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아내 잃고 28층 난간에 선 남편…새내기 순경 '이 말'에 손잡았다

A씨를 다독이는 홍유진 순경/사진제공=동작경찰서

"동생이 스스로… 지금 어딨는지는 모르겠어요."

지난달 12일 오전 11시25분 서울 동작경찰서 노량진지구대에 이같은 내용의 112 신고가 접수됐다. 점심을 먹고 복귀한 노량진지구대 2팀과 홍유진 순경은 숨돌릴 새도 없이 뛰쳐나갔다. 급성 백혈병으로 아내를 잃고 장례를 치른 30대 남성 A씨는 친형과 친한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


A씨 집을 찾아낸 후 문을 강제로 열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A씨가 있을 만한 곳을 특정하려 했지만 어떤 단서도 얻을 수 없었다. 모텔·고시원 등 인근 건물을 전부 뒤지기 시작했다. 이날 서울 최고기온은 31.8도. 팀원들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3시간이 넘게 수색했다.

노량진지구대 2팀은 공사 중인 28층 건물에 들어갔다. 모든 층에 전부 가보자는 팀장 지시에 홍 순경은 옥상부터 올라갔다. 문을 열자마자 옥상 난간을 넘어간 A씨 뒷모습이 보였다. 홍 순경은 당시를 회상하며 "아직 살아계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노량진지구대

"할 말 없어요. 오지 마세요"
"걱정 마세요 안 가요. 날씨 참 좋죠. 밥은 드셨어요?"


A씨는 오지 말라며 거부 반응을 보였다. 바닥에는 위스키병이 있었다. 홍 순경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여러 경찰관이 다가서면 위험해질 수 있었다. 현장에는 홍 순경만 투입되고 다른 경찰들은 몸을 숨겼다. 소방은 지상에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있었다. 홍 순경은 A씨에게 말을 걸며 한 걸음씩 다가갔다.

홍 순경은 대답을 기다리다 답이 없으면 다른 질문을 이어가면서 천천히 A씨에게 걸어갔다. A씨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홍 순경은 경찰 준비생 시절 얘기를 꺼냈다. 홍 순경이 '왜 이런 선택을 하셨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하자 A씨는 홍 순경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홍 순경은 A씨 아내에 대해 물어봤다. 부인과 같이 하고 싶은 게 어떤 것이었는지 부인이 먹고 싶어 하시던 음식은 뭐였는지 등을 물어봤다. 홍 순경은 "아내 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오직 남편 분"이라고 했다.

가까이 다가간 홍 순경은 훌쩍이는 A씨를 다독여주려 손을 내밀었다. A씨도 뿌리치지 않았다. 홍 순경은 "오늘만 한번 살아보자"라며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말했다. 울음을 참을 필요 없다며 크게 울어도 된다는 홍 순경의 말에 A씨는 난간을 붙잡고 한 차례 크게 통곡했다. A씨는 스스로 난간을 넘어왔다.

노량진지구대 홍유진 순경/사진=본인제공

홍 순경은 지난해 12월31일 임용된 '새내기 경찰'이다. 이번 달로 노량진지구대에서 근무한 지 6개월이 조금 넘었다. 홍 순경은 시민들의 일상을 지킨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경찰이 됐다. 경찰이 되기 전부터도 평소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도울 때 보람을 느꼈다고도 밝혔다.

홍 순경은 "강력범죄 같은 일이 아니면 '경찰에 신고해도 되나' 하고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있다. 언제든 신고해주셔도 된다"며 "출동해보면 살릴 수 있는 경우가 참 많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순간에서 경찰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 순경은 "어머니께서 늘 걱정하시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이런 부분을 감내해야 경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팀원분들이 너무 잘 챙겨주시고 잘해주셔서 하루하루 무사히 보내고 있다. 팀원들에게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라고도 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홍 순경은 "들어온지 얼마 안 돼서 목표를 찾고 있다"면서 "나라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분들을 찾아서 한 명의 경찰로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다"고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