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큐레이터, 갈 곳은 비정규직뿐?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 예술경영 대학원 진학을 택한 김모씨(36). 그는 졸업 후 대학 부속 A박물관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박물관의 모든 직원은 비정규직이었다. ‘석사’라는 타이틀은 아무 소용없었다. 다들 그러려니 했다. 주 6일을 근무하며 김씨가 받은 월급은 147만원.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났다.

석사 학위와 2년 경력이 적힌 자기소개서를 들고 찾은 곳은 B문화회관 미술관. 이곳에서 그는 ‘신입’ 계약직원이 됐다. 시간은 또다시 흘렀다. 계약기간이 만료됐다. C아트센터에서 23개월을 근무했다. 만료된 뒤로는 육아휴직 대체인력 등 더 일할 구실을 찾아야 했다. 어느덧 6~7년의 경력이 쌓였다. 그는 곧 4번째 직장에 출근하게 된다. 새로 문을 여는 D미술관이다. 역시 계약직이다.


계속되는 ‘떠돌이’ 생활이다. 경력은 무색했다. 김씨는 “팀장은커녕 말단 직원으로 자리를 얻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 미술관 중에도 모든 직원이 계약직인 곳이 많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근로자의 날을 챙겨 받기는커녕, 야간 수당이나 휴일 수당도 받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미술계에 발을 붙이기 위해선 석사 학위는 필수라고 알려져 있다.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석사 학위가 있더라도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큐레이터 채용은 대부분 단기계약 형태다. 1~2년 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미술관의 전문성이 오히려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공고된 국공립 미술관 채용공고를 살펴봐도 온통 계약직뿐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3월 임기제 지방학예연구사 1명을 모집했다. 근무기간 2년의 계약직이다. 지원요건은 석사학위 보유, 1년 이상의 실무경력 등이다.


국립현대미술관도 비슷하다. 최근 덕수궁 미술관에선 전시해설 담당 계약직 직원 3명을 뽑았다. 4월부터 7개월 간 근무하는 기간제 계약직이다. 미술 또는 미술사 관련 전공자 및 학위 소지자가 지원 자격이다. 과천관에서도 3월 직원 1명을 뽑았는데 관련학과 석사 이상 또는 2년 이상의 실무경력자를 찾았다. 채용된 이들은 주 6일을 일하고 월급 147만원을 받게 돼 있다.

한국큐레이터협회가 2009년 실시한 큐레이터 고용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큐레이터의 70%가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나이는 37.7세, 경력은 6.6년이다. 평균 연봉은 2732만원에 그쳤다. 5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기껏해야 2년까지 일할 수 있는 구조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기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문 인력을 키울 수가 없는 구조”라고 하소연했다.

미술사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 아트센터에서 근무 중인 B씨(27)도 답답함을 전했다. B씨는 “대학원 졸업하고 일하면서 점점 그 실상을 알아가고 있는데 학생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며 “힘들게 이룬 꿈이 불안한 계약직이라니 허무하다”고 말했다.