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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마신 맥주 포기하고…'이걸' 산 이유[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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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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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으로 물건 집지 않고, 기업·제품마다 자세히 '파악'해보니
QR코드 찍어 성분 살펴보고, 기업 마인드와 노동 환경, 사회 공헌 여부 등 살펴
유행과 인기 떠나 '줏대 있게 소비'…"기업 바뀌도록 메시지 주는 것"

한 기업이 만드는 칫솔 브랜드. 칫솔 머리만 바꾸면 계속해서 쓸 수 있어, 플라스틱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이것도 구매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소비할 때 조금만 더 생각하면 어떤 게 바뀔 수 있을까. 사도 좋은 제품인지, 괜찮은 기업인지, 공존과 공생을 신경쓰는지, 특정 논란이나 이슈가 없었는지. 이런 걸 신경쓰는 소비자가 많아진다면, 기업도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소비할 때의 '기준'이 필요했다./사진=남형도 기자
형형색색 맥주가 눈앞에 펼쳐졌다. 대형마트라 제품이 정말 많았다. 오래 먹어왔던 맥주도 보였다. 스무 살 정도부터 먹었으니 약 20년 정도. 평소라면 주저 없이, 그걸 집었을 거였다. 좋아하는 맛이므로.


캔 윗면을 유심히 살펴봤다. '오돌도돌' 작고 동그랗게 튀어나온 게 보였다. 점자였다. 시각장애인이 손으로 더듬어 읽을 수 있게 만든, 그들을 위한 글자.

점자표를 참고해 읽어봤다. 20년 먹은 맥주엔 이리 쓰여 있었다. '맥주'. 그게 다였다. 시각장애인이 고른다고 상상해봤다. 점자를 더듬어 읽을 거다. 애써 살펴보니 이리 적혀 있다. '맥주.' 무슨 맥주? 알 길이 전혀 없는.

어떻게 이렇게만 달랑 써놓았을까. 오래 써온 정이 떨어졌다.

진열된 모든 맥주캔의 윗면을 봤다. 어떤 건 아예 점자도 없었다. 그밖엔 다 '맥주'라고만 쓰여 있었다. 딱 하나의 브랜드만 제외하고.
캔맥주 중 유일하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로 '제품 이름'을 캔 위에 새긴 브랜드. 다른 캔맥주엔 점자가 아예 없거나, '맥주'라고만 쓰여져 있었다. /사진=남형도 기자
캔맥주 중 유일하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로 '제품 이름'을 캔 위에 새긴 브랜드. 다른 캔맥주엔 점자가 아예 없거나, '맥주'라고만 쓰여져 있었다. /사진=남형도 기자
캔 오른편엔 '맥주'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왼편엔 '맥주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거기 있던 많은 맥주 중, 이름이 점자로 표기된 건 딱 하나, 그것뿐이었다.


그 맥주는 단 한 번도 안 먹어본 제품이었다. 그걸 집어 장바구니에 넣었다. 시각장애인을 조금 더 생각했단 이유로. 그런 이유로 맥주를 산 건 처음이었다.

그리 소비하는 나만의 기준을, 소위 말해 '줏대(자기 생각을 꿋꿋이 지키고 내세우는 기질이나 기풍)'를 세워보고 있었다.



떡볶이 고르는데 '1시간'


냉장 떡볶이 제품만 해도 이리 많다. 평소 같으면 그냥 당기는 걸 집었을 거다./사진=군침을 흘리고 있는 남형도 기자
냉장 떡볶이 제품만 해도 이리 많다. 평소 같으면 그냥 당기는 걸 집었을 거다./사진=군침을 흘리고 있는 남형도 기자
떡볶이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사러 갔다. 판매대에 놓인 떡볶이 종류만 5~6개. 평소 같으면 당기는 걸 직관적으로 집었으리라. 방식을 바꿔봤다.

어디서 만든 떡볶이인지 봤다. 보통 '브랜드'가 전면에 쓰여 있는데, 포장을 두루 살피면 만든 기업을 알 수 있다. 특정 기업을 비판하거나 옹호할 의도가 없으므로 익명으로 쓴다.

A기업 떡볶이는 장점이 있었다. 제품에 인쇄된 QR코드를 찍으니, 성분이 뭔지 설명이 자세하게 나왔다. 예컨대, '효모추출물분말'을 누르니 빵, 맥주, 포도주를 만드는 미생물이 효모인데, 감칠맛을 높이는 역할이라 알려주는.

