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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산벚처럼 희게 아름다운 부부 100쌍, 새카맣게 탄 산을 수놓다

머니투데이
  • 동해(강원)=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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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0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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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 신혼부부 120여쌍과 강원도 동해서 나무심기 행사
2년 전 산불로 벌거숭이된 산..."우리 아이는 더 푸른 땅서 살길"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 올해 40주년...과거 참여 부부, 자녀들과 재참여

지난달 31일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에 재참여한 박규희(45), 배강임(40) 부부. 이들은 2011년 경기도 여주에서 해당 사업에 참여하고 13년만인 이날  다시 참여했다. 이들은 2011년 행사에 참여하고 이듬해 첫째 딸을 얻었다고 한다. 이들은 동해안에 민둥산으로 남은 산들을 보고 가슴이 아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사업에 다시 참여했다고 한다./사진=김성진 기자.
지난달 31일 강원도 동해시의 어달산, 이른바 봉화대산. 2022년 강릉에서 넘어온 산불로 나무들이 타버려 현재는 토양이 시멘트 색 재가 돼 버렸다. 이달 유한킴벌리는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 사업으로 신혼부부 120여쌍과 해당 산에 나무 3000그루를 새로 심었다./사진=김성진 기자.
땅이 시멘트 가루처럼 회백색이었다. 손으로 쥐니 과자처럼 바스라졌고, 시커먼 솔방울과 까맣게 탄 소나무의 밑동이 조각난 숯이 돼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풀벌레나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2022년 이곳 강원도 동해시의 산을 대형 산불이 모조리 태웠다. 40~50 가구가 집을 잃었고, 지금도 산의 대부분이 복구되지 않아 멀리서 보면 마치 화상을 입은 사람의 피부처럼 검붉은 민둥산으로 남아있다. 산에 다시 청록빛 나무가 우거지려면 나무를 심고 적어도 100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 기다림의 첫해가 지난달 31일에 시작됐다. 식목일을 일주일쯤 앞둔 이날 흡사 산벚, 철쭉이 군락을 이룬 듯 흰색, 노란색, 불그스름한 등산복을 입은 남녀들이 쌍을 이뤄 한손에 소나무 묘목, 또다른 손에 괭이를 들고 연거푸 땅을 팠다. 남성이 "군대에서 괭이질 하던 짬밥을 보여주지" 하니 여성이 잠자코 보다가 "됐어, 내가 할게"하고 괭이를 잡았다. 묘목은 전부 인조 환경에서 1년 배양한 소나무였다. 뿌리 부분과 나무 부분이 각각 성인 한뼘 크기로 작았다. 남녀들은 구덩이를 얕게 파고 속에 묘목을 넣은 뒤 흙으로 덮고 두 손으로 부드럽게 두들기며 "잘 자라", "또 보러 올게"라 했다. 이들은 모두 예비부부 또는 신혼부부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미팅에서 만나 8년의 연애 끝에 4월 중순 결혼한다는 신모씨, 이모씨 부부는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에 참여한 신혼부부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에 참여한 신혼부부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유한킴벌리는 이날 동해시에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나무심기 행사를 했다. 1984년에 처음 시작한 사회공헌 사업으로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유한킴벌리는 사업을 시작한 이듬해부터 매년 빠지지 않고 신혼부부들과도 나무심기 행사를 했다. 2005~2008년에는 북한 금강산 일대의 민둥산에도 나무를 심었다. 올해까지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로 심은 나무는 5700만 그루에 달한다. 한국에서 해당 사업만큼 오랫동안 변함없이 추진돼 온 사회공헌 사업은 찾기가 힘들다.


