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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들의 축제에서 지구촌 최대 행사로... 월드컵의 출발[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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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21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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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 시청 광장을 꽉 채운 응원단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피파 엠블렘/사진=위키피디아
120년 전(1904년) 오늘.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등 7개국 대표가 모였다. 축구의 규칙을 통일하고 관리를 편하게 하기 위한 국제적 축구연맹 연합체(FIFA, 피파)를 만드는 자리.

피파 같은 국제기구가 탄생하기 전 초창기 축구의 모습은 오늘과는 매우 달랐다고 한다. 발로 공을 차 골대에 넣는다는 큰 틀은 같았지만, 지역별로 통일된 규칙이 없는, 중구난방 식이었다.


일례로 당시 축구에서는 폭력 금지라는 규정도 없어서 경기 중 패싸움이 일어나는 일은 예사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무기를 몰래 숨기고 들어갔다가 휘두르는 선수도 했다고. 축구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리 없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에서 축구 선수를 "천한 놈"이라고 하는 대사가 등장할 정도였다.

이에 영국은 1863년 FA(the Football Association)를 설립해 축구에 대한 통합 규칙을 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현대 축구의 토대가 마련된다.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대영제국은 축구를 전 세계로 퍼뜨린다. 그 결과 20세기 초 정도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축구를 즐기게 된다.


축구 규칙이 통일되지 않던 초창기 시기/사진=유튜브 캡쳐
축구 규칙이 통일되지 않던 초창기 시기/사진=유튜브 캡쳐



영국 없는 피파의 설립, 무슨 사연이길래?


1908년 피파 주관 하에 첫 올림픽 축구 국가 대항전이 열렸다./사진=위키피디아
1908년 피파 주관 하에 첫 올림픽 축구 국가 대항전이 열렸다./사진=위키피디아

피파 설립 과정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축구 종가 영국이 설립 멤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이유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영국이 피파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설, 축구 종주국으로서 고집을 부렸다는 설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중 영국이 1개의 국가에 1개의 협회만 허용한다는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 당시 영국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북아일랜드가 각자의 협회를 가지고 있어 이 규정을 따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초대 피파 회장은 프랑스 국적의 로베르 게랭이 맡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 규칙도 통일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대표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이들은 예외적으로 한 국가에 축구협회를 4개나 보유한 영국을 회원국으로 인정하게 된다. 2대 피파 회장인 영국인 대니얼 벌리 울폴은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첫 국가대항전 대회(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참가)를 개최해 성공적으로 이끈다.

이후 190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1912년엔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1913년엔 미국과 캐나다가 피파에 가입한다.


2번의 세계 대전, 그리고 역사적이 첫 월드컵 개최


1930년 피파가 올림픽과 별개로 주관한 첫 국제 축구 대회가 우루과이에서 개최됐다./사진=위키피디아
1930년 피파가 올림픽과 별개로 주관한 첫 국제 축구 대회가 우루과이에서 개최됐다./사진=위키피디아

1914년엔 올림픽(IOC)과 축구 대회를 '세계 아마추어 축구 선수권대회'로 승인해 피파에게 대회 관리를 맡겼다. 하지만 피파는 올림픽과 별개로 직접 주관하는 대회를 구상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월드컵이다.

하지만 이 시기 피파는 1914년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큰 위기에 빠진다. 이때 축구 종가 영국 4개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은 아예 피파를 탈퇴하기까지 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피파는 1920년 하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의 대륙 간 축구 대회를 주관했다. 이후 1930년엔 올림픽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피파가 직접 주관하는 역사적인 첫 번째 월드컵을 우루과이에서 개최한다. 첫 번째 월드컵 우승은 우루과이가 차지한다.

첫 번째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피파에게 두 번째 시련이 다가온 건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다. 이 전쟁으로 1942년 월드컵과 1946년 월드컵은 취소됐고, 재정 문제도 심각해졌다.

전쟁이 끝나고 1년 후인 1946년 영국 4개국이 피파에 복귀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7년5월10일, 영국과 '나머지 유럽' 간의 경기가 글래스고에서 열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이 경기로 얻은 3만5000파운드의 경기 수익은 피파의 재정을 위해 전액 기부됐다.

이후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 피파는 회원국을 점차 늘려나가기 시작한다. 한국은 1948년5월21일 피파에 가입했다. 첫 국제무대 출전은 1948년 런던 올림픽이었다. 현재 피파엔 211개 회원국이 가입돼 있다.


한국과 2002년 피파 월드컵의 기억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 시청 광장을 꽉 채운 응원단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 시청 광장을 꽉 채운 응원단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한국의 첫 월드컵 진출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다. 이후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국가가 된다.

2002년엔 한일 월드컵을 개최해 역대 최고 기록인 4위에 등극한다.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2022년 카타를 월드컵에는 16강에 진출했다.

역대 월드컵 최다 우승국은 브라질 (5회)이다. 이어 독일, 이탈리아(4회) △아르헨티나 (3회) △프랑스, 우루과이(2회) △잉글랜드, 스페인(1회) 순이다.

2026년 월드컵은 북중미(캐나다, 멕시코, 미국)에서 열린다. 기간은 2026년 6월11일부터 7월19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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