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지원 예산 '삭감' 소식에 제약·바이오, "돈 없는데 이마저도…"

정부의 '제약 산업 예산 삭감' 기조에 업계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민간 시장을 통한 자금 모집이 얼어붙은 혹한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임상시험 지원마저 끊기면 타격이 클 게 불 보듯 뻔해서다. 제약·바이오기업의 임상 중단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상황에서 업계는 "임상시험 지원 상담과 전문가 육성은 끊겨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반면 정부 예산 지원을 두고 논란이 오가는 가운데, 액수보다는 "국가의 투자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해 사용할지가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17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임상시험을 진행하다가 중단한 바이오기업이 최근까지도 속출했다. 코스닥 상장폐지 위기를 겪는 모기업은 9개 연구 과제 가운데 6개를 중단했다. 국내 1세대 바이오벤처 제넥신 (7,680원 ▼10 -0.13%)은 최근 단장 증후군 치료제 'GX-G8'의 1상 임상시험을 스스로 중단했다. '선택과 집중'을 위한 파이프라인(신약 개발 프로젝트) 조정이다. 경영 효율화를 위해 연구 과제를 줄이겠단 것이다.


신약 인허가 컨설팅과 CRO(임상시험수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메디헬프라인 비상장 (5,000원 0.00%)의 박옥남 대표는 "지금껏 400억원을 투자받았다는 우리 고객도 이제 임상시험을 다 중단하고, 폐업까지 상담하고 있다"며 최근 업황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예산을 줄이려는 정부의 기조는 업계에서 우려를 사기에 충분하다. 대전 소재 바이오기업 관계자 A씨는 "최근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돼 각종 연구기관이 모인 대전이 시끌시끌한데, 대전은 바이오 벤처가 많이 모인 지역 중 하나"라며 "요즘 이런 분위기에서 정부 예산이 줄어들 수 있다는 소식에 걱정 안 된다면 거짓말"이라고 귀띔했다.

이번에 삭감될 수 있는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예산(38억6000만원)의 경우 대형 바이오기업 입장에선 삭감 규모가 그리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규모 바이오기업은 정부 도움이 절실해, 작은 지원이라도 있거나 없으면 바로 체감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특히 환자 모집과 관련한 '한국임상시험 참여포털' 등의 예산 공백은 크게 느껴질 수 있다고 한다.


임상시험 진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환자 모집'이다. 임상시험 준비를 마쳤어도 환자를 모으지 못하면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코로나19(COVID-19) 백신·치료제 임상시험의 경우 코로나19 범유행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환자를 모집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져 중단한 곳이 적잖다는 후문이다.
임상시험 상담센터 및 전문가 육성 예산이 줄어든 부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 B씨는 "영세한 바이오기업 중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요구하는 임상시험 지원 기준을 제대로 이해하는 곳이 거의 없고, 그걸 심사하는 위원들 상당수는 연구 과제를 평가하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그걸 보완할 수 있는 게 임상시험 전문기관과 전문가 인력"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제약 산업 육성 지원 예산을 줄이되, 혁신을 앞세운 바이오헬스 산업에서 예산 주머니를 더 열겠다는 입장이다. 가령, 백신 원부자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예산은 올해 79억원에서 내년도 129억원으로 늘어날 계획이다. 이 밖에도 국가 보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형 아르파-H'(ARPA-H) 설립엔 예산 495억원이 새롭게 책정됐다. 아르파-H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NIH(국립보건원) 산하에 만든 바이오헬스 연구 기관이다. 이를 한국에 맞게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예산 지원 규모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 C씨는 "정부 투자액이 얼마냐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디에 쏟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시스템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