 마찬가지다. 고려말 개경을 함락시키고 한반도를 분탕질한 홍건적이 명의 뿌리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적을 친구로 만들어야 하고, 친구가 적이 될지 모르니 경계하고 힘 기르라고 역사는 가르친다.

조선의 집권층은 세상의 변화를 철저히 외면했다. 수백 년전 망한 명나라를 계속 찾았다. 그것이 노론, 그들 정파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도탄에 빠진 민생을 살릴 제대로 된 시도조차 없었다.

비오는 5일 박물관 앞 차가운 비석 앞에 섰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한국은 '한국'으로 족하다. '유중', '유미', '반일'이 한국 앞에 올 이유가 없다. '유명'을 앞세우다 나라 망친 조상의 잘못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비석이 주는 교훈이 아닐까 싶다.

사족을 붙인다. 비석 옆에 작은 설명문이 있다. 은신군 손자가 흥선대원군이라고 했다. 그런데 손자 앞에 '계보상'이라는 단어를 썼다. 흥선군 아버지 남연군은 인조의 아들 인평대군의 6세손이다.

왕조의 말년은 손이 귀하다. 고려 조선도, 명 청도 그랬다. 요절한 정조 동생의 양자를 찾다 보니 6대조까지 올라가야 했다. 정조의 혈족은 헌종으로 끊겼다. 결국 핏줄상으로는 영·정조와 아주 먼 일가가 권력을 잡게 됐다. 그들은 열린 나라로 가야 할 때 쇄국했고, 백성과 함께 결단해야 할 때 제 한 몸 챙기기에 급급했다. 대원군과 고종이 그들이다.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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