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3000선도 넘었다…日 증시 강세장 부른 '끈적한 인플레이션'

/로이터=뉴스1

인플레이션이 일본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속적인 물가 상승에 발목 잡힌 외국 증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배경에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있다. 일본은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에 시달려왔다. 인플레이션이 일본 경제의 성장 궤도 복귀 신호로 해석되는 이유다.
인플레=경기 회복…올해만 28% 폭등한 日 증시블룸버그통신은 13일 '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이 일본 증시를 강세장으로 이끈 핵심 요인이라고 짚었다. 많은 투자자가 물가 상승을 수십 년간 저성장 늪에 빠져있던 세계 3위 경제 대국의 재부상을 알리는 가장 구체적 증거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일본 증시는 매서운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도쿄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28% 넘게 폭등했다. 지수는 이날도 전 거래일 대비 1.8% 뛰면서 3만3000선을 넘겼다. 33년 만에 최고치를 다시 한번 경신한 것이다.

/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

미국 자산운용사 인베스코의 아시아태평양 시장 전략가인 데이비드 차오는 "우리는 오랫동안 이 변곡점을 기다려왔고, 그간 몇 번의 실패를 겪었다"며 "이번에는 인플레이션과 성장의 역학 관계가 다르고 더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물가는 전례 없는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 1월에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4.3% 상승하면서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상승이 물가 상승을 주도했지만 경제학자들은 수입 비용 부담이 감소하더라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 물가 상승 압력이 그만큼 견고하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일본 기업들이 인플레이션 속에서 제품 가격을 올려 이윤을 내길 기대하고 있다. 가격 인상이 기업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신호는 이미 나왔다. 일본제철은 재료비 상승 부담을 고객들에게 전가한 후 기록적인 매출과 이익을 보고했다. 외식 체인점인 교자노오쇼도 가격을 인상했지만 지난달 호실적을 발표했다.


이는 일본 소비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격 인상을 수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블룸버그는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높은 수용도가 기업 지배구조 개혁, 워런 버핏의 투자와 함께 도쿄증시를 33년 만에 최고치로 끌어올렸다고 본다"고 전했다.
30년 만에 3%대 급여 인상… "日 증시 더 오른다"일본 증시가 회복하는 경기를 반영하고 있지만, 강세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통화긴축 행렬에도 꿈쩍 않고 초저금리를 지속해온 일본 중앙은행(일본은행)이 조만간 통화정책 전환에 나서 증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이 오히려 증시를 지탱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스위스 기반 LT펀드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앵거스 맥키넌은 "일본은행 금리 인상은 일본 경제가 '정상화'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임금 인상도 일본 경제엔 호재다. 일본의 임금은 지난 30년간 정체된 상태를 유지해 왔는데, 올해 들어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 최대 노조인 렌고가 춘투(봄철 임금협상) 상황을 1차 집계한 결과 임금 인상률은 평균 3.91%로 집계됐다. 3%대 후반 수준을 기록한 건 1993년 이후 처음이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경우 일본 내 직원 약 8400명의 연봉을 최대 40% 인상했다. 이와 관련 아커스리서치의 피터 태스커 애널리스트는 "일본이 마침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아직 일본 증시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본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인플레이션 체제가 정착되고 기업들이 두 자릿수 자기자본이익률(ROE)를 달성한다면 닛케이지수가 3만3500선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은 "일본 증시가 구조적인 변화와 개혁을 통해 꾸준한 진전을 이뤄 외국인 장기 투자자들의 신뢰가 강화할 경우 대규모 자금이 추가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