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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탕' 16발 총성 울린 그날...어느 흑인 인권운동가의 죽음[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 민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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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2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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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지난 2021년 NYPD 경찰이었던 레이먼드 우드의 조카 레지 우드는 말콤 엑스가 사망한 오듀본 볼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레이먼드 우드의 편지를 공개했다./사진=뉴스1
1965년 2월21일 미국 뉴욕 할렘가에 위치한 오듀본 볼룸에서 말콤 엑스(39)는 3명의 괴한에 의해 총상을 입고 숨을 거뒀다. 사진은 말콤이 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사진=위키피디아
"탕 탕 탕"


1965년 2월21일 미국 뉴욕 할렘가에 위치한 오듀본 볼룸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연단에서 연설을 준비하고 있던 한 흑인 남성은 무려 16발의 총알을 맞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곧바로 남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 남성의 이름은 흑인 민권운동가인 말콤 엑스(Malcolm X). 당시 39세 나이였다.


리틀에서 X로...말콤 엑스의 굴곡진 인생


말콤 리틀은 1925년 5월19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침례교 목사 일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KKK(백인 우월주의 집단)에 의해 사망하고 어머니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험난한 유년 시절을 지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말콤은 미국 북동부를 전전하며 구두닦이, 샌드위치 판매원 등 막일을 해 생계를 유지하다 뉴욕 할렘가에 정착한다. 할렘가에 들어온 말콤은 마약 밀매, 강도, 도박 등 위법 행위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1946년 2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있던 말콤에게 교도소는 전환점이 됐다. 그는 교도소에서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접하게 된다.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미국의 이슬람 단체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야 한다'는 이론을 전파했다.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교리에 심취한 말콤은 1952년 가석방 후 자신의 성을 'X'로 바꿨다. 흑인에게 옛 백인들이 멋대로 붙여준 지금의 성을 지우고 흑인의 빼앗긴 이름을 상징한다는 취지였다.

2년 뒤인 1954년 그는 뉴욕 할렘 성원의 지도자가 됐다. 그로부터 약 11년간 그는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vs '나는 오직 미국의 악몽을 꾼다'


왼쪽부터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엑스./사진=말콤 엑스 재단 'X'
왼쪽부터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엑스./사진=말콤 엑스 재단 'X'

마틴 루터 킹과 말콤은 흑인들을 위한 인권 운동가였다는 점에선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다. 마틴은 '백인과의 공존'을 꿈꿨고 말콤은 '백인과의 분리' '흑인의 자립'을 외쳤다.

1963년 흑인과 백인이 함께 행진한 워싱턴 행진에 대해서도 말콤은 "흑인이 백인에게 굴복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행진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외쳤던 유명한 문구,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에 대해 자신의 연설에선 '그 어떤 아메리칸드림도 보지 못한다. 나는 오직 미국의 악몽을 꾼다'라고 되받아치기도 했다.

또 말콤은 비폭력을 외쳤던 마틴과 달리 급진적 흑인 민족주의 사상가로서 필요하다면 흑인들도 폭력에 호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그는 196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비무장 흑인 7명을 경찰이 총으로 쏜 사건을 접한 후 더욱 분개했다. 말콤은 이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통해 백인 경찰들을 '미치광이' 'KKK'로 비유하며 흑인들도 물리적 공격에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힘을 갖춰야 함을 시사했다.


과거의 동지들이 총을 겨누다...말콤의 허무한 죽음


말콤 엑스 사망 현장. 뒷 벽에는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다./사진=위키백과
말콤 엑스 사망 현장. 뒷 벽에는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다./사진=위키백과

궁극적 원인은 말콤의 네이션 오브 이슬람 '탈퇴'였다.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이 암살되자 당시 네이션 오브 이슬람 지도자였던 일라이저 무하마드 또한 국정 안정을 위해 행동을 조심했다.

반면 말콤은 과감했다. 그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에 '자업자득'이라 발언했고 이는 엄청난 파문을 불러와 이듬해인 1964년 단체를 나가게 된다. 말콤은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성지순례를 다녀오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막연하게 흑인의 분리 독립만을 외치던 이념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다.

그는 미국에 돌아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기구들을 설립하며 흑인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지만 이런 그의 행동도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겐 눈엣가시로 비쳤다.

결국 말콤 엑스는 1965년 뉴욕 오듀본 볼룸에서 네이션 오브 이슬람 회원 3명의 총격에 숨을 거뒀다.

암살범 토마스 헤이건, 무하마드 압둘 아지즈 그리고 카릴 이슬람은 모두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아지즈와 이슬람은 각각 1985년과 1987년에 가석방으로 풀려난 가운데 헤이건은 지난 2010년이 돼서야 자유의 몸이 됐다.


56년 만에 밝혀진 비밀..."그의 죽음엔 또 다른 배후가 있었다"


지난 2021년 NYPD 경찰이었던 레이먼드 우드의 조카 레지 우드는 말콤 엑스가 사망한 오듀본 볼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레이먼드 우드의 편지를 공개했다./사진=뉴스1
지난 2021년 NYPD 경찰이었던 레이먼드 우드의 조카 레지 우드는 말콤 엑스가 사망한 오듀본 볼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레이먼드 우드의 편지를 공개했다./사진=뉴스1

그가 죽자 곳곳에서 음모론이 제기됐다. 암살범들의 배후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지난 2021년 약 56년 만에 음모론이 일부 맞았다는 증거가 세상에 공개됐다. 미연방수사국(FBI)과 뉴욕 경찰(NYPD)과 죽음을 사전에 기획한 것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전직 NYPD였던 레이먼드 우드는 생전 작성한 편지에 "NYPD 간부들로부터 말콤 엑스의 경호원 2명을 유인해 범행하도록 압력을 받았고 결국 이들은 사건 발생 며칠 전 체포됐다"며 "이 때문에 말콤의 사망 당일 출입구를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우드에 따르면 말콤의 경호원 2명은 그의 사망 며칠 전 자유의 여신상과 워싱턴 기념탑을 폭파할 목적으로 다이너마이트를 반입했단 혐의로 체포됐다. 즉, 미리 경호원 2명을 함정에 빠뜨려 사건 당일 말콤의 경호 인력을 줄였단 것이다.

말콤의 유가족들은 편지 내용을 두고 기자회견을 벌였으며 이에 맨해튼 지방검찰청은 이 사건 검토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NYPD도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나 FBI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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