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병철 회장, 왜 3남 이건희에게 삼성을…

삼성이 창업자인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 25주기 및 이건희 회장 취임 25주년을 맞아 이건희 회장이 걸어온 길을 집대성한다. 이회장의 취임과 업적을 가급적 부각시키지 않았던 삼성으로선 이례적이다.

유산 상속 분쟁을 벌이고 있는 CJ측이 추모식 선영 참배 절차와 방식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등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어 더이상 침묵을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 "알릴 건 알려야"...추모식 직후부터 '발자취' 10회 연재

고 호암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80년 삼성본관 집무실에서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18일 삼성에 따르면 이회장의 업적은 19일 오후부터 삼성 블로그(blog.samsung.com)를 통해 10회 분량으로 연재된다. △초일류 기업 삼성에 대한 약속 △사회와의 약속 △미래에 대한 약속 등 3가지 주제로 이건희 회장의 25주년 발자취를 닮을 예정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취임부터 현재까지 삼성의 주요 변화상과 이 회장의 주요 업적을 알릴 예정”이라며 “기념식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필요한 사항은 알려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회장의 공식 취임일은 다음달 1일인데도 열흘 앞당겨 호암의 25주기 추모식을 '디 데이(D-Day)'로 정한 것은 호암의 계승자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오버랩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당초 글로벌 경기침체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데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요구 등 사회적 분위기 등을 고려해 이 회장의 취임 25주년을 조용히 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CJ측이 추모식을 앞두고 "삼성이 호암의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용인 선영 정문 및 한옥 사용을 불허하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여론 몰이에 나서면서 '알릴 것은 알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그룹 내에 형성된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이회장의 25주년 발자취에 호암이 이회장을 후계자로 선정한 배경과 이회장의 업적을 통해 그같은 결정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내용이 담길 지도 주목거리이다.

↑지난 1987년 12월1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취임식에서 당시 입사일이 가장 빨랐던 최관식 삼성중공업 사장으로부터 삼성 사기를 받고 있다

◇ 승계 배경·정당성 수록 여부 주목...소송 대응도 변화가능성

이회장의 공식 취임일은 12월1일이지만, 1987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의 타계 시점으로 돌려보면 실제 이 회장이 업무를 시작한 시점은 20일 전후이다.

19일 오후 신현확 삼성물산 회장은 삼성사장단 회의를 소집, "이건희 회장의 승계는 고인의 뜻일 뿐만 아니라, 이 회장은 유지를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최적임자"라며 이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호암은 셋째 아들인 건희씨를 후계자로 지목한 이유에 대해 자주는 아니지만 몇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호암이 남긴 유일한 자서전인 ‘호암자전’에 나오는 대목이다.

호암은 “맨처음에는 주위의 권고도 있고 또 본인의 희망도 있어서 장남 맹희에게 맡겨보았다. 그랬더니 좋은 업적이 안 나오고 본인도 스스로 정상의 자리를 단념하면서 유능한 경영자를 찾아야겠다는 것을 자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남 창희는 많은 회사와 복잡한 조직하의 많은 사람을 거느리는 것에 흥미를 갖기보다 작은 규모의 것을 건전하고 알차게 경영하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이 있어 그렇게 하도록 했다.

3남 건희에겐 처음에는 ‘매스컴’을 맡기기로 하고 매스컴 경영의 기복에 대비해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몇 개의 회사를 매스컴‘에 붙일 생각을 했었다(중략). 삼남 자신도 통합경영에 뜻을 두고 성의껏 노력하고 있으므로 삼성의 경영을 삼남에게 계승시키기로 했다“고 적었다.

호암자전이 발행된 시기는 지난 85년 2월이다. 이에 앞서 호암은 77년 8월 일본 닛케이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신문·방송 관련 이사를 맡고 있는 셋째 아들, 이건희로 정했습니다. 만약 삼성이 더 작은 규모의 기업이라면 위에서부터 순서를 따져 長男이 맡아도 되겠지만, 삼성그룹 정도의 규모가 되면 역시 (경영)능력이 없으면 안됩니다. 장남은 성격이 기업(경영)에 맞지 않기 때문에 기업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지 않으면 안됩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배경 외에 이건희 회장이 후계자로 선임되는 과정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공개될 경우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CJ 측의 반발도 예상된다.

삼성의 '조용한 변화'가 가시화되면서 소송 과정에서도 삼성의 대응 방식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삼성은 유산 소송이 제기된 이후 법정 외에서는 관련 내용을 일절 언급하지 않아 왔다. 상속 문제는 이미 정리가 끝난 상황인데다 집안 문제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모양새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삼성은 유산 소송이 제기된 이후 법정 외에서는 관련 내용을 일절 언급하지 않아 왔다. 상속 문제는 이미 정리가 끝난 상황인데다 집안 문제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모양새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