그러나 자세히 찾아보니,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부실 대처를 했단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징계, 공장 내 사고 책임에 대한 선 긋기 등이었다. 손에 쥔 떡볶이 봉지를 내려놓았다.
소비에도 '나만의 기준과 줏대'가 필요하다고. 사도 좋은 제품인지, 기업인지, 따져보고 자세히 살펴봐야 했다./사진=두 턱을 지키지 못해 모자이크 처리한 남형도 기자
소비에도 '나만의 기준과 줏대'가 필요하다고. 사도 좋은 제품인지, 기업인지, 따져보고 자세히 살펴봐야 했다./사진=두 턱을 지키지 못해 모자이크 처리한 남형도 기자
B기업 떡볶이. 해당 그룹사에선 명절 선물세트를 계열사에 강제로 팔았다. 선원이 대거 사망한 어선 침몰 사고와도 관련 있었다. 또 기업 리뷰를 보니 '직원이 부족해 이 일 저 일을 많이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일단 넘겼다.

C기업 떡볶이. 10년 전쯤에 해당 기업 공장에서 일하던 고교생이 자살했다. 가해자는 회사 동료였다. 산재가 인정됐으나, 사측이 어떤 징계를 했는진 파악하기 힘들었다. 애매해서 고민했다.

떡볶이 판매대 앞에 서서, 검색하느라 1시간이 훌쩍 흘렀다. 여긴 이래서, 저긴 저래서, 걸리는 게 다 있었다.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내 기준을 정하기로 했다. C기업 떡볶이를 골랐다. 지역에서 쌀 식품을 만드는 업체와 협력한단 점, 그 지역 업체 역시 사회 공헌을 꾸준히 해온 점 등을 고려했다.



우유를 만드는 '기업 마인드'가 좋아서


우유를 살펴보고 있는 기자./사진= 거울을 이용한 남형도 기자
우유를 살펴보고 있는 기자./사진= 거울을 이용한 남형도 기자
우유도 사러 왔다. 판매대 앞에 서니 어지러울 만큼 종류가 많았다. 그나마 우유는 좋아하는 기업이 선명했다. A기업 말이다.

A기업은 홀로 사는 어르신 고독사 예방을 위해 애쓰고 있다. 어르신 댁에 우유를 배달하고, 2개 이상 쌓이면 무슨 일이 있는 걸로 파악해 본사에서 확인한다. 그러니 행여 홀로 사는 이가 숨져도 빠르게 발견해 존엄을 지킬 수 있다. 이를 위해 특정 브랜드 우유 매출 1%를 기부한다.
어르신들 댁에 우유를 집어 넣고 있는 우유 대리점 사장님. 우유가 며칠씩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걸로 여겨 본사에 연락을 취한다. 고독사를 막고 조기에 대처할 수 있다. A기업은 특정 브랜드 우유 매출 1%를, 이 배달을 위해 기부한다./사진=남형도 기자
어르신들 댁에 우유를 집어 넣고 있는 우유 대리점 사장님. 우유가 며칠씩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걸로 여겨 본사에 연락을 취한다. 고독사를 막고 조기에 대처할 수 있다. A기업은 특정 브랜드 우유 매출 1%를, 이 배달을 위해 기부한다./사진=남형도 기자
게다가 선천적으로 특정 영양 성분을 소화하지 못하는 환아들을 위해, 특수 분유를 25년째 만든다고. 전국에 400명뿐인 환아들을 위해, 1년에 두 번 일반 분유 생산 라인을 멈춘다. 생산 손실만 8만 캔이 넘는다. 시장의 논리와 반대로 가는, 비효율적이지만 소수를 외면하지 않는 마인드가 좋았다.

또 다른 우유를 만드는 B기업. 여기는 본사가 직원과 대리점을 대상으로 갑질한 사건부터 논란이 다양하게 불거진 터라, 큰 고민 없이 배제했다.

C기업 '동물 복지'를 신경 쓴다고 해서 잠시 살펴봤다. 동물 복지 인증 기준을 통과했고, 농약과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고 나와 있었다. 이리저리 검색하니, 목장 사진이 나왔고 환경이 괜찮아 보였다. 실제 맞는지 농림축산검역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인증받은 걸 확인했다. 다만 '자유 방목'을 하는 다른 곳이 있길래, 추후 거길 살펴보기로 했다.



