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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갇힌 사자, 20분 흙 밟아보다 죽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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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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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 목장 철창서 처음 나온 암사자 '사순이'의 죽음…야생동물의 '다잉메시지'는 "우리는 그리 키우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사람·동물 계속 죽어나가도 파악조차 못하고 있고, 보호할 시설도 없어

8년을 갇혀 있다가, 4시간 반의 자유를 만끽한 뒤 사살된 대전 동물원 퓨마 호롱이의 살아 있을 당시 모습./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경북 고령 농장에 20년간 갇혀 있었던 사자 '사순이'의 살아 있을 당시 모습./사진=노스피크 사용자 모임 카페장 제라드님
작고 동그란 귀,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 천진난만한 울음. 아기 사자가 그리 태어난 건 2002년이었다. 이름이 지어졌다. 사자이고 암컷이라서 '사순이'라 불렀다.

몸길이가 1m 55㎝, 꼬리 길이만 80㎝, 어깨만 95㎝. 몸통이 짧고 다리가 길며 배가 달라붙은 사자의 모습.


그건, 야생에서 잘 달리라고 그리 만들어진 몸이었다. 자연에서 살았다면 그랬을 거였다. 포효 소리만 8㎞씩 쩌렁쩌렁 울리는 위엄. 통상 달리는 속도가 시속 50㎞, 빠르면 시속 80㎞.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으러 24㎞씩 가기도 하는 야생 동물.

그런 사자, 사순이는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갇혔다. 대한민국은 사자를 키워도 좋은 공간 기준을 이리 잡았다. 넓이는 14㎡. 그러니까 가로와 세로가 14m 안팎이면 키워도 좋다고. 또 높이는 2.5m면 합법이라고.

사순이는 거기에 갇혀 살았다. 때가 되면 먹이를 주었다. 답답하면 걸어갔다. 몇 걸음만에 금세 철창에 막혔다. 그럼 반대편으로 또 걸었다. 또 몇 걸음도 안 돼 또 철창에 부딪혔다. 더 나아갈 곳 같은 건 없었다. 같은 공간만 빙빙 돌았다.


행동 반경이 무려 40~50㎢에 달하는 사자는, 고작 14m도 못 넘어가는 철창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런 사물도 없는 오로지 콘크리트 바닥만 있는 공간. 거기서 대체 뭘 할 수나 있었을까. 그러니 이런 이상 행동을 보였다. 그걸 본 전문가 말은 이랬다.
밥을 주는 통로에서 앞발을 이리 긁는 행동을 반복했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수의사는 "전형적인 정형행동"이라고 했다./사진=노스피크 사용자 모임 카페장 제라드님
밥을 주는 통로에서 앞발을 이리 긁는 행동을 반복했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수의사는 "전형적인 정형행동"이라고 했다./사진=노스피크 사용자 모임 카페장 제라드님
"철제 배식구를 앞발로 반복해서 긁는 건 전형적인 정형행동(스트레스로 인해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수의사)

눈을 뜬다. 철창 안이다. 밥이 나온다. 철창에서 먹는다. 배변을 한다. 철창에서. 닿아본 적 없는 바깥을 본다. 나갈 수 없다. 포기한다. 다시 밥이 나온다. 밥을 먹는다. 배설한다. 다시 잠에 든다. 눈을 뜬다. 철창 안이다. 또 같은 곳이다.

매일 지겹도록 똑같은 삶. 그리 1년, 2년, 3년, 4년, 5년, 6년, 7년, 8년이 흘렀다. 또 9년, 10년, 11년, 12년, 13년, 14년, 15년이 지나갔다. 여기에 16년, 17년, 18년, 19년을 더 참아내었다.

그리고 사순이가 20살이 되던 어느 날, 그를 가둔 철창 문이 처음으로 열렸다. 청소하려던 관리인의 실수였다.



