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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방에 쌓이던 현금 5억…"나는 보이스피싱 총책이었다"

머니투데이
  • 정세진 기자
  • 이강준 기자
  • 김미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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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3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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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다시 울리는 그놈목소리(상)

[편집자주] 한동안 감소 추세였던 보이스피싱 범죄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달 피해액이 500억원을 돌파하고 1인당 피해액은 3000만원을 넘어섰다. 정부의 서민 지원용 금융 상품까지 악용하는 등 신종 기법이 활개를 친다.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와 진화하는 범죄 행태를 살펴본다.



"살인보다 더 나쁜 일"…12명 사무실서 연 30억 챙긴 '한국사장'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사진=쇼박스
"저는 살인보다 더 나쁜 일을 했습니다."


김인구씨(33·가명)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의 총책이었다. 충북에 살던 그는 옆동네 형에게 '중국에서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2015년 봄 중국 옌지시로 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들어갔다. 2019년 여름 한국 경찰에 검거될 때까지 '직원' 12명을 둔 보이스피싱 '콜센터' 사무실 사장님이었다. 그는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현재 자영업을 준비 중이다. 김씨는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머니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털어놨다.

◆ '韓中 협업'…12명 일하는 '사무실'서 年 30억원씩 챙겨

보이스피싱 조직도_/그래픽=김다나
보이스피싱 조직도_/그래픽=김다나
중국 옌지에서 김씨는 '한국사장'으로 불렸다. 그는 '중국사장'과 동업하며 보이스피싱 조직을 운영했다. 중국의 피싱 조직은 대다수가 한국사장과 중국사장이 동업하는 구조다. 한국사장은 한국인 직원을 모집하고 '콜센터' 운영을 총괄한다. 콜센터 직원은 금융기관 직원인 척 한국에 전화해 피해자를 속인다. 중국사장은 현지 인맥을 동원해 범죄에 필요한 대포폰, 대포통장, 환전책,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 등을 구해다 한국사장에게 넘겨준다.

보이스피싱 조직 역할별 업무/그래픽=김다나
보이스피싱 조직 역할별 업무/그래픽=김다나
한국사장은 수익을 분배하고 직원을 충원하는 등 사무실 운영을 맡는다. 김씨는 사무실 2곳을 운영하며 직원 12명을 고용했다. 중국사장이 고용한 사람들이 승합차를 이용해 직원숙소에서 사무실까지 직원을 실어 날랐다. 한국과 중국의 시차가 1시간인점을 감안해 은행 업무 시간인 (중국 시간) 오전7시에서부터 오후 3시까지 사무실을 운영했다.


김씨는 중국사장을 통해 대포통장을 제공하는 '장집'과 대포폰을 제공하는 '전화집' 등과 연락했다. 검찰 등을 사칭한 직원은 피해자에게 계좌번호를 제공하며 입금을 유도한다. 계좌번호는 장집이 제공한 대포통장을 활용한다. 현금 수거책을 만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장집에서는 인터넷에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올려 1~3차 수거책을 구한다. 3차 수거책이 한국 환전소에 수거한 피해금을 가져다 주면 중국환전소에선 이돈을 중국사장에게 전달한다.

김씨 보이스피싱 조직 수익·지출 구조/그래픽=김다나
김씨 보이스피싱 조직 수익·지출 구조/그래픽=김다나
항목별 지출 내역/그래픽=김다나
항목별 지출 내역/그래픽=김다나
김씨 조직은 연간 30억원의 범죄피해금을 챙겼다. 중국사장은 매주 수익금을 콜센터 사무실로 가지고 와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스팸문자비 등 '공동경비'를 제외하고 김씨와 5대5로 나눴다.

직원들이 한국에 갔다 오고 싶다고 하면 왕복 항공도 지급했다. 주말엔 사무실별로 '회식'을 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한화 500만원을 썼다고 한다.

모든 콜센터 직원이 평범한 직장인처럼 자유롭게 지냈던 건 아니다. 어떤 조직은 관리책을 맡은 조직폭력배가 여성직원을 성폭행하거나 경쟁 사무실 직원을 흉기로 찌르기도 했다. 칭다오의 한 조직에선 관리책이 일을 그만두겠다는 한국인 직원을 둔기로 폭행해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상해를 입힌적도 있었다.