로션은 고민하다 결국 못 사고


마트에서 발견한 선크림 용기 뒷면. 아무리 들여다봐도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오른편에 쓰여 있는 '재활용 어려움' 표기는, 재활용이 거의 안 되는 플라스틱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마트에서 발견한 선크림 용기 뒷면. 아무리 들여다봐도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오른편에 쓰여 있는 '재활용 어려움' 표기는, 재활용이 거의 안 되는 플라스틱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로션도 마침 다 떨어져서 살 참이었다. 가까운 화장품 매장에서 사다 썼었다.

화장품 판매대에 진열된 제품이 너무 많아 혼란스러웠다. 역시 앞에 멀뚱히 서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동물 실험'을 안 하는 화장품을 '크루얼티 프리'라고 한단다. '동물성 성분'을 안 쓰는 건 '비건'이다. 둘은 다르다.

A기업 로션을 들고, 뒷면에 빼곡히 적힌 성분을 들여다봤다. 아무리 봐도 뭐가 뭔지 오리무중. 화장품 회사 상담센터에 전화해 물었다.

"OO 로션을 사기 전에 여쭤보는데요."(기자)
"네, 고객님. 말씀하세요."(상담원님)
"혹시이 로션이 동물 실험을 한 제품일까요?"(기자)
크루엘티 프리와 비건 화장품 브랜드 목록이 담긴, 동물해방물결 홈페이지. 뜻이 있다면 찾아서 살 수 있다. 동물 실험과 동물 성분에 반대한다면./사진=동물해방물결
크루엘티 프리와 비건 화장품 브랜드 목록이 담긴, 동물해방물결 홈페이지. 뜻이 있다면 찾아서 살 수 있다. 동물 실험과 동물 성분에 반대한다면./사진=동물해방물결
상담원은 잠시 시간을 가지고 찾아보더니, 동물 실험을 안 한다고 했다. 그런데 동물해방물결 등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크루얼티 프리 화장품 목록엔 없었다. '크루얼티 프리 키티'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해당 기업이 동물 실험을 한다고 나와 있었다.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된 화장품들이 많았다. 동물 실험을 안 하거나, 비건 인증을 받았거나, 공정 무역을 통해 얻은 성분을 쓰거나. 그걸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쓰던 것만 썼다. 흥미 가는 화장품이 마트에 없어서,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농부에게 직접 산 '달걀'…닭들 맘껏 뛰게 하는 농장


녹색제품 '환경 인증 마크' 설명을 보고 있는 기자./사진=턱선을 신경쓴 남형도 기자 셀카
녹색제품 '환경 인증 마크' 설명을 보고 있는 기자./사진=턱선을 신경쓴 남형도 기자 셀카
컵라면, 떡볶이, 맥주, 우유. 고작 4가지 물건을 사는데 마트에서 6시간을 썼다. 새삼 생각하니 살필 게 많았다. 만든 기업을 보고, 논란이나 노동 환경을 살피고, 성분 등을 따져보고, 공존을 섬세하게 고민하는지 찾아보느라.

마트를 나오며 이 또한 제한된 '선택지'란 생각이 들었다. 시야를 좀 더 넓혀보기로 했다. 익숙하고 편한 프레임 바깥으로.