20년만에 처음 누려본, 20분의 '자유'


평생을 목장, 그것도 갇힌 철창 안에서 살았던 사자. 20년만에 바깥에 나왔는데, 많이 와봐야 20m 떨어진 숲속이었다. 이리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사진=뉴스1
평생을 목장, 그것도 갇힌 철창 안에서 살았던 사자. 20년만에 바깥에 나왔는데, 많이 와봐야 20m 떨어진 숲속이었다. 이리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사진=뉴스1
"동물이 감금 시설에서 나갈 수 있게 됐을 때 일단 나간다. 그게 자연스럽다. 자유를 찾아 떠난 게 아니다. 문이 열려 있고 이동할 수 있는 틈이 있어서 나간 거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일단 나가본다. 잠깐 탐험하러 나갈 가능성이 높다."(최태규 수의사)

사순이 나이가 이미 스무 살. 좁은 사육장서 속절없이 너무 많이 늙었다. 자연에서의 수명은 넘어갔다. 관절도 온전치 않았다. 행동 범위가 극히 좁아져 있었다.

14일 오전 7시 24분. 열려 있었기에 나갔다. 20년간 바라보고 상상만하던 세계로 걸어갔다. 거기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또 걸어갔다.

사자가 사라졌다고, 인간 세상에선 난리가 났다. 긴급재난문자가 울려댔다. 인근 캠핑장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소리치고 뛰었다. 사자니까 두려울만했다.

어쩌면 멀리 갔을법도 한데, 사순이는 고작 목장에서 20m 떨어진 곳에 고요히 앉았다.
경북 고령 농장 인근 숲속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사살된 사순이./사진=뉴스1
경북 고령 농장 인근 숲속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사살된 사순이./사진=뉴스1
"거기서 20년을 살았으니까 앉아 있었던 거다. 익숙한 곳이니까. 그 장소를 벗어났을 때 어떻게 할진 경험한 적이 없었을테니까."(최태규 수의사)

20분 동안 숲속에, 처음 밟아보는 살진 흙바닥 위에 고요하게. 처음으로 짐짓 야생동물답게 얌전히 앉아 있었다.

"사순이가 그저 야생동물답게, 흙바닥 위 나무 그늘 아래에 몸을 뉘여보고 싶었을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동물권행동 카라)

1시간 10분이 그리 흘렀을 무렵, 사람들이 무더기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긴장하고 누군가는 엽총을 들었다. 사순이는 그들을 그저 바라봤다. 철창에 갇혀 있을 때도 녀석을 보러 오고 사진 찍는 이들이 많았기에.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건 많이 봤을 거다. 누가 다가와도 사람이 다가왔나보다, 그정도였을 거다."(최태규 수의사)
20년 갇혀 있었고 고작 1시간 10분 바깥에 나와보았던 사순이가 죽었다./사진=뉴스1
20년 갇혀 있었고 고작 1시간 10분 바깥에 나와보았던 사순이가 죽었다./사진=뉴스1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가 사순이에게 총을 겨눴다. 그대로 쏴버렸다. 야생동물답게 처음 몸을 뉘여봤던 존재는, 그대로 픽 쓰러져 죽었다. 흙바닥에 피가 번졌다.



'마취총' 쏴서 다시 가뒀다고, 사순이가 행복했을까


사순이가 살아 있을 때의 모습./사진=노스피크 사용자 모임 카페장 제라드님
사순이가 살아 있을 때의 모습./사진=노스피크 사용자 모임 카페장 제라드님
굳이 죽였어야 했느냐고, 마취총을 쏴서 살릴 수 없었느냐고. 사순이를 향한 안타까운 여론이 일었다.

