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김의 음악인생, 조영남이 묻고 그녀가 답하다

가수 조영남은 지난해 여름, 하늘같은 선배 패티 김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패티 김(본명 김혜자)의 은퇴 소식과 함께 자서전을 써달라는 부탁까지 받는다.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자유주의자' 조영남은 '완벽주의자' 패티 김의 인생을 책 한권에 담아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대중가요사의 산증인 패티 김의 54년 음악인생이 고스란히 녹아든 자서전은 그렇게 출간됐다. 조영남이 패티 김에게 질문을 하며 주고받은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겼다.


패티 김은 1958년 스무살의 나이에 오산 미8군 무대에서 팝송 '틸' '파드레'를 부르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1960~70년대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며 '서울의 찬가' '이별' '초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그에게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곤 했다. 광복 이후 일본 정부가 초청한 첫 한국 가수, 최초의 '리사이틀' 공연, 한국가수 미국 첫 진출, 한국 최초의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주연 캐스팅을 비롯해 국내에선 처음으로 개인의 이름을 내세운 방송프로그램 '패티김 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대중가수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고, 미국 뉴욕 카네기홀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무대 역시 한국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이 자서전은 '54년 패티 김의 풀스토리, 74년 김혜자의 풀스토리'를 표방하며 가수로서의 삶과 일부 포기하고 살아야했던 인간 김혜자의 면모를 함께 그렸다. 또 패티 김과 조영남이 오랜 세월 음악을 함께 한 선후배로서, 동료로서 우정을 나누며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글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언뜻 보기에 원하는 것을 모두 누리며 화려한 삶을 살아 온 것처럼 보이는 패티 김에게도 아프고 외로운 순간이 있었다. 낯선 뉴욕에서 숱한 오디션을 치르며 희망과 절망을 거듭한 젊은 시절, 그리고 톱스타가 되었지만 동료들에게는 '왕따'를 당해야 했던 사연. 작곡가 길옥윤과의 이혼, 우울증 등 희로애락을 겪은 그의 인생을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하게 완벽을 추구하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패티 김의 모습이 그의 전부는 아닐 테다. 두 딸이 어릴 적 보내준 카드와 선물을 값비싼 보석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손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한없이 너그러운 할머니가 된다. 조영남은 그를 향해 주저 없이 '띨띨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노래 외에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한 모습이 패티 김의 또 다른 매력으로 비춰졌기 때문일 것이다.

조영남의 글 솜씨가 베인 자서전 '그녀, 패티김'을 통해 카리스마 뒤에 숨은 한 여자로서의 인생 이야기를 엿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영남 지음/돌베개 펴냄/456쪽/1만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