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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칼럼] 왜 K-반도체 위기론이 등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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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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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금년 초부터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시가총액 상위권에 팹리스(설계 전문), 파운드리(위탁생산) 등 비메모리 기업들이 대거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가전, PC, 스마트폰 등 IT 관련 전방 산업의 수요가 위축되면서 전형적인 시클리컬(cyclical)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주춤한 반면 인공지능, 전기차 등 신성장 산업의 핵심인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3월 18일 현재, 전 세계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순위는 엔비디아가 2925조 원으로 1위에, 대만의 전 세계 최대 파운드리 회사 TSMC가 946조 원으로 2위, 싱가포르와 미국에 공동 본사를 두고 있는 브로드컴이 763조 원으로 3위, 네덜란드 ASML이 493조 원으로 4위, 삼성전자가 432조 원으로 5위에 올라있다. 종합 반도체 기업(IDM)으로 메모리가 주력인 삼성전자는 2018년 1위에서 6년 만에 4계단이나 내려온 것이다. 근소한 차이로 미국 AMD가 6위에, 인텔이 7위, 메모리 반도체로 삼성과 하이닉스를 위협하고 있는 마이크론이 13위다. SK 하이닉스는 117조 원으로 18위다. 전반적으로 메모리 기업들이 비메모리에 비해 시가총액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참고로 엔비디아 한 회사가 우리나라 2683개 모든 상장사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크다.


생성형 AI의 급성장에 힘입어 2023년 반도체 회사들의 주가는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작년 한 해에만 엔비디아 236%, TSMC 40%, 브로드컴 97%, ASML 36%, 삼성전자 37%, AMD 128% 올랐다. 또한 금년에도 3월 18일까지 불과 두 달여 만에 엔비디아 80%, TSMC 32%, 브로드컴 24%, ASML 24%, AMD 30% 폭등했다. 그러나 선두그룹에서 유일하게 삼성전자만이 -10%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2022년 반도체 기업 매출 1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는 작년에 TSMC에 1위를 내주며 4위로 내려앉았다. 2위 인텔, 3위는 2022년 8위에서 5단계나 오른 엔비디아가 차지했다. 하이닉스도 재작년 5위에서 7위로 내려왔다. 반도체 기업의 매출은 일반적으로 메모리 전문 업체가 크고, 수익률은 비메모리 기업이 높지만 엔비디아나 TSMC의 폭풍 성장은 매출과 이익을 동시에 잡았다. 그러나 이렇게 역대급 반도체 폭등장이 펼쳐지고 있지만 지금 한국 반도체 기업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인 메모리 반도체는 IT 산업 전반에 데이터 저장을 위해 활용되는 범용 제품이다. 이 때문에 메모리 산업은 경기 상황에 따라 실적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2022년부터 경기 둔화 우려에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면서 매출, 이익은 물론, 주가도 자연스럽게 약세를 보였다. 반면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인 비메모리는 소비자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제품 생산을 조절할 수 있다. 데이터를 단순 저장하는 메모리와는 달리 비메모리 반도체는 연산처리 기능이 있다. 이 때문에 AI, 전기차 등 최근 혁신산업 섹터에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메모리에 비해 비메모리 분야의 수익성이 도저히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일례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맞춤형 칩을 공급하는 브로드컴의 영업이익률은 62%에 달한다.


작년 대만 1인당 GDP는 2004년 이후 다시 한국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반도체 파운드리 수요 급증으로 TSMC의 유례없는 호황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TSMC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향후 변수가 될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단기간에 TSMC의 위험도를 낮출 수 있는 대안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파운드리 공장을 완공했으며 금년 중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공장에 일본 정부는 4조 2000억 원의 보조금을 주기로 했고 2027년 말 가동 예정인 제2공장에도 6조5000억 원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금년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62%, 삼성전자는 10%로 전망했다.

과거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인텔도 올해 안에 2나노와 1.8나노 공정을 도입하고, 2027년 '꿈의 공정'으로 불리는 1.4나노 초미세 공정에서 칩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1위 업체인 TSMC와 2위인 삼성전자를 모두 앞지르겠다는 것으로 파운드리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인텔의 참전으로 파운드리 시장의 지각변동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주력인 메모리의 경기회복 부진에다 TSMC와의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인텔의 추격은 한국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인텔이 무서운 건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정부라는 든든한 우군 때문이다. 일단 100억 달러를 제공하고 추후 금액을 늘릴 거란 전망이다.

AI 등장으로 격변의 시기를 맞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기술 확보를 위한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다. 미국은 자국 기업에 대한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고, MS,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도 미국 반도체 회사를 우선하고 있다. 반도체 재건의 기치를 내건 일본은 외국기업에 12조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또한 일본 TSMC 공장을 365일 24시간 공사로 단 20개월 만에 준공시키는데 모든 지원을 제공했다. 대만의 반도체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 기업 TSMC의 보유국으로서 대만 정부는 반도체를 자국의 생존 문제와 결부시키고 있다.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반도체'라고 공언할 정도다. 심지어는 기술이 한참 뒤져 있던 중국도 최근 중앙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첨단 반도체 제조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이 중국을 철저하게 견제하는 상황이 오히려 기술 자립의 모멘텀이 된 것이다.

메모리 일변도의 한국 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 빠르게 성장해서 국가 경제를 견인했지만, 이제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 냉철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제조 일변도의 생태계를 향후 시장성과 부가가치가 높은 AI 반도체 및 첨단 장비와 소재 개발까지 대대적으로 혁신하고 확대시켜야 한다. 반도체 경쟁은 뛰어난 기술, 막대한 자금, 그리고 국가의 무한한 지원이 동원되어야 하는 사실상 '국가 대항전'이다. 동시에 시간과의 싸움이다. 변화가 늦어지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위기가 점차 가시화되자 우리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반도체 산업 클러스터를 확충하고 관련 산업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갈 길이 너무 험하고 멀다. 실패해서도 포기해서도 안 된다. 한국경제의 미래가 달렸기 때문이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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