"동물이 사살됐단 거에 초점이 맞춰지면 안 된다. 다시 넣어 키워도 좋다는 게 되니까. 그래봐야 그 안에서 1~2년 더 살다 죽었을 거다."(최태규 수의사)

"왜 사살했느냐, 그건 지엽적인 부분이다. 물론 안전하게 사육장으로 유도한 뒤 그나마 더 나은 시설로 이송해 보호하면 제일 좋았겠지만. 그럴 상황도 아녔고 동물원이어서 매뉴얼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소장)
사순이가 지냈던 사육장 내부의 모습. 같은 공간을 얼마나 많이, 오래 돌아다녔을지./사진=뉴스1
사순이가 지냈던 사육장 내부의 모습. 같은 공간을 얼마나 많이, 오래 돌아다녔을지./사진=뉴스1
그래서 잡았다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을 거다. 14㎡짜리 철창 안 말이다. 거기서 21살, 22살이 됐을 거다. 옴짝달싹 못하는 그 좁은 공간 안에서. 그럼에도 살 수 있었다며 더 행복했을까. 그러니 본질은 이런 거다.

"아예 키우지 말았어야 한다."(최태규 수의사)

원칙적으로 야생동물을 못 키우게 해야한단 거다. 그러나 야생동물산업 이윤을 지켜주느라 동물 복지를 포기하고 있단 지적이 많았다. 사순이 같은 경우도, 사육시설 설치 기준만 충족하면 합법이다.
사순이가 지냈던 사육장의 전경./사진=뉴스1
사순이가 지냈던 사육장의 전경./사진=뉴스1
"제도가 너무 낮은 수준에서 합법으로 만들어뒀다. 예컨대, 영국은 돌고래가 아쿠아리움에서 아예 없어졌다. '키울 수 없다'가 아니라, 기준을 엄청나게 높여놓았다. 깊이 수십미터, 넓이 수십미터 해버리니 수지가 안 맞아 돌고래를 못 키우는 거다. 그에 비해 한국은 깊이 4미터, 넓이 7미터로 둥둥 떠서 겨우 움직이는 정도 기준이다."(최태규 수의사)



참담한 야생동물 관리체계 수준…"기준 낮은 제도도, 소극적인 사람도 문제"


열악한 경남 김해 부경동물원에서 살던, 갈비뼈만 남아 있던 숫사자의 모습. '바람이'란 이름을 얻었고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져 살아가고 있다./사진=뉴스1
열악한 경남 김해 부경동물원에서 살던, 갈비뼈만 남아 있던 숫사자의 모습. '바람이'란 이름을 얻었고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져 살아가고 있다./사진=뉴스1
느슨한 관련 법 안에서, 무분별하게 야생동물이 수입되고 전시돼 왔다. 동물원에서,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등록된 곳에서, 등록되지 않은 곳에서. 제도도 문제고, 그걸 관리하는 사람문제란다.

"사순이를 키우던 고령 목장도 환경청 공무원이 점검하던 곳이라 했다. 몇 번 했는진 알 수 없지만. 그런데 사육곰 점검도 환경청에서 하는 걸 보면, 안전한지 아닌지, 잘 사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거다."(최태규 수의사)

"사순이는 환경청에 등록돼 있던 애인데, 환경부가 몰랐던 거다. 환경청이 굉장히 소극적이다. 점검 나와서 '시설 기준 면적 맞구나' 보고 돌아오는 정도만 했을 거다. 사순이 같은 애는 환경청이 알았으면, 환경부에 얘기해서 조치를 취하는 게 맞았다."(이형주 어웨어 소장)
3평짜리 사육곰 철창 안에서 하루를 보내봤던 기자. 하루종일 할 수 있는 거라곤 바깥을 바라보는 것밖엔 없었다. 별수 없이 같은 공간을 빙빙 걸어다니게 됐다. 비정상적인 공간에선, 그게 정상적인 행동이었다./사진=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수의사
3평짜리 사육곰 철창 안에서 하루를 보내봤던 기자. 하루종일 할 수 있는 거라곤 바깥을 바라보는 것밖엔 없었다. 별수 없이 같은 공간을 빙빙 걸어다니게 됐다. 비정상적인 공간에선, 그게 정상적인 행동이었다./사진=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수의사
비슷한 사고를 막으려면 야생동물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파악돼 있어야 한다. 예컨대, 사순이처럼 포유류 동물을 키우면서, 동물원이 아닌 곳이면서, 시설 등록이 된 데가 어딘지 알아야 관리할 수 있단 거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런 시설이 전국에 몇 개나 남아 있는지 파악하지도 못한단 거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 아니면 누구나 기를 수 있기 때문에, 수입되고 사육되는 야생동물이 어디서 어디로 옮겨지는지 정부는 알 수 없다. 전국에 산재한 야생동물 사육시설의 안전과 동물 복지 현황을 꼼꼼하게 조사하고 공개해야 한다."(곰보금자리프로젝트)