김씨는 "저희는 그만두고 한국에 가겠다는 직원들은 보내줬다"며 "많은 직원이 돈이 다 떨어지면 다시 일하고 싶다고 연락했기 때문에 직원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도 원할 때마다 한국을 오갔다.

김씨는 직원들에겐 '기본급' 없이 '성공보수'만 줬다. 범죄 피해금의 20%가 직원 몫이었다. 직원들이 가져간 돈은 월평균 500만원 수준. 가장 많이 버는 직원은 1달에 2000만원 이상 받기도 했다. 김씨는 "이 일은 주변 지인들을 데리고 와서 직원을 늘리는 게 대부분"이라며 "어떤 조직은 교도소에서 같은 방을 쓰던 사람들이 한 팀을 꾸려서 70대 노인이 콜센터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매년 5억원 이상을 벌었다. 수익은 대다수가 현금화해 방에 쌓아뒀다. 환전소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한국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는 "직원들이 나중엔 머리가 커서 직접 중국사장과 연락해 자신이 사무실을 차리도록 도와달라고 말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중국사장도 수익분배를 유리하게 하려고 이런 한국인들을 고용해 새롭게 사무실을 차린다"고 했다.

영화 '시민 덕희' 스틸컷.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사진=쇼박스
영화 '시민 덕희' 스틸컷.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사진=쇼박스

◆ 교민들 사이에선 '젊은 사업가'…중국 공안엔 매달 1000만원 뇌물

김씨는 "중국사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현지 공안과 관계유지"라며 "고위직 공안에게 직접 뇌물을 줄 수 있는 줄을 댈 수 있어야 한다"고했다.

중국사장은 공안의 단속을 사전에 알려줬다. 한국에서 수사를 위해 경찰이 중국 현지에 도착하면 경찰관 이름을 포함한 명단까지 받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주변에서 조직이 검거됐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본보기용으로 잡힌 것으로 생각했다"며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검거될 거라는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사장의 '꽌시(인맥)'를 따라 김씨는 사무실을 연길, 베이징, 청도로 옮겨가며 운영했다. 중국사장이 해당 지역 공안국 고위 담당자와 연줄이 닿아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중국사장을 통해 해당 지역 고위직 공안 뇌물 비용으로 매달 1000만원을 썼다. 지역 공안들은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는 명목으로 원할 때마다 김씨를 불러 술값을 계산하게 하기도 했다.

김씨는 청도에선 500평 규모의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면서 교민들과 교류했다. 교민들은 그를 '젊은 사업가'로 생각했다. 한국과 중국 사장들은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많은 돈을 쓰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음식점 등을 차려 운영한다.

김씨는 2019년 죄책감이 들어 사무실을 넘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경찰은 중국 내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검거한 후 추적 끝에 한국에서 있는 김씨를 2019년 여름 체포했다. 그는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징역 1년10개월을 선고 받았다.

김씨는 과거 범죄를 뉘우치며 "지금 보이스피싱 조직원이라면 당신이 사기친 피해자에게 며칠 후에 한 번 전화를 해봐라. 그 사람들은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느낀다"고 말했다.




요즘 이런 문자 급증…"한번 걸리면 3094만원 털렸다"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그래픽=이지혜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그래픽=이지혜
보이스피싱 범죄가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이스피싱은 범정부 차원 노력으로 감소세에 접어드는가 싶더니 지난해 말부터 건수와 피해액 모두 증가세로 돌아섰다. 특히 1인당 피해액이 3000만원을 넘어서면서 일각에선 '걸리면 거덜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달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561억원으로 파악됐다. 같은해 1월 257억원 대비 11개월 만에 월간 기준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보이스피싱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수사당국의 집중 단속으로 피해액이 크게 줄고 있었다. 지난해 초부터 10월까지 월간 피해액이 200억원대에서 400억원대에 머물렀다. 발생건수도 연간 기준 2021년 3만982건, 2022년 2만1832건으로 감소세였다.

지난해 11월부터 이같은 분위기는 급변했다. 11월엔 전달 대비 피해액이 213억원, 발생건수는 448건 증가했다. 그 다음달인 12월엔 연간 최대치인 1813건, 561억원을 기록했다.

