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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지하 폭발음에 90층 치솟은 연기…미국 테러 악몽의 시작[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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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26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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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AP=뉴시스
1993년 세계무역센터 지하 주차장 2층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이후 모습./사진=위키피디아
1993년 2월26일 오후12시18분. 지금은 없어진 뉴욕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지하 주차장 2층에서 난데없는 폭발음이 들렸다. 이 사고로 6명이 숨졌고 경찰관과 소방관, 그리고 민간인을 비롯한 1042명이 부상을 당했다. 화재 연기는 90층 이상까지 올라갔고 그을음은 110층까지 번졌다.

사고 초기 미연방수사국(FBI)은 지하 5층 변압기에서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폭발물 흔적이 발견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이는 WTC를 무너뜨릴 작정으로 폭탄을 터뜨린, 최초로 미국을 상대로 한 중동발 테러였기 때문이다.




'사상자 25만명쯤 나올 것'…북쪽 빌딩 터뜨려 남쪽 빌딩 쪽으로 무너뜨릴 계획


람지 유세프 현상수배 사진 모습./사진=미 연방수사국(FBI)
람지 유세프 현상수배 사진 모습./사진=미 연방수사국(FBI)

9.11 테러 8년 전에 발생한 1993년 2월26일 WTC 폭탄 테러는 6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됐다. 반미·반이스라엘 성향을 띄는 알카에다 조직원 람지 유세프와 동료 테러범들은 '트레이닝 캠프'에서 훈련을 받고 1992년 9월부터 순차적으로 미국 뉴저지주로 모인다. 이 과정에서 람지 유세프는 가짜 이라크 국적 여권을 가지고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목표는 WTC 북쪽 빌딩을 지탱하는 기둥을 폭탄으로 파괴해 남쪽 빌딩 방향으로 무너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람지 유세프는 이 테러로 사상자 약 25만 명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안 컨설턴트 다니엘 J. 힐은 "북쪽 빌딩은 네 개 큰 기둥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며 "폭탄으로 기둥을 파괴한다는 건, 마치 의자 다리를 발로 차서 무너뜨리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영국 웨일스 메트로폴리탄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트레이닝 캠프에서 폭탄 제조 기술을 익힌 것으로 알려진 유세프는 1993년 2월 중순쯤 테러에 쓰일 680㎏짜리 폭탄을 제작했다. 이후 폭탄을 실을 밴(Van) 한 대도 빌리는 등 테러를 위한 마지막 준비까지 끝냈다.

유세프는 테러 전날(25일) 뉴욕 신문사들에 편지를 보내 3가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WTC를 시작으로 미국을 공격하겠다며 협박했다. 그가 제시한 3가지 요구는 △미국은 이스라엘에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중단할 것 △미국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중단할 것 △미국은 앞으로 중동 지역 국가 내부 정치에 관여하지 말 것 등 이었다.



밴(Van)에 실려 있던 680㎏ 폭발물…지하 2층 주차장에서 터졌다


세계무역센터 북쪽 빌딩 지하 2층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사진=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갈무리
세계무역센터 북쪽 빌딩 지하 2층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사진=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갈무리

1993년 2월26일 오후쯤 람지 유세프와 동료 1명은 밴에 폭발물을 실은 채 WTC 북쪽 빌딩 지하 주차장 2층으로 들어갔다. 이후 폭탄에 불을 붙이고 자리를 뜬 지 12분 정도가 흐른 오후 12시18분쯤. 큰 폭발이 발생했다. 미국을 상대로 한 첫 번째 테러가 발생한 순간이었다.

이 사고로 6명이 숨지고 1042명이 부상을 입었다. 비상 발전기와 엘리베이터 등도 파손됐으며 주변에 있던 차량 400대도 모두 파괴됐다. 이 테러로 약 5억 달러 재산상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북쪽 건물 지하 토대를 폭발로 무너뜨려 남쪽 건물을 덮치게 하려던 계획은 실패했다. 당시 지하 2층엔 오가는 차량으로 북적이고 있어서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밴을 세웠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만약 중심부 쪽에 밴을 세우고 폭탄이 터졌다면, 그가 당초에 계획했던 대로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의장이었던 콜린 L. 파월은 이 사고를 두고 "일회성 테러인 줄 알았다"며 "그때 모든 경계를 강화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테러범 모두 검거했지만…8년 후 발생할 비극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AP=뉴시스
/AP=뉴시스

테러 발생 직후 람지 유세프는 파키스탄으로 출국했다. 하지만 테러에 사용된 밴을 빌린 모하메드 살라메는 보증금을 받지 못해 미국에 재입국했다가 1993년 3월4일 FBI에 붙잡혔다.

FBI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살라메는 미국에 남아 있던 테러범들이 있는 위치를 밝혔고 그 결과 미국 내 있던 테러범들을 모두 붙잡을 수 있었다.

미국을 떠나 도피했던 람지 유세프는 또 다른 테러를 계획하다가 1995년 7월 붙잡혀 재판에 넘겨져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로써 1993년 WTC 테러 가담자들은 모두 검거됐다.

1993년 2월26일 테러는 뉴욕 한복판도 언제나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줬다. '미국은 테러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에도 금이 갔다.

WTC는 보수 공사를 거친 뒤 1995년 재개장했다. 하지만 6년 뒤인 2001년, 또 다른 테러로 WTC는 무너져 내렸다. 911 테러를 계획하고 설계한 사람은 다름 아닌 람지 유세프의 외삼촌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였다.

911 테러 당시 뉴욕 시장이었던 루디 줄리아니는 "보안이 허술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며 "그때 (1993년 WTC 테러)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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