올해 12월 법 시행…세부 내용 잘 정하기 위해선 '관심' 필요


부천 실내동물원에서 같은 곳만 왔다갔다하는 호랑이./사진=남형도 기자
부천 실내동물원에서 같은 곳만 왔다갔다하는 호랑이./사진=남형도 기자
올해 12월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 야생생물법이 시행된다. 이에 따라 허가 받은 동물원, 수족관이 아닌 곳에선 야생동물을 전시할 수 없게 됐다. 세부적인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 작업이 굉장히 중요한데 관심이 적다. 예컨대 하위법령으로 야생동물 '백색목록'을 정하고 있다. 개인이 키울 수 있는 종을 정하고, 나머진 금지하는 목록이다.

"파충류 백색목록을 만들고 있는데, 매니아들이 많아 반발하고 있다. 그걸 눈치 보느라 넓게 잡으면 수백 종이 포함될 우려가 있다. 다른 나라는 10여종 외엔 키울 수 없게 해놨다."(최태규 수의사)

"다른 나라는 어떤 종만 못 기른다가 아니라, 야생동물은 원칙적으로 기르면 안 된다. 이 백색목록을 얼마나 촘촘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취지에 맞게, 야생동물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걸로 가야 의미가 있다."(이형주 소장)

또 동물원, 수족관도 허가 기준에 미달할 경우 운영할 수 없게 된다. 그럴 때, 기존에 있던 야생동물들이 어디로 갈지도 문제가 된다.

"보호 시설을 2개 짓고 있는데 부족하다. 그렇다고 시설을 끝도 없이 지을 순 없으니, 이미 있는 공영동물원이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방향성을 보호 활동으로 바꾸고, 이런 데는 정부가 지원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이형주 소장)
부천 실내동물원에서 같은 곳만 왔다갔다하는 사자. 이 역시 정형행동이다./사진=남형도 기자/사진=남형도 기자
부천 실내동물원에서 같은 곳만 왔다갔다하는 사자. 이 역시 정형행동이다./사진=남형도 기자/사진=남형도 기자
"한국의 장점이 동물원이 대부분 공영이란 거다. 기준 미달 동물원에서 흘러나오거나 압수되는 동물을, 받아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역할인 거다. 동물원 안에서 번식하던 것만 그쳐도, 자연적으로 계속 죽기 때문에 빈 공간이 생길 거다. 환경부가 직접 운영한다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거다."(최태규 수의사)

2018년, 퓨마 호롱이도 대전 동물원을 탈출했었다. 사육사 관리 부실이었다. 8년 갇혀 있던 호롱이는 우리 밖으로 처음 나왔다. 그래봐야 동물원 내에서 배회한 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날 밤 9시 44분 사살됐다. 고작 4시간 34분의 자유.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슬퍼했다. 왜 죽였느냐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그리고는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졌다.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8년을 갇혀 있다가, 4시간 반의 자유를 만끽한 뒤 사살된 대전 동물원 퓨마 호롱이의 살아 있을 당시 모습./사진=온라인 커뮤니티
8년을 갇혀 있다가, 4시간 반의 자유를 만끽한 뒤 사살된 대전 동물원 퓨마 호롱이의 살아 있을 당시 모습./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호롱이가, 사순이가 죽어가며 바란 건 사람들이 빨리 화내고 까먹는 거였을까. 전국에 이런 야생동물은 여전히 얼마나 많을까. 갇혀 지낸 하루만 합쳐도 몇 년일까.

거듭 말하지만, 올해 12월 개정된 야생동물 관련법이 시행된다.

그리고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도 정할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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