'마르쉐 농부 시장'에 갔었다(추후 상세히 다룰 예정). 생산자인 농부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어 좋았다. 농부들은 진심이었다. 어찌 농사를 지었는지, 어떻게 땀 흘려 키우고 수확했는지, 어떤 음식으로 만들어야 맛난지 들려주었다. 단지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그 너머 '이야기'가 있었다.
농장주에게 실제 닭이 사는 환경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받았다. 풀을 뜯고, 벌레를 쪼아 먹고, 자유로이 다니고 있었다./사진=농장주
농장주에게 실제 닭이 사는 환경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받았다. 풀을 뜯고, 벌레를 쪼아 먹고, 자유로이 다니고 있었다./사진=농장주
그중 어떤 이야기엔 정말 끌렸다. 한 농장에선 닭을 방목해서 키우고 있었다. 풀을 뜯고, 벌레를 쪼아 먹고, 흙 목욕을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봤다. 농장 주인은 "적은 수의 닭을 키우기에 가능한 것"이라 했다.
달걀에 새겨진 난각번호를 보면, 사육 환경이 어떤지 알 수 있다. 1번은 자연방사, 2번은 평사, 3번은 개선한 케이지, 4번은 기존 케이지다. 방사한 환경의 닭이 낳은 유정란./사진=남형도 기자
달걀에 새겨진 난각번호를 보면, 사육 환경이 어떤지 알 수 있다. 1번은 자연방사, 2번은 평사, 3번은 개선한 케이지, 4번은 기존 케이지다. 방사한 환경의 닭이 낳은 유정란./사진=남형도 기자
자연스레 다니는 걸 보고 있으니 좋았다. 소비하는 이유가 이리 확장될 수 있단 걸 알았다. 달걀 가격이 싸진 않았어도, 거기서 주문해 구매했다. 어떤 닭들은 A4 용지보다 작은, 날개조차 펴지 못하는 곳에서 평생 갇혀, 찍어내듯 달걀을 낳고 있단 걸 알기에.
산란계를 한정된 공간에서 밀집 사육하기 위해 사용하는 배터리 케이지. 마리당 주어지는 공간은 416㎠로 A4용지보다 좁다./사진=게티이미지
산란계를 한정된 공간에서 밀집 사육하기 위해 사용하는 배터리 케이지. 마리당 주어지는 공간은 416㎠로 A4용지보다 좁다./사진=게티이미지
거기에 동조하진 않는다는 가장 좋은 의사 표현. 닭들을 힘들게 해 뽑아낸 달걀을 안 사면 되는 거였다.



모든 소비엔 '생각할 시간'이 꽤 필요하다


한 기업이 만든 컵라면. 종이 용기에 컵라면 이름이 뭔지 점자를 새겨두었다. 해당 마트에서 본 컵라면 중, 시각장애인 점자가 새겨진 제품은 여기가 거의 유일했다. 그래서 샀다./사진=라면을 너무 좋아하는 남형도 기자
한 기업이 만든 컵라면. 종이 용기에 컵라면 이름이 뭔지 점자를 새겨두었다. 해당 마트에서 본 컵라면 중, 시각장애인 점자가 새겨진 제품은 여기가 거의 유일했다. 그래서 샀다./사진=라면을 너무 좋아하는 남형도 기자
평생 아주 처음이었다. 뭔가를 사려 맘먹은 순간부터, 실제 구매하기까지 이리 오래 걸렸던 건.

새삼 알아챘다. 소비할 때 '생각할 시간'이 제외해 왔단 걸. 왜 그랬을까. 무의식적으로, 가성비가 좋아서, 어디 브랜드 제품이어서, 검색하니 리뷰가 제일 많이 나와서, 누가 좋다고 해서, 유명한 사람이 써서, 보기 좋고 끌려서.
제품을 꼼꼼하게 따져 사려고 해도, 성분은 외계어 수준으로 어렵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난감한 경우가 대부분. 이 기업 제품은 첨가물 성분이 뭔지 이리 알려준다./사진=남형도 기자
제품을 꼼꼼하게 따져 사려고 해도, 성분은 외계어 수준으로 어렵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난감한 경우가 대부분. 이 기업 제품은 첨가물 성분이 뭔지 이리 알려준다./사진=남형도 기자
멈춰야 했다. 바로 물건을 잡거나 쉬이 구매 버튼을 클릭하는 걸. 비로소 질문할 수 있게 됐다.