◆ 걸리면 거덜난다…1인당 평균 보이스피싱 피해액 최대 3094만원

보이스피싱 1인당 평균 피해액/그래픽=윤선정
보이스피싱 1인당 평균 피해액/그래픽=윤선정
1인당 평균 피해액 역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까지 2000만원 중반대를 기록했던 1인당 피해액은 11월 2743만원으로 늘더니 12월엔 3000만원을 넘어섰다. 올해 1~2월에도 월간 2800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피해액 증가세는 범죄조직의 미끼문자(스미싱) 발송량 증가세와 유사한 추이를 보였다. 스미싱은 문자메시지(SMS)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으로 발송된 문자 내용 중 허위 인터넷 주소를 클릭하거나 가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게 만들어 개인정보 등을 빼가는 범죄수법이다. 보이스피싱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빼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스미싱은 일종의 범죄 '사전단계'에 해당한다.

월별 스미싱 탐지 건수/그래픽=조수아
월별 스미싱 탐지 건수/그래픽=조수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스미싱 탐지건수는 5만3173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760.13% 증가했다. 보이스피싱이 폭증했던 같은해 11월엔 5만4419건으로 1597.94%나 늘었다. 그러다 최정점을 찍은 올해 1월엔 3만5899.07% 급증한 15만4076건을 기록했다.

◆ 보이스피싱 시작단계 '스미싱'을 잡아라…경찰청, 보이스피싱 겨냥 신규 특별 단속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죄 시작점인 스미싱 발송량이 늘어나면 피싱 피해건수와 피해액이 증가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스미싱 차단·단속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는 근본적인 수사 방법이란 얘기다.

경찰은 이달 전기통신금융 사기(보이스피싱)를 비롯해 미끼문자도 '10대 악성 사기'에 포함해 대응에 나섰다. 올해 2월엔 경찰청은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를 대응하기 위해 조직개편에 나서 전담부서 '피싱범죄수사계'를 신설했다. 같은달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대응센터(센터)'의 설치 근거규정도 신설해 이 센터가 보이스피싱 원스톱 신고·제보와 추가범행 차단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법률 기반도 마련했다.

경찰청은 보이스피싱·스미싱을 겨냥한 신규 특별 단속도 이달부터 추진한다. 각 경찰서 수사과에 '악성사기 추적팀'도 설치해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사기 피의자에 대한 집중적인 검거활동에도 나설 방침이다.




'시민덕희' 그 실제 주인공…이렇게 보이스피싱 총책 잡았다




영화 '시민덕희' 실화 주인공 김성자씨(49)는 2016년 1월 자신에게 3196만원 상당 보이스피싱 사기를 친 조직원에게 진술서를 받아냈다. /사진제공=김성자씨
영화 '시민덕희' 실화 주인공 김성자씨(49)는 2016년 1월 자신에게 3196만원 상당 보이스피싱 사기를 친 조직원에게 진술서를 받아냈다. /사진제공=김성자씨
# 김성자씨(49)는 2012년 5월 경기 화성시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했다. 벌이가 빠듯해 부업으로 전기장판을 보관하는 부직포 가방도 만들었다.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은 대목이었다. 공장에 납품을 마치고 돌아서던 차였다.

4살 된 막내아들이 공사 중인 옆 건물 난간에 떨어졌다. 김씨가 달려갔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들은 고양이처럼 울었다. 그 소리를 들은 공장장이 모자를 발견했다.

1년간 입원하고도 2년간 통원 치료를 받았다. 머리, 어깨, 허리 몸의 여러 군데가 고장 났다. 치료비는 보험을 적용해도 3600만원이나 됐다. 김씨는 안전망 미설치를 원인으로 보고 건물주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변호사는 건물주를 상대로 가압류하려면 공탁금을 먼저 내야 한다고 했다. 통상 가압류를 신청하는 채권자는 법원에 공탁금을 걸어둔다. 재판은 2016년 1월27로 잡혔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차린 중국 칭다오시 현지 사무실. 김성자씨가 조직원으로부터 확보해 경찰에 제보했다. /사진제공=김성자씨
보이스피싱 조직이 차린 중국 칭다오시 현지 사무실. 김성자씨가 조직원으로부터 확보해 경찰에 제보했다. /사진제공=김성자씨


