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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과 늑대'들의 먹잇감이 된 한국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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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1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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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 캐피탈 홈페이지 초기화 캡처
"우리는 돈을 챙겨 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간 멍청이들이 우글거리는 회사에서 지낸 일은 최고로 훌륭한 경험이었고, 여러분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1988년 말 미국 RJR 나비스코의 LBO(차입매수) 거래 과정을 파헤친 책 '문 앞의 야만인들(Barbarians at the Gate: 브라이언 버로, 존 헬리어 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무자본으로 기업을 인수한 뒤 기업 내 알짜배기 자산을 팔고, 껍데기만 남기고 막대한 이익을 챙긴 채 떠나는 일부 약탈적 사모펀드 경영자들에 속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한 말이다. 이 책에선 약탈적 사모펀드 운영자들을 우리들의 집 문 앞에 서 있는 바바리안(야만인)들로 표현했다.

그 바바리안들이 진화해 행동주의 펀드라는 이름을 달고, 전세계에서 '기업가치 제고'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걸고 활동하고 있다. 특히 국가경제 규모가 어느 정도는 받혀주는 한국과 일본,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 몰려다니며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2015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계 벌처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발판삼아 독립한 일부 행동주의 펀드들이 최근 다시 국내에서 발호하고 있다. 이미 한국 기업의 고기맛을 본 늑대들이 집단사냥(Wolf Pack)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행동주의 펀드(Activist Fund)'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그 본질은 '문 앞의 바바리안들이거나 늑대들'이다.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기업의 구조개선에 나선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이는 자신들의 약탈을 정당화하는 수사일 뿐이다.

제임스 스미스 팰리서 캐피탈 최고투자책임자(CIO)
제임스 스미스 팰리서 캐피탈 최고투자책임자(CIO)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그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이 지난해 말쯤이다. 올 3월 삼성물산 주주총회에 앞선 여론몰이를 위해 국내에 홍보대행사를 정하고 여러 언론매체와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섰다. 그 선봉장 역할을 한 인물이 제임스 스미스 팰리서 캐피탈 최고투자책임자(CIO)다.

스미스 CIO는 2015년 삼성물산을 공격했던 엘리엇매니지먼트에서 한국투자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는 2018년 현대자동차의 지배구조 개선을 반대하며 공격하기도 했다. 한국 기업을 들쑤셔 이득을 보는 데 맛을 들인 모양이다.

구독자 200만이 넘는 경제 유튜브와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삼성물산의 내재가치가 53조원 정도로 당시 시장가치(19조원)와 33조원 가량이 차이난다며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주장했다.

그의 등장 이후 거의 동일한 목소리로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나 시티오브런던 등 다른 '늑대'들도 삼성물산 주변에 몰려들었다. 한번 몰려갔던 집앞에 다시 모인 것이다. 9년전 엘리엇 매니지먼트에서 이익을 맛본 경험을 십분발휘하고 있다.

화이트박스는 시티오브런던, 안다자산운용와 손잡고 삼성물산 지분 1.46% 확보한 후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보통주 배당을 기존계획보다 80% 늘리라는 등 1조 2000억원이 넘는 자본지출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을 넘어서는 무리한 요구다.

팰리서 캐피탈과 마찬가지로 화이트박스도 엘리엇 출신인 사이먼 왁슬리가 주도하고 있다. 엘리엇이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상황에서 국채를 대량 매입한 뒤 채무조정을 거부하고 원리금 전액상환 소송으로 큰 이득을 올렸듯 엘리엇 출신들은 남의 불행을 자신들의 수익창출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는 '바바리안'들이다.

이들은 피 묻은 돈도 꺼리지 않는다. 화이트박스의 경우 2012년 미국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성인 6명과 어린이 20명을 살상하는데 사용된 AR-15형 반자동 소총 제조사 레밍턴에 은행들이 대출연장을 거부하자 이들을 대신해 1억 9300만 달러(한화 약 2200억원)의 대출금을 재융자해주고 수익을 올려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휩싸이기도 했다.

수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개의치 않는 벌처펀드의 전형이다. 일부 행동주의 펀드들은 삼성물산 이외에 금호석유화학, KT&G, 현대엘리베이터 등에도 주주제안이라는 이름으로 경영개선과 자본재분배 등을 요구하고 있다.

돈 앞에 도덕은 없다. 이들은 우리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기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려하자 때를 만났다는 듯 여론전을 펼치며 자신들의 이권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한국 기업의 '피맛'을 본 늑대들은 소액주주들을 지렛대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려 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잘못된 기업경영에 경종을 울리는 워치독의 역할을 하는 것을 누가 마다하겠나. 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 무리한 자금유출을 강요하는 늑대들이 발호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도 좋고, 기업밸류업도 좋지만 그 이면에서 준동하는 늑대의 발호를 막지 못하면 자칫 우리 기업들이 살을 다 뜯기고 앙상한 뼈만 남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우리가 행동주의의 탈을 쓴 늑대를 경계해야 이유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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