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매 악순환…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라

경제학의 게임이론 중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참여자의 행동을 분석, 예측해 최적의 전략을 선택하는 이론이다.

두명의 죄수가 각각 따로 조사를 받을 경우, 모두 범행을 부인하면 혐의입증이 어려워 경미한 처벌을 받게 되지만 모두 자백할 경우 모든 혐의가 드러나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는 상황을 가정한다. 그런데 검사는 한명만 자백할 경우 자백한 사람은 방면해 줄 것이나 반대로 끝까지 범행을 부인한 사람은 가중 처벌될 것이라고 죄수들에게 통보한다.


그러면 죄수는 상대방이 자백할 경우 혼자 범행을 부인하다가 가중처벌을 받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자백을 해야 하고, 상대방이 부인한다고 가정해도 자신이 방면되기 위해 자백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상대방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 자신은 자백하는 것이 최적의 행동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돼 조사를 받기 전 자백하지 말자고 했던 약속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선택과 상관없이 배신하는 것이 언제나 이익이므로 배신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지만, 실질적으로 둘 다 배신을 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나쁜 결과에 도달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한국증시

최근의 한국 증시상황을 보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듯하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최근의 주가 폭락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1차적으로 유동성 위기로 이머징 마켓에서 탈출하는 외국 자본의 영향이 크고, 다음으로 내부적인 부실에 대한 우려로 인한 투자심리의 악화 때문이다.


환율불안, 키코(KIKO)로 인한 중소기업의 파생상품 손실, 미분양으로 인한 건설사 유동성 악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담보대출에 대한 우려, 가계부채 증가와 소비둔화에 대한 우려 등이 모두 수면 위로 떠오르며 투자심리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9월 위기설, 일부 회사에 대한 부도설 등의 루머는 악화된 투자심리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러한 악화된 투자심리는 투매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이미 주가가 폭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더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이 반영된 결과다. 즉 이미 주가가 폭락했고 원금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주가가 더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파는 것이 맞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매행위가 오히려 주가폭락을 가속화하고, 주가폭락으로 인한 공포감은 더욱 극에 달해, 다시 투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마치 가중처벌을 피하기 위해 범죄를 자백하고 경미한 형을 확정하는 죄수의 상태와 흡사하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최적의 선택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파는 사람보다 사는 사람이 많으면 주가는 올라갈 수 있지만 파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내가 먼저 파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파는 사람이 많아져 주가는 더욱 하락하게 된다. 마치 상대가 자백하기 전 내가 먼저 자백해야 하는 죄수의 딜레마와 흡사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개인들이 나서서 떨어지는 칼날을 잡기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사례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는 결국 버블붕괴의 일례였다. 당시 달러와 연동된 고정환율제로 인해 실물경제와 괴리돼 고평가된 바트화에 대해 헤지펀드 등 국제 환투기세력이 공격을 시작했다. 태국 정부는 바트화 매입에 달러를 퍼붓다가 외환보유고가 바닥났고 결국 고정환율제를 포기했다. 태국에 이어 필리핀, 인도네시아도 헤지펀드의 공격에 무릎을 꿇고 동남아 통화들은 일제히 폭락하고 말았다.

헤지펀드의 다음 타겟은 대만, 홍콩 등 동북아 국가로 이어졌고 한국 역시 총체적 부실을 드러내며 환율방어에 실패해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홍콩 정부는 방어에 성공했는데, 당시 홍콩은 고정환율제인 페그제를 시행 중에 있었다. 헤지펀드 등의 환투기세력은 페그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1년 이상 공격했다. 페그제란 자국의 통화가치를 다른 나라의 통화가치에 고정시키는 고정환율제도다.

홍콩 정부는 1983년부터 홍콩 달러화를 미화 1달러에 대해 7.8홍콩달러(HK$)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홍콩 통화당국은 페그제 유지를 위해 외환시장에서 1달러당 7.75홍콩달러 이하가 되면 시장에 개입 미 달러화를 매각하고 홍콩달러화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헤지펀드들이 외환시장에서 홍콩달러를 매각하면 홍콩통화당국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금리 상승으로 인해 주가가 하락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헤지펀드들은 홍콩 달러 선물 매도와 함께 홍콩 주식시장에서 지수선물을 매도했고, 이로 인해 주식가격은 더욱 폭락하고 홍콩 달러화가 평가절하돼, 정부가 홍콩달러를 방어하면 할수록 홍콩달러는 더욱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결국 통화당국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1998년 8월 주식시장에 개입해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2주 동안 무려 152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매입해 주가지수를 20% 끌어올렸다. 이러한 인위적인 주가부양을 통해 홍콩 정부는 홍콩 달러화의 페그제를 지켜낼 수 있었고, 외환위기 이후 주가상승으로 인한 수혜를 통해 금융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의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홍콩의 경우처럼 성공적인 케이스도 있지만 한국, 태국을 비롯한 실패사례들이 대다수다. 오히려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외국자본에 대해 탈출기회를 제공하고, 투기세력으로 하여금 투기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외화보유고가 고갈나고 IMF 사태때와 같은 국고파산상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즉 어설픈 개입은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효과적인 대처능력이 중요시되는 시점이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사례

영화 다크나이트를 보면 죄수의 딜레마가 나온다. 악당 조커는 범죄자들이 타고 있는 배와 일반인들이 타고 있는 배에 폭탄을 설치해놓고 상대의 배를 폭파시킬 수 있는 기폭장치를 서로에게 준다. 그리고 먼저 기폭장치를 눌러 상대의 배를 폭파시키는 배는 살려주되, 만약 한시간 후 두배 중 아무데도 폭탄이 터지지 않을 경우 자신이 두배를 모두 폭파시키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죄수의 딜레마 이론에 따르면 자신이 탄 배가 살기 위해 먼저 상대의 배를 폭파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영화의 결말은 그렇지가 않다. 양쪽 모두 기폭장치를 누르지 않는 선택을 했고 1시간 후 조커 역시 베트맨에게 기폭장치를 빼앗겨 모든 배가 무사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한국 증시도 비록 월가의 탐욕이 불러온 미국발 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외국인의 매도공세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지만 IMF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한 국민적 저력이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각 경제주체간의 신뢰회복과 노력을 통해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외인의 매도공세에 맞서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베트맨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