◆ "수원지검입니다"…재판 보름 전 걸려 온 전화, 피싱이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가지고 있던 고액 피해자 800명의 명단. 김성자씨가 확보해 경찰에 제보했다. /사진제공=김성자씨
보이스피싱 조직이 가지고 있던 고액 피해자 800명의 명단. 김성자씨가 확보해 경찰에 제보했다. /사진제공=김성자씨

재판을 보름 앞둔 1월11일 오전 11시쯤 '수원지방검찰청'이라는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1598만원을 보내야만 압류를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압류를 신청해야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시기 아픈 김씨를 대신해 소송을 도와주던 친오빠의 머리에서 혹이 발견돼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공탁금이 1500만원가량이라던 오빠의 말을 김씨는 기억했다. 변호사는 마침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근처에서 은행 ATM을 찾아 1598만원을 계좌 4개에 나눠 보냈다.

같은 날 오후 4시30분쯤 '수원지검'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김씨 명의로 돈을 입금하지 않아 문제가 생겼으니 다시 보내라고 했다. '수원지검'이 은행과 연결해서 추후 대출도 받게 해주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잠시 후 '서초동 국민은행 이본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이본부장은 자기 신분증과 출입증을 보내줬다. 김씨는 세탁소에 모여있던 동네 사람들에게 200만원, 300만원씩 빌려 10분 만에 돈 1598만원을 재차 보냈다.

'수원지검'은 원래 입금한 1598만원을 30분 안에 다시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전산이 늦어졌다며 다음날로 미뤘다. 그다음 날도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97만원을 입금하면 전산 작업을 해주겠다는 말뿐이었다.

일요일 저녁 8시쯤 김씨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민은행으로 향했다. 경비에게 이본부장 신분증을 보여주니 경비는 "또 이놈이네"라고 했다. 비틀대며 운전대를 잡은 김씨에게 음주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에 요구에 따라 차에서 내렸는데 그만 바지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그때 3196만원의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김씨는 일주일간 수면제를 먹어도 잘 수 없었다. 수면제를 먹고 소주 한 잔 먹기를 반복했다. 마신 기억이 없는 술병이 나뒹굴었다. 어느 날 아들이 "엄마 죽지 마. 제발 죽지 마. 엄마가 죽으려고 했어. 내가 끌어안아서 엄마가 깼어"라며 울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보이스피싱 총책이 미용실, 주점 등에서 찍힌 사진. /사진제공=김성자씨
보이스피싱 총책이 미용실, 주점 등에서 찍힌 사진. /사진제공=김성자씨

◆ "삼촌, 나한테 다 제보해요"…총책 비행기 편까지 알아내

25일 경기 화성시에서 영화 '시민덕희' 실화 주인공 김성자씨(49)를 만났다. /사진=김미루 기자
25일 경기 화성시에서 영화 '시민덕희' 실화 주인공 김성자씨(49)를 만났다. /사진=김미루 기자
사기를 당하고 보름째 되던 날 밤 9시쯤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김성자씨 나 이 본부장입니다"라며 "김성자씨가 엄청 집요해서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이 본부장을 삼촌으로 부르며 어르고 달래 총책의 이름, 생년월일, 가족관계, 사진, 한국 집 주소를 파악했다. 이후 중국 칭따오 근거지, 총책 사진, 고액 피해자 800명 명단까지 확보했다. 총책이 설을 앞두고 2월8일 오전 10시25분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해 귀국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김씨는 이 사실을 경찰에 모두 제보했지만 경찰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김씨는 2월8일 경기 화성시에서 인천 부평구 총책의 집으로 향했다. 직접 잡을 생각이었다.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부평구로 가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30시간 넘게 잠복하던 날 아는 언니에게 총책 검거 소식이 뉴스에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영화 '시민덕희'가 개봉하고 나서는 마음이 다소 괜찮아졌다고 한다. 자기 이야기가 다른 피해자에게 힘을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식당 일과 커튼 제작 부업 일을 하고 여유 시간에 김씨를 찾아오는 피해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는 "영화에서 덕희 역의 라미란 배우가 총책에게 맞을 때 '저걸 왜 맞아. 내가 가서 패주고 싶다'고 느꼈다"며 "내가 움츠러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피해자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움츠리지 말고 누구 한명에게라도 떠들면 마음이 개운해지고 올라오던 울분이 가라앉는다"며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같이 울고 보듬어주면 된다. 피해자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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