'이거 어느 기업 제품이지?'
'이 기업은 그동안 문제가 없었나?'
'제품 성분은 좋은 게 들었나?'
'비인간 동물과 환경을 고려해 만든 건가?'
고양이 모양 쿠키를 만들어서,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망원동의 좋은 카페. 좋은 마음이 가득한 곳이라 단골 손님이 되었다. 음료도 좋고 디저트도 맛있지만, 이런 마음이 다정해서 좋기 때문에./사진=A카페 인스타그램
고양이 모양 쿠키를 만들어서,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망원동의 좋은 카페. 좋은 마음이 가득한 곳이라 단골 손님이 되었다. 음료도 좋고 디저트도 맛있지만, 이런 마음이 다정해서 좋기 때문에./사진=A카페 인스타그램
시간이 지체됐다. 솔직히 번거롭고 귀찮고 마음이 조급했다. 익숙함을 깨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찾는 사이에 몰랐던 선택지가 많이 보였다. 더 나은 방식으로, 더 신중하고 섬세하게, 더 소비자를 생각하는 진심으로 만드는 제품과 기업들이. 당연하게도 그건 저절로 알려주는 게 아녔다. 내 수고로움을 더하여 생각해야만 가능한 거였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환영합니다' 스티커를 문 앞에 붙인 상수동 아이스크림 가게. 개를 키우기도 한단 사장님은 "안내견 입장을 거부한단 기사를 보고 속상해서, 편히 들어올 수 있게 신청해서 붙여두었다"고 했다. 이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내 소비 기준은, 타인을 향하는 마음이 있는 곳./사진=남형도 기자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환영합니다' 스티커를 문 앞에 붙인 상수동 아이스크림 가게. 개를 키우기도 한단 사장님은 "안내견 입장을 거부한단 기사를 보고 속상해서, 편히 들어올 수 있게 신청해서 붙여두었다"고 했다. 이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내 소비 기준은, 타인을 향하는 마음이 있는 곳./사진=남형도 기자
알게 됐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소비를 결정하는 게, 기업에 전하는 묵직한 '메시지'란 걸. 매일 고단하게 일하는 이들을 소모하지 말라고, 안전히 귀가하게 하라고, 환경을 아무렇게나 훼손하지 말라고, 비인간 동물을 괴롭히지 말라고.

그럼 안 살 거라고. 반대로, 그런 걸 신경 쓰면 기꺼이 사겠다고. 소통이 잘 되어 기업 하나하나가 바뀌면 기쁠 거라고.

그러나 갖은 상술에 휩쓸리던 날들이 길었다. 세계적인 브랜딩 권위자, 마틴 린드스트롬은 저서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에서 이리 적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마케팅과 광고 세상에서 우연이란 없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케터와 광고업체들이 소비자를 압박하고 부추기고 유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많은 속임수와 음모, 그리고 거짓과 조작을 확인했다.'

이젠 소비할 때마다 시간을 들여 애써볼 거다. 나만의 '줏대' 비슷한 걸 만들기 위하여.
인기가 많아 구멍 뚫린듯 텅 빈 과자 판매대. 점원분이 채우는 걸 목격했을 때, 사려했던 게 아님에도 나도 모르게 챙겨서 사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했던 불필요한 소비. 만족감 역시 크지 않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인기가 많아 구멍 뚫린듯 텅 빈 과자 판매대. 점원분이 채우는 걸 목격했을 때, 사려했던 게 아님에도 나도 모르게 챙겨서 사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했던 불필요한 소비. 만족감 역시 크지 않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6시간에 걸쳐 대형마트에 머물다, 다 사고 돌아갈 참이었다.

과자 코너를 지나갔다. 인기가 많은, 과자 매대만 텅 비어 있는 걸 봤다.

그런데 마침 마트 직원분께서, 그 과자를 상자째 가져와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냉큼 하나를 집었다.

애초 계획에 없던 거였다. 관심 있던 것도 아녔다. 그런데도 샀다. 이유를 곰곰이 스스로 물었다. 왠지 사기 어려운 귀한 것 같아서, 보일 때 안 사면 못 먹을 것 같아서, 관심 없는데도 사버렸다고.
한 기업이 만드는 칫솔 브랜드. 칫솔 머리만 바꾸면 계속해서 쓸 수 있어, 플라스틱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이것도 구매했다./사진=남형도 기자
한 기업이 만드는 칫솔 브랜드. 칫솔 머리만 바꾸면 계속해서 쓸 수 있어, 플라스틱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이것도 구매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생각하는 소비를 취재하며 실제 벌어진 역설. 헛웃음이 터졌다. 얼마나 무의식적인 소비에 길들여 있는 건가 싶어서.

때마침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잡지를 만드는, 김현성 오보이 편집장이 쓴 좋은 글이 생각났다. 생각하는 소비. 그 첫 질문은 아무래도 이걸로 정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챙겨왔다.

'사기 전에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인지 한 번만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세요.'

촌철살인이 이어졌다.

'오늘 꼭 뭔가를 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 저마다 다양한 소비 기준을 세워두고 고민하는, 소비자들 실제 이야기도 자세히 취재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말에 나갈 예정인 '체헐리즘 뒷이야기'에 담겠습니다. 그럼 여러 판단을 세우시는 데에 도움이 되실 거예요. 소비자가 기업과 제품을 상세히 바라보고, 기업이 소비자에게 긴장하며 더 나아지는 선순환을 기대하며 썼습니다. 긴 기사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남형도 기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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