신혼부부들이 나무를 심은 산의 공식 이름은 어달산이지만, 동해 주민들은 대부분 산 꼭대기에 1149년 고려시대 때 지은 봉화대의 터가 있어 '봉화대산'이라 부른다. 휴양지로 유명한 망상 해수욕장에 인접해 지금은 중턱에만 올라도 바다가 보이지만 산불이 나기 전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산마루가 아니고서는 바다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2022년 3월의 어느날 새벽 1시쯤 모두가 잠든 시간에 강릉 옥계면에서 난 불이 강한 북풍을 타고 남쪽으로 약 7km 떨어진 봉화대산을 두 시간 만에 덮쳤다. 동해시만 500여가구가 대피했고, 강한 바람 탓에 불은 8일 후에야 꺼져 동해시의 2740 헥타르, 축구장 약 900여개 너비의 산을 불태웠다.
지난달 31일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에 참여한 신혼부부가 나무를 심고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제공=유한킴벌리.
지난달 31일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에 참여한 신혼부부가 나무를 심고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제공=유한킴벌리.
이날 신혼부부 120여쌍은 전세버스를 타고 봉화대산 근처 도로에 내려 15분쯤 산길을 올라 식재지로 향했다. 산불에 탄 곳이라 제대로 된 등산로가 없어 부부들은 나무나 돌 계단 없이 경사진 땅을 올랐다. 땅은 언젠가 화산이라도 터진 듯 재가 섞여 있었다. 땅 색깔이 아스팔트처럼 새카맣고, 이틀 전 내린 비와 섞여 질퍽한 곳도 있었다. 등산로는 전혀 정비되지 않아 땅의 군데군데 주먹만 한 돌이 위태롭게 박혀 있었다. 부부들이 땅에서 발을 떼면 돌과 자갈이 흘러내렸고, 어떤 참가자는 발이 미끄러졌다. 하지만 부부들은 목장갑 낀 손을 마주잡고, 길이 좁아져 한줄을 이뤄야하는 구간은 뒷 사람이 앞 사람의 허리를 밀어주며 산을 꿋꿋이 올랐다.

신혼부부들은 봉화대산 한쪽 면에 나무 약 4500그루를 심었다. 유한킴벌리는 지난해에도 신혼부부 100여쌍과 동해시에 나무를 심었다. 산불이 난 땅은 그을음 때문에 토양에 영양분이 부족해 묘목의 생존확률이 낮지만, 지난해 신혼부부가 심은 묘목은 96%가 살아남았다고 한다. 행사에 참여한 허상만 생명의숲 이사장은 "세계적으로 봐도 달성하기 쉽지 않은 생존력"이라며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신혼부부들의 정성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에 재참여한 박규희(45), 배강임(40) 부부. 이들은 2011년 경기도 여주에서 해당 사업에 참여하고 13년만인 이날  다시 참여했다. 이들은 2011년 행사에 참여하고 이듬해 첫째 딸을 얻었다고 한다. 이들은 동해안에 민둥산으로 남은 산들을 보고 가슴이 아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사업에 다시 참여했다고 한다./사진=김성진 기자.
지난달 31일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푸르게 신혼부부 나무심기 행사에 재참여한 박규희(45), 배강임(40) 부부. 이들은 2011년 경기도 여주에서 해당 사업에 참여하고 13년만인 이날 다시 참여했다. 이들은 2011년 행사에 참여하고 이듬해 첫째 딸을 얻었다고 한다. 이들은 동해안에 민둥산으로 남은 산들을 보고 가슴이 아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사업에 다시 참여했다고 한다./사진=김성진 기자.
이날 행사에는 과거 나무심기 행사에 참여하고, 지금은 자녀들과 가정을 이룬 부부도 다수 참여했다. 박규희(45), 배강임(40) 부부는 이날 초등학교 6학년, 3학년 딸들과 나무를 심었다. 부부는 2011년 경기도 여주에서 나무를 심고 이듬해 첫째 딸을 얻었다고 한다. 박씨는 "동해안을 여행할 때 아직 산들이 민둥산으로 휑해 가슴이 아팠다"며 "자녀들과 작은 손길이라도 도움이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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